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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Dec 22. 2022

커피와 막걸리 주전자


 눈이 내린 아침 커피를 내렸다. 창을 덜컹거리며 세찬 바람 소리가 들리고 실내엔 커피 향이 퍼진다. 베란다 밖 건너 아파트 화단의 목련과 단풍나무 앙상한 나뭇가지가 폭설을 얹고 심하게 휩쓸리는 모습을 보니 떠오른다. 


 시댁 부엌에서 바라보던 뒷마당 대밭은 장관이었다. 삼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겨울 대숲에서 폭풍처럼 일던 바람과 부엌에서 마시던 구수한 커피 맛. 특히나 장작이 이글거리며 타던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늙은 시어머님이 타 주신 커피를 마시며 대숲을 바라보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절경이었다. 


 명절이나 생신, 제사가 돌아오면 어머니와 아버지 형님과 나 넷이 음식 장만을 했다. 춥고 불편해도 부엌에서 얼른 일 마치고 쉬는 게 나았다. 주방 도구들 하나하나 방으로 옮기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머니는 뜨끈뜨끈한 방에서 음식을 해야 당신의 마음이 편했을 텐데, 두 며느리가 극구 부엌에서 하겠다니 말리지 못하고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골집에 와 음식 한다고 애쓰는데 춥기까지 한 부엌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며느리들한테 미안해서 뭐든 당신 손으로 하려고 종일 동동거리셨다. 그렇게 일이 다 끝나면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전 부치고 생선 찌고 나물의 고소한 냄새까지 복합적으로 맡고 나면 산해진미도 시들했다. 커피 한 잔이면 딱 좋겠으나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이 시어른들 앞에서 저 혼자 커피 끓여 마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리차만 벌컥벌컥 마시는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셋째야, 커피 마실 테냐.”

 “네? 네! 저기 어머니 제가 타서 마실게요.”

 “아니다. 내가 물 올릴 테니 한 잔 마시거라. 커피 좋아한담서.”


 어머니는 노란 막걸리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세월 따라 찌그러지고 색이 바랜 작은 주전자에서 물이 끓었다. 때마침 눈이 펑펑 날렸고 대밭에서는 천 마리 말이 달려오는 듯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아궁이에서는 빨갛고 노란, 주홍색 불꽃이 겨울과 대치라도 하려는 듯 활활 타올랐다. 


 “이렇게 타면 되는 것여? 네 입맛에 맞을랑가 모르것다. 쓰면 설탕 더 넣어라.”


 어머니 손에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종이컵에 타도 되련만 어머니는 이렇게 잔까지 챙겨 손수 커피를 타 주셨다. 일회용 커피가 흔하지 않아 커피와 크림 설탕을 조제해서 마시는 커피였다. 왜 눈물이 났을까. 아궁이 앞에 앉아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눈물 한줄기 주룩, 또 한 번 마시고 주룩 쏟으면서 달게 아주 귀하게 커피를 다 마셨다.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었다. 


 “어머니 커피 정말 맛나요. 잘 마셨어요. 다음에는 어머니도 함께 마셔요.”

 “난 싫다. 뭔 맛인지 모르겄어. 좋아하는 너나 실컷 마시거라.”


 이후로 가끔 어머니는 노란 막걸리 주전자에 물을 끓였고 커피를 타 주셨다. 내 마음도 어머니의 커피로 인해 훨씬 느슨해졌다. 


 처음엔 무섭고 어려웠던 어머니였다. 동네에서 여장부라는 말을 듣던 시어머니에 대한 편견이 앞서 무슨 말만 하시면 바짝 쪼그라들었다. 한데 자꾸 겪어보니 지극하시다. 자식 사랑뿐만 아니라 며느리들에 대한 사랑도 말이다. 며느리들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고, 당신 자식들한테도 역시 그랬다. 다만, 자기 삶이 고달프고 힘드셨기 때문이었을까? 시아버지는 어머니의 직격탄을 맞았다. 여장부의 인생에 선비 같은 시아버지는 맞춤하지 않았다. 하여, 두 분이 맨날 티격태격 싸우는 소리가 대문을 통과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달픈 삶에 대한 넋풀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점점 어머니가 좋아졌다. 시댁에 갈 때마다 늘 조곤조곤 당신의 말을 먼저 하셨고 나는 재밌다고 하며 잘 들어주던 며느리였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시기 일주일 전에 멀리서 사는 내게 전화하셨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나서 어머니는 자신의 얘기를 하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아닌 친구라 생각하셨던 것일까? 하고 싶은 말 실컷 하시고 소리 내 울기까지 하셨다. 당장 달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맛있는 점심도 사드리고 바깥나들이라도 시켜드리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몇 개월의 병원 생활을 끝으로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하셨다. 


 지금은 일회용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는다. 그래도 시린 겨울이 오면, 아니 대숲에 바람 몹시 쓸리는 날이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커피가 생각난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을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가 딸려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하신 분이었다. 어린 사람에게도 마음을 내어 주실 줄 아셨다. 내가 살아온 많은 풍경 가운데 손꼽는 풍경이 된 시댁 부엌에서 마시던 커피는 결혼 생활하면서 힘이 들거나 용기가 필요할 때, 그리움에 목이 마를 때 떠올리는 풍경이 되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는, 어른에 대한, 사람에 대한 예의와 향기가 그곳에 머물러 있고, 세월에 다져진 옹이로 굳어 울퉁불퉁한 부엌의 진흙 바닥 아궁이 앞은 어느 멋진 카페 이상의 멋스러움이 담긴 삶의 향수가 묻어 있고, 무엇보다 인생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신 품격 있는 시어머니를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삶의 어느 접점이 된 어머니와의 만남이 시작된 곳, 그곳에 내 모든 것들의 풍경 한 점을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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