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산책을 추천했다가 다시 주워 담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만큼이나 이 글이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이길 바라지만,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 아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재빠르게(제 발 저려) 털어놓는다. 실망스러운 소식은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걸 알 정도의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변명이 더 길어지기 전에 말하자면, 이번에는 산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거한 식사 후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산책이 아니라, 그저 생각하기 위해 걷는 산책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노래를 듣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 혹은 나 말고 살아있는 존재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수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마지막 이유로 산책을 나가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나는 자랑스러운(과장 없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1인 가구이지만 애석하게도 혼자 사는 일이란 쉽게 위태로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흠, 돌부리로군.’하고 심심한 반응을 보일 만한 일에도 나는 유난을 떨며 대차게 넘어져 여기저기 멍이 드는 타입이다. 아무래도 이 비유에 대해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듯한데, 다시 말해 사소한 일에도 쉽게 우울과 불안에 잠긴다는 뜻이다. 그럴 땐 세상에는 내게 일어난 사건 말고도 다른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때 가장 필요한 동시에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산책을 나가는 일이다.
우리 집 근처에는 조경이 잘 된 산책로가 있다. 그리고 그 길에 햇살이 따뜻하게 비칠 때면 고양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잔디밭에 앉아 일광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른하고 감미로운, 그야말로 마음을 녹이는 장면임은 분명하지만 종일 그 녀석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발을 떼야한다. 자, 당신은 걷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나오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으므로 일단 나왔으면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 한다. 2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온 건 아닌지 잠시 걱정하겠지만, 걸으면 덜 추워지리라 생각하고 방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다리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기온이 적당하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주변 풍경에 대한 흥미도 서서히 증발한다. 자, 바로 지금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산책의 본질이 시작되는 지점이. 이제 머릿속에 더 이상 고양이는 없다. 당신이 마음 한구석에 밀어놓았던 가장 골치 아픈 고민과 당신, 그렇게 둘만이 남는다. 신발 속 모래알같이 늘 거슬렸던 그 익숙한 것을 가만히 머릿속에서 굴려본다. 걷다 보니 고민이 더 깊어진 것 같기도, 혹은 실마리가 보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걸어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이나 갑갑함 따위가 계속해서 거기 있을 것이다. 그것과 당신 사이의 이 내밀한 시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산책은 나에게 자주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 나는 걸으면서 하염없이 깊어지는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이 환기되는 기분이 들었던 날도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부제가 저 모양으로 우유부단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나는 꽤나 자주 산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내 말을 주워 담고 싶어지기도 한다. 물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좋은 일이고 거기에 뒤따르는 작은 만족감이 고민의 무게를 덜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고민, 그렇게 둘만 남는 시간은 퍽 두려운 일이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건 그 대면이 축적되다 보면 당신의 내면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강해질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이 산책을 했으면 좋겠다. 잠깐, 오늘은 날이 흐리니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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