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랑 Dec 13. 2023

엄마가 읽는 아들 결혼식 축사

보통날의 시선 14

지난 주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봄날처럼 포근한 겨울 날씨였다. 멀리서 가까이서 오시는 하객들도 날씨 얘기를 많이 언급했고 맞이하는 가족도 복된 날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결혼 이 주일 전쯤인가. “엄마가 축사 좀 써서 읽어주세요.” 하는 아들의 말에 깜짝 놀라 “내가?”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라 당황하였는데, 뭐, 그럴 수 있겠네. 엄마가 아들 결혼 축하하는 의미로 축사 정도 읽어도 되겠네. 하는 마음으로 축사를 쓰기 시작했다. 


축사를 쓰면서, 자식들 결혼 축사야말로 꼭 한 번 써 볼 필요가 있다는 것, 낭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축사를 쓰면서 지나온 일을 더듬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결혼식은 예전처럼 주례사 없이 기존의 형식을 과감히 생략하고 본인들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기획하는 추세니까 축사 또한 요즘 트렌드에 맞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어릴 적부터 소년, 학창 시절은 물론 군대 갔을 때, 서울살이, 그리고 귀향과 며느리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는 귀한 시간이었다. 


축사를 읽고 나서 친구나 하객들로부터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는데, 엄마가 읽으니 신선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제 아빠들한테도 한두 개 역할을 주었다. 자기들의 축제에 부모와 함께 어우러지는 결혼식을 꾸미려고 애썼다는 게 보였다. 축사는 아주 간단했다. 낭독 시간은 5분으로 맞췄는데 나중에 다시 듣기로 확인하니 6분이 걸렸다. 


사랑하는 아들 ㅇㅇ그리고 ㅇㅇ!

     

오늘은 너희 둘의 날이구나.

잔치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

양가 부모님과 가족친지들과 친구동료들의 진실한 마음을 다해 결혼을 축하한다.

     

오늘 드디어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이구나너희들도 좋겠으나 부모인 우리도 좋다부모와 자식이 한 몸으로 있다가 분리된다는 사실이 곧 결혼이 아닌가 생각한다이제부터는 너희들만의 가정을 멋지게 꾸려보아라살아 보아야 부모가 어떻게 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심초사했는지 좀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ㅇㅇ!

엄마는 너와 친구처럼 지냈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떤지 모르겠다한때 네가 추천해 준 영화를 보고 나면 엄마 친구들한테 기분 좋은 인사를 받곤 했지. “역시 ㅇㅇ이가 추천해 준 영화는 볼만하다.”.

ㅇㅇ가 옆에 있으면서는 그런 것도 없더라만별로 서운하지는 않다옆에서 보니까 우리 아들 ㅇㅇ한테 진심으로 잘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더라네 여자한테 잘해야지그럼아주 잘하고 있는 일이란다

     

ㅇㅇ!

ㅇㅇ이를 만나 오늘 이렇게 결혼식을 하는 게 엄마로서는 무척 흐뭇하고 행복하단다예쁘고 성격 좋고 지혜로움과 타인을 위한 배려까지 지닌 ㅇㅇ를 ㅇㅇ이는 어떻게 만났을까ㅇㅇ이는 복이 많구나.

 

엄마가 좋아하는 시가 있단다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인데 이런 구절이 있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에 비추어 보면 ㅇㅇ와 ㅇㅇ이는 서로 얼마나 귀한 인연으로 만난 것이니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형성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축복받은 인연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단다부모로써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만큼 ㅇㅇ는 무엇이든 야무지게 잘해 낼 것이란 믿음을 처음부터 알아차렸단다고맙다ㅇㅇ

     

ㅇㅇ

너 그거 아니

엄마는 네 효도를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다 받았다고 생각한단다그날의 네 효도가 엄마를 감동으로 울게 했기 때문이란다사실은 너 군대 갈 때 울지 않았다고 그런 엄마가 어디 있냐고 했던가근데 그게 뭐 울 일이니건강해서 군대 가는 것인데

     

효도 별것 없다부모를 설레게 하고 울컥거리게 하고 흐뭇하게 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그래서 지은 엄마의 동시를 오늘 축하객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려고 한다물론 이 동시의 저작권은 우리 가족에게 있으니 그리 알아라왜냐하면 네 일기를 바탕으로 엄마가 새롭게 창작했기 때문이다.

     

               쫀드기와 아카시아 껌

     

   누나와 문방구에서 만나기로 한 날

   어버이날,

 

   땀 날 때 닦으라고 아빠의 손수건

   꽃이 달린 엄마의 머리핀이 누나의 선물

     

   나는 용돈이 모자라 좋은 걸 못 샀다.

   엄마가 좋아하는 아카시아 껌

   아빠가 좋아하는 쫀드기다

     

   아줌마한테 포장해달라고 하니

   왜 이걸 포장하니?

   나는 비밀이라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껌을 씹으며 울먹거렸다

   최고의 선물이라나!

     

   아빠가 쫀드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맛나다하셨다

     

ㅇㅇㅇㅇ!

우리 이렇게 살자가슴 설레는 일 많이 만들며 서로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자

ㅇㅇ이는 ㅇㅇ 잘 챙기고 ㅇㅇ는 ㅇㅇ이 잘 챙기며 너희들만의 퍼펙트한 가정을 만들어 보거라여기 계신 많은 축하객들이 격려하고 지지하고 이끌어 주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쭉 잘 살아라잘 사는 법은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더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그것은 가까운 이에게 인색하지 말라는 것이다가족과 친척친구이웃은 너희들을 둘러싼 든든한 배경이란다그 배경을 잘 챙기고 가꾸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부탁한다.  

     

이상 ㅇㅇ이 엄마ㅇㅇ의 시어머니 ㅇㅇ의 결혼 축사였습니다다시 한번 참석해 주시고 멀리서 축하해 주신 많은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고맙습니다.  

     

축사를 마치고 나니 이제야말로 비로소 아들을 독립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부부도 많이 변했다. 둘만 남은 집이 뭔가 텅 빈 듯하다. 자식들만 독립한 게 아니라 우리 또한 독립했다는 실감이 확 들었다. 자식은 자식의 삶을 살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면 된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도 진정한 독립이다. 


신혼여행지에 있을 아이들이 돌아와 새로운 가정을 이뤄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부모는 이제 멀찌감치 서서 울타리로 존재하면 그만이다. 주인공은 우리의 자식들이다. 젊은 부부들이 좀 더 살기 편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