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홀을 결심하기까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덜컥 퇴사를 해 버린 게 지난 2월 말. 계획도 없이 무모한 결정을 내린 사람으로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난 불안을 이겨내기 힘들어 무작정 새 프로젝트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말하자면 천직을 찾고 싶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뭐라도 상관없었다.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참을 수 없이 두려웠으니까.
몇 년 전에 슬쩍 발만 담갔다 관뒀던 코딩을 다시 건드려 보기도 하고, 아니다 싶자 관두고는 그래도 IT 업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꽂혀 프로젝트 매니징을 배울 수 있는 부트캠프나 교육 과정을 조사하느라 밤을 새웠다. 내 삶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했던 것들을 꼽다가 커피를 업으로 삼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짧다면 짧은 몇 개월동안 충동적으로 무언가 잔뜩 시작했다가 그중 반이 넘게 각기 다른 이유로 관뒀다.
그러다 그냥 지쳐버렸다. 답이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제발 좀 보였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막막하고, 한심하고, 답답했다. 당장 맞는 길을 찾아서 한시바삐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이 목 끝까지 차올라 있는데 뭐가 정답인지 도대체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뭔가 잔뜩 검색하고 찾다가 지쳐버린 늦은 밤에, 뭔가 끊어진 것처럼 하던 걸 문득 다 멈췄다. 그리고 호주 이민성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해 버렸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비자 신청 버튼을 누르고, 비용을 결제하고, 워홀 건강 검진을 받고, 마침내 'Granted'라고 적힌 비자 승인 서류를 받기까지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비자는 받았지만 그때까지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두려웠다.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가봤자 농장이나 공장, 혹은 식당에서 알바만 하다 올 텐데 결국 시간 낭비라는 시선도 있을 테니까. 사실 그런 시선이 두려웠던 건 내 안에 그런 의심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난 결국 비행기표를 사고, 임시 숙소를 예약하고, 무서웠다가 설렜다가 후회했다가 하면서 꾸역꾸역 바로 이곳, 멜버른까지 왔다. 그리고 어느새 4주가 지났다. 예상했던 대로 난 무서워하고 낯설어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것은 지금 내 삶에서 꼭 필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도록 답답하고 숨 막히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꺼내주고 싶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먹고사는 일이 어떻게 안 힘들 수 있을까. 당연히 많이 힘들고, 그래서 4주 동안 벌써 많이도 울었다. 앞으로도 더 많이 두렵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 지금이 아니면 못 하는 도전이라는 건 안다. 10시간이 넘게 날아온 이곳에서도 난 여전히 삶의 답도 방향도 모르고, 가까운 미래에 어느 순간 마법처럼 알게 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이게 지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기억할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