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이 귀한 쑥을 캐셨어요? 요즘은 캘 곳도 없고 구경하기 어렵던데.”
“집 뒤 언덕에서 캤쥬. 약 안치고 일부러 가꾼 쑥인디,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캘 것이 읇더랑게요.”
일 많이 한 얼굴이다. 가무잡잡하고 머리는 부스스, 셔츠 앞자락은 얼룩투성이다. 바쁘게 나온 길이 역력하다.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미처 단장도 못 하고 서둘러 나오다 보니 쑥 하고 담근 쌀만 겨우 가지고 나온 길, 영락없이 예전 우리 엄마 모습이다.
“뭐하러 이것저것 준비하세요. 힘 안 드세요?”
“힘이야 들지만 워쩌, 부모 노릇은 해야지.”
“일도 줄이고 이제 어머니를 위해서만 사셔도 돼요.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아요.”
“이빨 빠지고, 눈 침침하고, 손에 힘없으면 해 줘도 지저분하다고 안 먹으니께 할 수 있을 때 먹이려고 이 부지런 떠는 것이지. 나 먹겄다고는 안 허지.”
추석을 며칠 앞둔 방앗간에서 만난 나포 사신다는 양반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그려도 새끼들 생각하믄서 송편 만드는 시간이 참 좋대. 그전엔 다 같이 둘러앉아 맹글었는디, 이제는 텅 빈 집에 나 혼자 앉아 맹글고 있지 뭐. 제 살 궁리하러 객지로 다 떠났으니께. 그려도 좋아. 기다리는 재미가 있잖여. 근디 코로난가 뭔가 땜시 오가도 못한다네. 참, 뭔 놈의 시상이 요로콤 이상스럽댜.”
송편 만들 반죽을 들고 버스 타고 구불구불 시골 길 지나 텅 빈 집에 도착해 ‘이상스러운 시상여’ 하며 오지 않는 자식들에게 먹일 송편 만들 채비를 하실 어머니 같기만 했던 분의 발길이 아슴아슴 그려진다. 부모의 길이 무엇이고, 부모 노릇이란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끝이 없는 봉사 같다.
내가 송편 만드는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 싫어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시어머니를 보면서다. 꼭두새벽부터 명절 음식에 쓸 온갖 채소와 고기, 생선을 씻고 데치고 썰고 무치고 찌고 나면 늦은 점심이다. 포 뜨고 남은 머리와 뼈로 뚝딱 끓여내는 어머니의 동탯국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전 몇 가지가 더 남았고, 오후는 송편 반죽이 기다린다.
집안이 시끄럽다. 더 치대라, 이만하면 됐다, 거칠거칠 이것도 반죽이라고 했느냐, 이게 어때서 그러냐, 아버지와 어머니의 티격태격, 옥신각신, 우리는 새우 등 터지는 꼴로 잠자코 기다리다 송편을 만들기 시작한다. 도대체, 만들어도 만들어도 끝이 나질 않는 송편. 어머니는 부엌을 종종거리며 가마솥에 송편을 찌고 또 쪘다. 저녁이 오고 있는데도 송편 만들기는 끝나질 않는다.
각자 손에 맞게 반죽을 떼어 동글동글 빚어 모양내고 풋콩이나, 참깨, 흑설탕으로 고명을 넣고 모양을 만들면 되는 송편.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얘기도 나누고 추억도 반죽하며 고된 여유를 풀어놓기도 한다. 마루에 앉아 송편을 만드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송편 찌는 솥을 수없이 오간다.
끊어질 듯한 허리와 다리를 펴고 고개를 들면 대문 옆 감나무 가지 사이로 어느새 음력 팔월 열나흘 달이 휘영청 떠오른다. 이대로 놔두고 달이나 보러 갈까? 질리도록 송편을 만들고 찌는 동안 나는 어릴 적 송편 만들던 추억이 왜곡되는 것을 본다. 엄마도, 할머니도, 작은 엄마들도 모두 이렇게 힘든 명절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도 이제 송편 먹기를 기다리는 딸에서 식구들 입에 송편을 먹여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이 번쩍 든다.
어머니는 명절이 즐거울까? 고단한 의무 같은 것일까? 왠지 둘 다일 것 같다. 조상을 섬기는 일 외에 자식들 얼굴 봐서 좋고, 준비한 음식 먹여서 좋으나, 가면 또 못내 서운해 뒤돌아 눈물 훔치는 어머니라는 질긴 심줄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오로지 자식들 한순간의 즐거운 입을 위해 온종일 부엌을 드나드는 어머니의 발걸음이 지쳐 보인다.
어머니에게 큰아들의 의미는 각별하다. 일 년에 두세 번 내려오는 아들을 향한 해바라기가 삼백예순 날이다. 어머니의 모든 정성과 기대, 마음은 큰아들을 향해 뻗어 있다. 둘째부터는 그저 곁다리들이다. 알아서 잘 살겠거니, 그렇게 믿어버린다. 어머니의 바람만큼 큰아들 내외도 어머니와 같은 마음일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기도하는 마음을 십 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는 게 자식들이니까.
자식을 키우다 보면 특별히 아픈 손가락이 있다. 어머니에게 큰아들은 그런 경우다. 평생 장사 한다고 동동거려도 제자리일 뿐 딱히 나아지는 게 없는 살림이다보니 이제 좀 살만하다는 말을 못하고 사는 게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 장사라는 게 그렇잖은가.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시소처럼 올라갔다 내려가며 늘 아들을 향한 조바심의 세월이었다.
송편도, 김치 산적도, 가마솥 누룽지도, 생선도, 큰아들 좋아하는 것들로 만들어진다. 이런 어머니의 바람이니까 한 사나흘 머물다 가면 좋으련만 겨우 하룻밤일 적이 많다 보니, 어머니의 서운하고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허탈한 마음은 또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어머니의 상심함을 고스란히 바라보아야 했으니까.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큰아들 내외도 내려오지 않고 시댁 갈 일이 없다. 지겹기도 했던 송편 만들던 시간이 새삼 그리운 것은 거기에서 어머니를 보고, 한 여자의 삶을 보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열여덟에 지아비 만나 자식 낳고 살면서 집안일에, 자식 키우는 일에 평생을 바치며 살았는데, 다 커 품 떠난 자식을 기다리며 속절없는 그리움의 시간만 키우다 늙어간 세상 모든 어머니의 송편.
송편 만드는 시간이 있어 우리는 긴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정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지금 우리는 송편 만들던 시간 대신 무슨 시간을 대체하며 사는 것일까?
몇 시간을 앉아 송편 만드는 시간이 있어서 어머니는 그나마 행복했을까? 멀리서 부모를 향해 내려오는 자식 향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만들던 송편, 기다림과 사랑을 대신해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줄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는 가난한 어머니의 기도가 담긴 송편은 늘 배가 불룩했다.
나는 송편이 그립다. 어쩌면 쑥 캐던 어린 시절, 어느 한 모퉁이가 그리운 것인지 모른다. 둘러앉아 송편 만들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송편을 만들지도 않는다. 방송에도 나온 유명한 시장골목 떡집을 찾아 송편을 산다. 쑥이 많이 들어 맛있는 송편을 먹으며 지나가 버린 시간을 위로받는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이번 추석 명절은 자식들조차 내려오지 않아 부모들의 집은 더욱 커 보일 것 같다. 송편이 사라진 자리에 마스크가 등장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 추억의 맛, 송편이 위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