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쌀밥을 좋아하셨던 시어머니

by 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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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 지난 가을에 수확한 콩


음력 이월 초하룻날은 '콩 볶아 먹는 날이다.


지난가을에 수확한 검정콩을 동생들한테 조금씩 나눠주고 남은 콩으로 선식을 만들었다. 작년 선식에 넣었던 곡식을 가늠해 콩을 주재료로 팥과 보리, 흑미, 율무, 귀리 등 곡식을 넣어서 만든 선식이다.


콩 챙기는 나를 보니 저 먼 어린 날의 기억이 본능적으로 몸에 밴 행동은 아닌가 싶어지는데, 얼마 있으면 따로 콩이나 곡식을 챙겨 먹는 '콩 볶아 먹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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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맘때, 그러니까 음력 설 지나 정월 대보름까지 보내면 달리 행사가 없었고, 학교도 가지 않는 우리는 심심했다. 명절 음식도 다 떨어지고, 대보름에 먹은 오곡밥과 온갖 나물 반찬도 동이 났다. 동네 오빠, 언니, 친구, 동생들과 놀았던 대보름 쥐불놀이도 내년으로 기약했다. 볼 것 없이 밋밋한 들녘처럼 지루한 날들이 이어졌다.


입이 궁금했다. 고구마나 무, 습관처럼 먹는 음식은 심드렁했다. 우리를 밖으로 내달리게 하던 눈도 내리지 않았다. 그런 중에 음력 정월의 날 끝에서 어김없이 찾아왔던 날, 바로 이월 초하루 '콩 볶아 먹는 날'이었다.


딱히 콩이 아니라도 집에 있는 곡식은 무엇이든 볶아 이웃끼리 서로 나눠 먹곤 했는데, 콩 볶는 날은 동네 어귀가 다 고소했다.

엄마가 만들어준 헝겊 주머니에 콩이며 볶은 곡식을 넣어 다니면서 친구와 서로 바꿔 먹곤 했다.


그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아이들 키울 때 그날의 일을 기억해두고 특별히 곡식을 볶아 어릴 적 추억 놀이를 하곤 했다. 엄마의 숨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콩뿐만 아니라 잡곡밥을 싫어한다.

"밥은 하얀 쌀밥이 최고지."

이것저것 넣어 거무튀튀한 밥 앞에서 말이 많다.

"언제까지 그러는지 두고 볼 일, 요것들이 나이 먹어서도 그러는지 내가 꼭 지켜보겠다."

소심한 엄마의 마음을 새겨둔다.


유독 뽀얀 쌀밥을 좋아하셨던 시어머니

무슨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은 아니나, 잡곡이 좋다.

처음 시댁에서 밥을 먹는데 어머니는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퍼주셨다. 막 결혼한 새댁이어서 어색하기도 했고, 그만한 밥을 먹기에는 내숭이란 것도 미덕이었기 때문에 삼 분의 일 가량을 덜어냈다.

"사람이 밥심이 있어야지. 덜어내지 말고 천천히 다 먹어둬라."

밥을 얹어주셨다. 아무래도 그때 꾸역꾸역 먹은 쌀밥 때문에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가긴 한다.


어머니는 보리밥을 싫어하셨다. 언제나 콩이며 잡곡을 넣지 않은 하얀 쌀밥을 지었다.

"나는 보리밥 싫다. 시집오기 전에 질리도록 먹어서 부잣집에 시집가면 원 없이 쌀밥만 먹기로 작정했으니까."

사실 어머니는 부잣집 맏이였는데, 어찌어찌 가세가 기울어 보리밥도 못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한다. 입 하나 덜기 위해 열여덟에 시집온 것이고, 시댁이 부잣집이라는 소리 듣고 혼사를 결정했다 하니, 그 가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부자라 해도 시골 부자가 얼마나 부자였을까? 내리 장가 안 간 시동생 둘에 시누이 둘, 자신의 다섯 남매를 키우며 시부모 공양까지, 그야말로 온전히 자신으로만 살기 힘든 시절을 온몸으로 지켜낸 여장부셨다.

가마솥 가득 밥을 해 식구들 밥 다 푸고 나면 정작 어머니 먹을 밥이 없었다니, 나는 그 세월을 짐작하기 어렵다. 누룽지 먹으면 된다고? 누룽지는 당연히 어른들 몫. 그럼 어머니는 무엇을 드셨을까?

막내아들, 즉 남편을 낳을 때도 가을 콩 수확을 하고 와서였다니, 내가 지금 사는 것은 다 엄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어머니가 매일 흰쌀밥을 드신들 어떠냐. 어머니는 건강하게 잘 사시다가 서운한 듯 가셨다. 잡곡밥을 보면 가끔 어머니의 흰쌀밥이 떠오르곤 한다.


다시 콩으로 돌아오자. 콩은 사실 안 먹어도 그만인 곡식이긴 하다. 두부며 된장, 청국장, 두유 등 대체 식품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굳이 콩 안 먹는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나, 먹어두면 좋다니 권하는 정도만 해야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는데, 나도 가끔은 흰밥을 짓기도 한다.


결이 좀 다른 얘기지만, "내 생일이 콩 볶아 먹는 날이니까 너는 평생 내 생일 잊지 않겠구나!" 말하곤 했던 친구 숙이가 떠난 지 10년 가까이 된다. 숙이와 나는 성격이 정반대였다. 명랑하고 밝은 데다 목소리도 쨍해서 그 애는 긍정의 삶을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떠나기 2년 전쯤 고향 사는 친구를 찾아와 점심을 같이 먹었던 봄이 잊히지 않는다. "다음엔 내가 살게." 그녀는 끝내 우리에게 밥을 사지 않았다.


며칠 있으면 '콩 볶아 먹는 날', 그녀의 생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일이니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하던 그녀와 함께할 수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콩 볶아 먹는 날이 잊히듯 하늘 저 먼 곳에서 잘살고 있을 친구도 서서히 잊힌다.


콩 볶는 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

콩은 웬만하면 다들 알아서 챙겨 먹는 건강식품이 되었다. 따로 곡식을 볶아 먹는 날을 잡아 연례행사 치를 일도 없다. 이제 그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들이나 기억할 뿐, 주변 누구도 음력 이월 초하루 '콩 볶아 먹는 날'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한 나라의 고유한 세시풍속이 사라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길 일만은 아니다. 풍속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옛것을 고집하는 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고 챙겨야 할 일은 그 풍속에서 지금 우리가 얻고 취할 것까지 버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콩을 볶는 목적은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 벌레나 쥐, 두더지의 해를 막고 새삼 같은 잡초의 번식을 막고 재액이나 질병을 이방(豫防) 하여 농작물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한 것'

'곡식이 잘 여물라는 의미에서 콩을 볶기도 하는데, 콩이 톡톡 튀는 소리가 곡식 여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위의 예를 보니 정겹다. 대보름 쥐불놀이도 이와 같지 않은가.

옛것을 버리면 새것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새것은 결코 저 혼자 뚝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다. 옛것을 딛고 선택한 일이다.

몇 지인들에게 물었다. '콩 볶아 먹는 날'을 아느냐고, 기억하냐고. 다 각자 달랐다. 같은 기억이 있기도 했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려 서로 반갑게 공유하며 그맘때로 돌아가 보기도 했다.


콩을 먹다가 심심하면 콩 껍질을 벗겨내 머리카락에 콩 눈을 걸었다. 앞머리에 주렁주렁 콩을 달고 머리를 살살 흔들면 콩 소리가 났다. 누가 더 많이 달았는지 개수를 세어보는 일도 있었다는 추억이 한바탕 나오기도 했다. 더 젊은 친구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며 우리들 얘기에 끼어들기도 했다. 더 재밌는 것은 딸의 말이다.

"툭하면 올라오는 콩도 미워 죽겠는데 날 잡아 콩을 볶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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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식 가루 콩, 율무, 귀리, 팥, 흑미, 찹쌀 등을 넣어 만든 선식


요즘은 콩과 곡식을 직접 볶지 않고, 방앗간의 도움을 받아 선식 만들어 편하게 먹는다. '콩 볶아 먹는 날'이라는 풍속의 날을 대신하는 퓨전 음식이다. 입맛대로 두부를 갈아 넣거나 견과류도 얹는다. 밥 한 끼 대신하기 딱 좋은 곡식의 융합이다.

오늘도 섞었다. 콩이며, 보리, 흑미, 찹쌀, 그 외 몇 포기 심어 가을에 손질해 둔 강황 가루까지 넣어 밥을 짓는다. 잘 섞인 잡곡밥이 담긴 밥그릇을 앞에 놓고 앉아, 지난날 가난과 채워지지 않던 배고픔을 씹으며 눈물을 삼켰을 내 어머니들의 한숨을 생각하기도 한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님이 한마디 하실 것 같다.

"콩 갖고 뭔 짓이냐. 별일 다 본다니까. 고것이 밥이여 시방?"

섞인다는 것이 다 좋을 수는 없으나 섞이는 과정을 통해 오랜 풍속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도 한다. 옛것을 지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나, 옛것을 토대로 더 발전하는 풍습이 나오고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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