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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 Feb 17. 2022

군중 속의 고독이 필요한 날에는

보지도 않을 시트콤을 틀어놓는 사람의 변명



그러니까 나에게는 사람 소리가 필요하다는 것,
그 이야기가 하고 싶다.


  혼자 사는 삶이란 뻔하다. 언뜻 자유로움과 지루함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내가 가장 지겹게 이어오고 있는 싸움은 결국 침묵과의 싸움이다. 침묵이 못 견디게 시끄러운 이명이 되는 바로 그 역설적인 순간, 나에게는 소리가 간절히 필요해진다. 음악을 틀자니 매번 곡을 고르는 게 과한 노력처럼 느껴진다. 기분과 정확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찾는 건 순전히 운의 문제라는 걸 모른척하기에는 내게 주어진 자유가 너무 크니까. 라디오나 팟캐스트는 어떨까. 광고? 딱 질색이다. 그럼 다시 듣기는 어떠냐고? 라디오의 본령인 음악을 잘라낸 편집본을 듣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탈락. 그래서 틀어놓는다. 보지도 않을 시트콤을, 적당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볼륨으로.


  <프렌즈>, <모던 패밀리>, <빅뱅이론>, <브루클린 나인 나인>…. 공통점이라면 당연히 시트콤이라는 장르다. 모두 잘 짜인 훌륭한 시트콤이고 인기도 많지만, 아무래도 시트콤은 취향을 아주 많이 타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시트콤을 본 적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본 적은 있다 하더라도 관객들의 녹음된 웃음소리에서 나는 인위적인 느낌 때문에 웃음을 강요당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주변 지인들의 대다수가 이 이유로 시트콤을 거부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혹은 미국식 유머가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밝혀두건대 나는 앞서 언급한, 비꼬기와 유머, 순진한 바보스러움이 가득해서 마치 알록달록한 꾸러미 같은 그 시트콤들을 정말이지 너무나 좋아한다.


  프렌즈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시트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영어 쉐도잉 하기에 좋다는 풍문을 듣고 시즌1의 1화 정도는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한도전을 아직까지 정서적으로 차마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프렌즈는 미국인들에게서 그보다 더한 애정과 인기를 지금 이 시대까지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방영 당시에는 어땠겠는가. 그 엄청난 인기는 한 시즌에 약 20개의 에피소드씩 총 10개의 시즌까지 이어진 시리즈의 대장정으로 방증할 수 있겠다. 총 200편이 넘는 이 드라마를 나는 끊임없이, 말 그대로 정말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는데, 그러다가 이제는 어떤 장면에서 어떤 억양으로 무슨 대사가 나올지까지 외울 지경이 되어버렸다.


  자, 숨차게 늘어놓은 프렌즈를 향한 나의 사랑은 이쯤 해서 정리하도록 하자. 이제는 왜 하고많은 장르 중에서 시트콤인가에 대해 변명할 차례인 듯하니까. 한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너는 왜 봤던 걸 자꾸만 돌려보냐고, 질리지도 않냐고. 답은 간단하다.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계속 보는 것이고, 봤던 것들이라 제대로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묘하게 꼬리잡기 같은 이 대답이 아리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면 다시 처음에 했던 얘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나에게는 침묵이 좋은 순간도 분명히 있지만, 그보다는 공허함으로 다가올 때가 더 많다. 침묵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이명이 되면 그걸 덮어줄 소리가 간절히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몰입해서 빠져들 세계나 눈길을 사로잡을 영상미를 원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의 나에게는 적당히 흘려들을 수 있는 사람 소리가 필요하다는 것, 그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시트콤이다. 적당히 심각하고,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감동적이라서. 미간을 찌푸릴 만큼 집중할 필요가 없고, 놓친 장면을 찾기 위해 화면을 두드리지 않아도 돼서.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게으른 태도가 오히려 다음에 또 봐도 재밌는 이유가 되어 준다는 건 딱 시트콤스럽게 빈정대는 유머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사랑스럽고 친근한 등장인물들이 부드럽고 거슬리지 않는 군중의 소리가 되어주는 동안, 그 안에서 나만의 달콤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런 적당히 즐거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팟캐스트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나에게도 군중 속의 고독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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