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봄날 - 질문과 대답

보통날의 시선 68

by 호랑
보통날의 시선 68 목련 그림.jpg


인생의 끝에서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곰곰 생각해 보니, 그다지 남길 것 하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재물도, 나만의 철학도, 특별한 물건도, 지니고 있는 어떤 고유함도 딱히 없다는 사실에 차라리 홀가분하다. 남길 것 없어 얼마나 좋은가. 어느 것에도 전전긍긍할 일 없으니, ‘자유는 그저 ʻ더는 잃을 것이 없다’의 다른 말이다.’라는 명쾌한 말에서 답을 얻고 위안받는다. 잃을 것 없다는 말은 곧 남길 것 없다는 말과 통하지 않는가.


가끔 떠올리는 생각인데, 도도한 물결처럼 거침없이 흐르는 세상을 여기 이대로 두고, 휘몰아치는 겨울 칼바람 속에서 흔적 없이 휙, 온몸에 쏟아지는 햇살 세례 담뿍 받으며 스리슬쩍 삶에서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다. 가능하다면 어린 날 뛰놀던 들과 산, 강가의 자연 속에 나를 놓아두고 싶다. 모든 집착과 인연의 끈을 놓고 가볍게 갈 수 있는 일, 얼마나 좋은가.


이십 대 중반의 사촌을 보내던 날, 나는 중학생이었다. 어떤 죽음 하나가 이토록 생생하게 내 생을 송두리째 휘감을 수 있을까 싶게 죽음은, 살아있다는 사실 만큼이나 생생하고, 놀랍고 두려웠다.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던 성역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한 슬픔은 오래 봉인되었고, 남은 자들은 각자의 이별 방식을 익히고 다독이며 살아갔다.


젊은 상여가 나가던 날, 초가을 오후 햇살은 찌르듯 날카로웠다. 거짓말처럼 투명하고 아팠다. 내가 맞닥뜨린 첫 죽음이었다. ‘삶이란 이렇게도 생생한 이별로 그 끝을 마치는 것이구나’라는 골똘함으로 손가락이 아프도록 가지잎을 쥐어뜯었던가.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던 손바닥에서 섬찟한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였다. 그 섬찟함이란, 보라색의 깊이였고, 내 안에서 솟는 생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흰 죽음과 보라색 슬픔은 사춘기 아이가 감당하기에 버거웠다. 어른들의 슬픔은 어린 슬픔을 보듬어줄 겨를이 없었다. 한 슬픔은 오래 봉인되었고, 남은 자들은 각자의 이별 방식을 익히고 다독이며 살아갔다.


삶이란 크고 작은 상실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다름없다. 그 상실의 크고 작음, 얕고 깊음의 차이가 있을까만, 감당할 만큼의 슬픔이란 없다. 슬픔은 그저 슬픔이어서 온전히 아프고 외롭게 나하고 독대하는 것이다. 누가 죽음 앞에서 슬픔의 경중을 따질까. 삶의 지극한 가벼움과 허망을 깨닫는 일은 우리 몫이다.


부모를 여의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함께 한 여행과, 챙겨 먹었던 음식이었고, 계절을 통과하면서 나눈 공간과 시간의 틈새, 일상의 다정한 말과 따뜻한 눈길이었다. 부모는 함께 한 시간의 총량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존재였다. 부모가 그렇듯 관계를 형성하고 살았던 사람들 또한 그런 맥락으로 존재하고 기억될 것이다.


이제 ‘인생의 끝에서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정리하고 대답할 일이 남았다. 앞에서, 남길 것 없어 홀가분하다고 했으나, 생각해 보면 왜 남기고 싶은 게 없을까.


우리는 삶의 예고 없음을 부지불식간에 맞닥뜨리며 살아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고하게 가름하며 모른 척, 멀리 있는 일처럼 짐짓 외면하곤 한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삶과 죽음의 길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결코 따로 둘 수 없어, 얽매일 수밖에 없는 친근한 굴레다.


“너를 만나 보낸 시간만큼 나는 너를 기억하겠지. 너 또한 그러할까?”

“우리 더 자주 힘껏 눈 맞추고 살자!”


남길 것은 결국, 좋은 기억이든 그렇지 않은 추억이든 함께 한 시간을 두루 간직하는 일이다. 훗날 꺼내 볼 기억과 추억이 건조하지 않아, 언제든 햇살에 비추어 반짝일 수 있도록 애써 가꾸는 마음으로 사는 일, 그것이다. 그러니 오늘 나는 공중에서 터지는 목련 봉오리를 향해 하얀 눈 맞춤을 오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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