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에 대하여 그리고 진리의 길

9일: 빌바오에서 포베냐(27.82km)

by 박동식

2019년 5월 31일(금)


선크림을 득템 한 셰어박스.

파란 하늘을 봐서인지 아니면 어제 득템을 해서인지 개운한 아침이었다. 어제저녁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오다 셰어박스를 봤다. 셰어박스는 알베에 있는 상자를 말한다. 이 박스에는 자기에게 필요 없지만 다른 순례자들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품을 넣어두는 곳이다. 스페인 하숙에서 봤기에 나도 혹시나 해서 열어보았다.


이곳의 태양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크림을 사려고 했는데 누군가 사용하지 않은 선크림을 넣어두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용량을.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나는 선크림을 얼른 주어서 침대로 돌아왔다. 이후 프리미티보 길을 걸으면서 나는 셰어박스의 덕을 한 번 더 맛보게 된다.

몇몇 공립 알베는 아침을 제공해줬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식빵과 커피, 주스 그리고 우유가 전부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순례자들에게는 이것도 감사하다. 따뜻한 식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딸기잼을 발라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었다.


이른 아침이라 걸으면 춥지 않을 정도로 한기가 도는 날씨였다. 문을 나서니 알베 밑으로 빌바오의 도심지가 안개에 살짝살짝 보이고 있었다. 알베가 위치한 산 정상을 넘으니 금세 길은 내리막으로 바뀌었다. 산을 내려간 순례길은 도로를 건너고 다시 산으로 이어졌다. 도로를 건너면서 전철을 보니 어제 생각이 났다.

라라베추에서 빌바오까지는 이렇다 할 구경거리가 없다. 작은 마을 두 개와 공장지대가 전부다. 공장지대 끝에서 산을 넘으면 바로 빌바오였고 이 구간에는 전철이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순례자들은 이 구간을 생략하고 전철로 빌바오까지 가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오늘 목적지인 포르투갈레테까지도 어제와 같은 길이었다.


내리막길을 내려왔을 때 발바닥이 이상했다. 그동안 신었던 양말이 아니라 어제 산 양말을 신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망정이지 양말을 갈아 신지 않았으면 물집이 잡힐 뻔했다. 양말을 바꿔 신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포베냐에서 나는 어제 산 양말을 빡빡 문대어 빨았다. 새 양말이 좋지만 먼 길을 걸을 때는 꼭 빨아서 신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난다.

빌바오 외곽에 위치한 공장지대와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순례길은 여태까지 걸었던 길과는 사뭇 달랐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옆에 두고 두 발로 걸어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 안에서는 두 마음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전철을 보니 내면의 싸움은 더 심해졌다. 그러는 중에 산 입구에 도착했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산을 돌아가는 길 나머지는 산을 넘는 길이었다. 카미노 앱은 산을 넘어가는 길이 굵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어제 산 스틱을 시험해볼 겸 나는 산을 넘는 길을 선택했다.


해발 30m에서 올라가기 시작한 산은 184m 정상에서 빌바오의 멋진 풍경을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바다와 인접한 빌바오였기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정상에 올라가니 거친 숨을 잠시 쉴 수 있는 의자가 조그만 성당 앞마당에 있었다. 그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5명의 외국인이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했다.

부부와 아들 두 명, 그리고 딸 한 명의 가족이었다. 서로 웃으며 인사하니 미국에서 온 가족이었고 딸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k-pop을 아는지 한국 노래 이야기를 했다. 온 가족이 대서양을 건너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참 보기 좋다며 가족을 향해 엄지 척을 해주었다.


잠시의 휴식을 끝내고 길을 걷는데 알베에서 같이 출발한 두 명의 이탈리아 여성이 정답게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같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스틱이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러냐고 하면서 대단한 만남이라고 한다. 이유를 물었다.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은 한국 제품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신발이 만들어진 나라 사람과 등산스틱이 만들어진 나라 사람이 이렇게 만난 게 대단한 것 아니냐며 기뻐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니 이탈리아 여성의 말도 맞는 말이다. 서로가 자기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있는 길을 걷는다. 그런데 자기가 사용하는 신발과 등산스틱을 만든 나라 사람을 만나니 대단한 만남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 대단한 만남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살면서 별거 아닌 사소한 것에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했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와 아내는 아이들의 사소한 것에도 만세를 부르고 기뻐했다.

양구에서 근무하던 시절 큰 아들이 3일 동안 똥을 누지 못했다. 돌을 지냈지만 이런 현상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아들도 힘들어했다. 잘 먹으면 금방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린 시간이 3일째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밥상에 앉았는데 아들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더니 밥상 언저리를 두 손으로 꼭 잡으면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주는 것이었다. 밥숟가락을 놓고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힘내라며 응원을 했다. 바지를 벗겨주니 아들은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굴이 터져라 힘을 주던 아이의 엉덩이에서 여태까지 듣지 못했던 소리가 나면서 한 바가지 똥이 나왔다. 나와 아내는 약속이나 한 듯이 “만세~~~”하면서 두 손을 들었고 아들도 덩달아 웃으면서 만세를 했었다.


정말 사소한 일이고 만남이었다. 하지만 사소함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정말 중요함을 나는 이탈리아 여성을 통해 배웠다. 인생은 소중히 여기지만 일초의 소중함을 때로는 잊고 살아가는 게 바쁜 현대인의 삶이 아니었던가. 그런 나에게 하찮게 여겼던 일초의 소중함 그리고 사소하다고 해서 그냥 스쳐갈 뻔했던 것들에 대해서 소중하게 여기며 살자는 다짐했다.

공원 벽에 그려진 그림. 길을 걷는 두 명이 곧 나다.


다리를 건너지는 못했다. 저기까지 내려갔다 올라와야 하니 그냥 패스~~

산을 내려오니 길은 빌바오 공장지대를 따라 조성된 둑방길로 이어졌다. 지나가는 전철을 보니 또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면서 연약한 인간의 내면을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12시가 되어서 포르투칼레테에 도착했다. 산타마리아 성당 앞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니 이 도시의 명물인 콜간테 다리가 보였다. 신혼여행 온 것처럼 보이는 젊은 커플이 사진을 찍어달라기에 찍어주고 나도 콜간테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했다.


시간이 이른지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공립 알베가 문을 열 때까지 네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걷는 것을 선택했다. 목적지는 포베냐로 정했다. 카미노 앱에 나오는 거리는 13km였다. 넉넉히 잡아도 3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포베냐까지 가는 길. 맑은 하늘은 좋지만 걷는 순례자들은 힘들다.

도심을 벗어난 순례길은 약 11km 정도의 포장된 자전거 도로와 인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늘도 없고 군데군데 숲길이 있었지만 한낮의 뙤약볕은 걷는 이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늘의 열기와 도로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라 아레나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부터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왜 그런지는 마을로 들어가니 알 수 있었다. 드넓은 백사장이 길게 펼쳐진 멋진 마을이었다. 호텔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펜션들이 즐비했다.


알베가 있는 포베냐까지는 1km를 더 가야 했다. 하지만 백사장을 끼고 걷는 순례길은 1km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게 했다. 알베에 도착하니 15시 30분이었다. 30분을 기다리니 알베문이 열렸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알베 안으로 들어갔다. 난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보통 순례길을 걸으면 한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 걷는 속도도 다르고 묵는 곳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루비히드라는 프랑스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과는 파사이아 알베에서부터 만났다. 그 뒤 데바 알베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만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루비히드가 데바에서 나에게 붙여준 별명은 거북이였다. 이날도 나를 보자 “turtle park”하며 불렀다. 정리를 끝낸 루비히드는 같이 해수욕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알베에서 3분만 걸어가면 라 아레나에서 이어지는 해변이 있었기에 대충 짐 정리만 하고 그와 함께 해변으로 갔다.

5월의 바다는 차가웠다. 하지만 달궈진 내 몸을 식히기에는 더없이 충분했다. 이 해변에 사람이 가득 찼다.

5월이라 바닷물은 차가웠다. 하지만 태양의 열기에 덥혀진 몸은 차가운 바닷물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겼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니 발끝부터 머리까지 찌릿찌릿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파도도 적당히 몰려와서 그 파도에 몸을 싣고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놀았다. 하지만 5월의 바다는 장시간 있기에는 추웠다.

루비히드가 펴놓은 깔판에 몸을 눕히고 차가워진 몸을 햇볕에 말렸다. 나른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주위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잠시 일광욕을 즐기니 몸이 다시 더워졌고 바다에 들어가서 더워진 몸을 식힌 후 알베로 돌아왔다. 순례길에서 이런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걷고 물놀이까지 해서인지 샤워를 하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19시인데도 해는 아직 중천이었다. 근처에 슈퍼가 있는지 알베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라 아레나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 그렇게 멀지 않게 느껴졌기에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해가 아직 중천이어서인지 그때까지도 백사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에 가니 편의점 같은 곳이 눈에 띄었다. 냉동 볶음밥과 컵라면 두 개와 면도기를 구입했다. 4,75유로 들었다. 다시금 저렴한 물가에 감사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냉동 볶음밥 반절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했다. 아침에 갈림길에서 산을 넘는 길을 걸을 때였다. 마음에 들려오는 질문이 있었다. “왜 돌아가는 길 두고 산을 넘는 길을 선택했니?” 나는 답했다. “앱도 이 길로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게 해 놓으시고 왜 그러십니까?” 했다. “그래~~ 그래서 난 네가 좋다” 하신다.



진리의 길이 높고, 험하다고 해서 돌아갈 수는 없다.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 돌아가고 타협하는 것은 정말로 쉬워진다. 그리고 돌아가고 타협하는 길의 끝은 멸망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단 한 번의 타협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1 공수여단에 근무할 때 보았던 문구가 있다. ‘분투하여 죽을지언정 항복은 없다’ 특전사다운 글이었다.


이 길이 진리의 길이고 맞다는 생각을 하면 분투 했고 분투할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나 잘났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싸워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싸우기 전에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싸우고 또 싸워서 진리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의 길을 걷는 성도의 삶이라고 나는 외쳤다. 외쳤으니 그렇게 살려고 노력도 했고 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때도 수 없이 있었다. 그래서 남은 게 뭐냐고?


싸웠다는 흔적이다. 그 흔적을 보면서 아프지만 나는 쉽게 가자는 유혹을 곧잘 물리치며 살아왔다. 그래서 손해도 보고 아픔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푸르른 하늘 하지만 내일 나는 타다 못해 빨갛게 익었다.

정리를 끝낸 시간이 20시 30분 그래도 해는 지지 않았다. 커피 한잔을 타서 알베 앞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와 같이 파란색을 뛰어넘은 시퍼런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와 다른 게 있다면 구름이 없다는 것.


이 하늘이 내일 나에게 어떤 것을 선물해줄지 이때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그 시간에 나는 그 하늘을 보면서 참 좋~~~~다를 연발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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