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포베냐에서 라레도(36.8km)
2019년 6월 1일(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 10일째 되는 날이다.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은 까만색이 점점 주황색을 머금고 있었다. 어제 남긴 냉동 볶음밥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어제 해수욕했던 해변에서 순례길은 언덕으로 이어졌다.
언덕을 오르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같이 길을 나선 순례자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사진을 부탁했다. 이윽고 하늘로 떠오른 태양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춰주었다. 아침이어서인지 태양빛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카스트로 우디알레스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40분이었다. 너무 쉽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어제처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해변에 있는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을 하는데 점심시간을 알려주듯이 버거킹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지만 문을 여는 시간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일단 리엔도까지 가기로 결정을 하고 배낭을 어깨에 멨다.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는데 일단의 중년 여성들이 줄을 지어 어느 가게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어디를 가나 싶어 따라 가보았다.
중년 여성들의 줄은 과일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중년 여성들이 줄을 지어 가는 가게이니 손해는 안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그 줄에 동참했다. 바나나와 납작 복숭아를 구입했다. 0,75유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나는 점심을 해결했다. 포베냐에서 만났던 다른 순례자들은 카스트로 우디알레스에서 묶으려는지 알베를 찾아가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난 순례길은 바다를 끼고돌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길을 걷다가 처음으로 반대편에서 오는 순례자를 만났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 산티아고에서 반대로 순례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자신을 칠레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배낭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바탕에 새겨진 깃발을 둘러메고 있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랐지만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걸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서로에게 Buen Camino로 인사했다.
정오를 지난 태양은 정말로 뜨거웠다. 어제저녁에 구름이 없는 날씨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순례길 짐을 싸면서 나는 모자를 두 개 준비했다. 하나는 둥그런 창이 있는 등산용 모자이고 하나는 야구 모자였다. 그런데 이룬에 도착해서 길을 헤매던 나를 태워준 그 고마운 차에 등산용 모자를 두고 내려버렸다. 그래서 남은 모자를 쓰고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늘이 되어주는 창이 앞쪽에만 있어서 귀와 목은 뜨거운 태양에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 그늘도 없는 바닷가 길을 걸으면서 이때부터 태양에 노출된 피부들이 검게 타다 못해 나중에 샤워하다 보니 빨갛게 익은 것을 발견할 정도로 스페인의 태양은 뜨거웠다.
오리뇬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나는 반대편 길에서 열심히 페달을 굴리며 올라오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자전거는 두 명이 타는 것이었고 노년의 부부가 열심히 숫자를 외치면서 페달을 굴리고 있었다. 나는 내려가는 길이라서 편했지만 부부는 바다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이었으니 뜨거운 태양 아래서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부는 숫자를 함께 외치면서 즐겁게 페달을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부부가 한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된다. 부부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격려하면서 길을 간다.
나와 아내는 결혼 후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여보였다. 어느 책에서 여보를 한문으로 같을 여(如)에 보배 보(寶)라며 서로를 보석과 같이 여기는 것이 부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부부가 서로를 나보다 나은 보석으로 여기면 서로가 보석과 같을 것이다. 숫자를 외치며 즐겁게 자전거를 구르던 부부의 모습은 서로를 보석과 같이 여기는 부부였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오리뇬 해변을 벗어나면서 나는 혼자서 길을 걷는 순례자를 만났다. 그도 한낮의 태양에 지친 모습이었다. 잠시 쉬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리엔도까지 간다고 하기에 반가웠고 함께 얼마를 걸었다. 그런데 지쳤는지 그는 밑에 보이는 마을로 가겠다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때가 14시였다. 리엔도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0km 정도. 얼마를 가니 카미노 앱은 산으로 나를 안내했다. 산으로 갈까 하다가 책에서 N634번 길을 따라갔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짧다는 것 하나만 보고 나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로는 산을 휘감아 돌아갔다. 그래서 이쪽저쪽 그늘을 찾아 걸었다. 하늘의 구름이 정말로 그리운 시간이었다.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다.
리엔도를 4km 정도 앞두고 차량이 쉬는 공간이 보였다. 그늘도 있고 물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이어서 나도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의 다 도착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추더니 조수석 창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멈추라고 말을 했다.
외국인인 나에게 길을 물어볼 일은 만무했다. 하지만 혹시 나를 태워주려나 하는 생각도 했기에 멈춰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안에 있는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운전석에는 젊은 청년이 앉아있었고 조수석 뒤에는 인종이 다른 젊은 여성이 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지갑에서 자기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지나가는 차량 소리에 잘 들리지가 않아서 “what”을 몇 번이나 외쳤다. 그랬더니 운전석에 앉아있는 젊은이가 “passport”라고 크게 외쳤다. 순간 뒷덜미가 싸했다. 뒤에 있는 젊은 여성은 인종이 다르고, 경찰 신분증도 아닌 신분증을 내민 사람이 여권을 보여 달라니 이상했다. 나는 “Are you police”라고 물었다. 그러자 두 명은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해서 “passport”를 외쳤다.
나는 도둑이구나 하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계속해서 “Are you police”를 외쳤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내가 중국인 같고 중국인은 마약을 한다는 말을 하면서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배낭에 붙여놓은 태극기를 가리키며 한국인임을 말했다. 그리고 경찰인지를 계속 물었다. 그러자 이들은 알 수 없는 스페인 말을 하며 사라졌다.
가뜩이나 체력이 떨어져서 힘들었는데 이런 일까지 겪으니 정말 힘들었다.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하니 목이 타서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기운이 빠져서 한참을 쉰 뒤 리엔도 알베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리엔도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알베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알베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내 귀에 우리나라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앞쪽에 두 명의 한국분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분은 빌바오에서 만난 스님 일행이었다.
스님 일행을 처음 만난 곳은 빌바오 알베였다. 침대 배정을 받고 짐을 정리한 후 입구에 나왔는데 한눈에 봐도 스님이란 것을 알 수 있는 남성이 서있었다. 서로 한국분이냐고 물었고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스님이시죠?” 하며 말을 건넸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말에 군에서 군종목사로 있었고 그래서 스님들은 쉽게 알아본다고 했더니 그러냐며 스님은 웃었다. 함께 온 분은 여성분이었고 난 이때 결혼한 스님인 줄 알았다. 나는 스님 일행이 알베에서 묶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샤워를 하고 나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북쪽 길 출발지인 이룬으로 갔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행을 리엔도에서 만난 것이다. 스님 일행은 빌바오 알베에서 자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순례자 여권을 받은 후 걷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스님 말로는 리엔도 알베에 남은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14시 이후로 3시간 넘게 길을 걸어왔는데 자리가 없다는 것은 다음 마을인 라레도 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레도까지 거리는 5km가 넘었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1시간 30분은 걸어야 했다. 혹시 모르니 알베에 가보자며 스님은 나를 끌고 알베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국인 부부도 있었다. 그분들도 알베에 자리가 없다는 말을 하셨고 조금 기다리면 알베 관리인이 오니 한번 사정을 이야기해보자며 좀 쉬라고 했다.
쉬는 동안 나는 여권을 달라고 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분들은 한국 여권이 비싸다며 필시 그들은 여권을 노린 도둑들이었을 거라며 알베를 제외한 그 어느 곳에서도 여권을 제시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해주었다.
18시가 다 되어서 알베 관리인이 와서 먼저 와있던 사람들 접수를 받고 침대를 배정해주었다. 역시나 침대는 없었다. 관리인은 나를 보면서 집이 라레도라며 자기 차로 라레도 알베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순간 갈등했다. 빌바오 오는 길에서, 포르투칼레테 오는 길에서 편안한 전철을 보면서도 걷기 위해 왔으니 걸어야지 다짐을 했는데 오늘 그 다짐을 깨야 하나? 하는 내면의 소리 때문이었다. 관리인은 10분 뒤에 자기는 출발하니 그때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시간은 1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태양은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스님 일행과 부부도 나에게 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이 더위에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더 이상은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할 길을 생각했고 또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걱정해주는 분들의 의견을 따라 관리인의 차를 얻어 타고 라레도 알베까지 왔다.
라레도 알베까지 오는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걸었던 N634번 도로를 타고 라레도 입구까지 5분. 그리고 도심에 위치한 알베까지 3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참 편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라레도 알베는 수녀원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성당이 바로 옆에 있었고 장애우 공동체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알베에 도착하면 늘 하던 일을 끝내자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다. 피식 웃으면서 지도에 표시된 마트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빵과 음료수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알베에 들어와서 준비해 간 실과 바늘을 꺼냈다. 오늘 걸은 거리의 3분의 2는 아스팔트 도로였다. 그래서인지 발에 물집이 잡혀버린 것이었다. 바늘에 실을 꿰어서 물집을 관통한 실을 물집 사이에 끼웠다. 옆에서 독일 청년이 가만히 내가 하는 모습을 보더니 놀랜다. 아프지 않냐고 하길래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말도 안 되는 영어였지만 말이다. “It’s korea army style” 자기 위해 누웠지만 한 가지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차량으로 이동한 5km를 어떻게 하지? 였다.
그냥 이룬에서 헤맨 걸로 퉁칠까? 나중에 산티아고 가서 5km를 더 걸을까? 별별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