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걸어진다.

11일: 라레도에서 구에메스(28.35km)

by 박동식

2019년 6월 2일(주일)


아침부터 태양은 뜨거웠다. 해변은 정말 길었다.

주일 아침이다. 출발하기 전 아무도 없는 성당에 들어갔다. 찬송을 부르는데 공명이 잘 되어서 그런지 내가 듣기에는 참 좋았다. 기도 한 후 길을 나섰다.

마라톤 경기가 있는지 곳곳에 교통통제를 하는 경찰들과 스텝들이 보였다.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아서 경찰에게 길을 물었다. 경찰은 앞쪽 길을 가리키며 아무 걱정하지 말고 쭉~~~ 가면 배를 타는 선착장이 나온다고 했다.

정말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보고 한 시간을 걸었다. 이렇게 해변이 길다니 하면서 해운대를 떠올렸다. 경찰 말대로 해안 끝 모래사장에는 작은 선착장이 있었다.







두 번째 배를 탔다. 이후에 한번 더 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선착장에 자신들의 배낭을 내려놓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사이아에 이어 두 번째 타는 배였다. 20여분을 기다리니 건너편 산토냐를 출발한 배가 도착했다. 차례차례 배에 올랐고 배는 5분 정도를 가서 출발했던 산토냐에 순례자들을 내려놓았다.






배에서 내린 나는 노란색 화살표를 찾는 대신 앞서 가는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나보다 앞서 걷는 이들이 노란색 화살표를 먼저 발견했으니 내 수고가 덜어졌다. 그런데 한 청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태극문양의 액세서리를 내밀면서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아마도 내 배낭에 붙은 태극기를 본 모양이었다. 맞다고 하니 자신이 한국에 갔을 때 이야기와 가지고 있는 태극문양의 액세서리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3분의 1 정도만 알 수 있었고 나머지 말은 들으면서 웃고 예스만 해주었다.


자유를 제한하는 높은 담. 그 담 덕분에 나는 그늘 속을 걸었다. 기분이 묘했다.

산토냐를 벗어나면서 태양은 어제처럼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그늘이 필요했다. 마침 높은 담이 나타났고 그늘이 생겨서 한 시간 정도는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담이 생각보다 높았다. 어떤 건물이기에 이렇게 담이 높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문은 이내 풀렸다.

10여분쯤 가자 경찰차가 보였고 두꺼운 철문이 나타났다. 교도소였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교도소의 높은 담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의 상징이다. 그런 절망의 상징이 길을 걷는 나에게는 그늘을 제공해주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담이 주는 그늘의 끝은 해안가로 이어진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주택단지를 지나면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해변 길로 가는 길과 내륙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같이 길을 걷게 된 할아버지께서 책을 보여주면서 해안 길은 험해서 자신은 내륙 길로 걸을 거라고 했다. 책에 표시된 내륙 길과 해변길이 만나는 지점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늘을 보니 태양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고 어제의 기억 때문에 나는 해변 길을 피해 걷기로 했다. 포장된 길이었지만 군데군데 숲길이 있어서 어제보다는 편하게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정오가 되지 않았음에도 내리쬐는 태양은 정말 야속했다.

그늘이 보이면 기뻤고 그늘이 없는 도로는 절망이었다. 그렇게 몇십 분씩 내 마음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구에메스까지 가는 도중에 4개의 마을을 지나갔다.

20190602_120040.jpg 너희들은 좋겠다 그늘 밑에서 쉬니까. 그늘이 그리워서 양들도 부러웠다. ㅎ ㅎ


유럽의 마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마을 한복판에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성당의 문은 대부분 굳게 잠겨 있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된 곳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성당의 모습을 머리로 상상해 보았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도 먼저 생을 마감한 사람들처럼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성당도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성당은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을 떠올렸다. 서로 경쟁하듯이 큰 교회를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는 곳이 있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듯이 종교 인구는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어느 종교건 감소하는 신자로 인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데 외형만 키우는 교회를 향해 세상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만 차지하고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성당처럼 우리나라 교회도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을 텐데 하는 두려운 생각을 잠시 가져 보았다. 누군가는 불경스러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군에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경험했다.


종교에는 관심 없는 젊은 청춘들.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로 이끌려고 숱한 방법을 동원했었다. 좋은 결과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하지만 좌절이 더 많았음을 솔직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게 가슴 아픈 현실이다. 마을을 지나며 성당을 볼 때마다 이때부터 “주님 이곳이 예전의 영광스러운 주님을 찾았던 때를 회복하게 하소서”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이름 모를 마을의 집 처마 그늘에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딱딱한 바게트 빵과 물로 점심을 먹었다. 10일 넘게 바게트 빵을 먹었더니 입안이 아팠다. 하지만 어떡하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어려움을 주님께서 다음 날 저녁 숨통을 트게 해 주셨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터벅터벅 걸어서 구에메스에 도착했다. 소들이 풀을 뜯는 곳을 통과하니 중년의 남성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 남성은 그늘에 마련된 안내데스크로 나를 안내해주고 시원한 얼음물을 주면서 고생했다면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먼 이국땅에서 이런 환대와 격려를 받으니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을 느꼈다.

20190602_191854_HDR.jpg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위치한 알베.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배정해주는 방에 들어가니 침대는 3층까지 있었다. 사람들이 없어서 나는 1층 침대에 짐을 풀었다. 늘 하던 것처럼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려고 나가는데 아침에 태극문양을 가지고 나에게 이야기했던 청년을 만났다. 프랑스 청년이었다.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혹시 빨래할 것 있냐고 묻는다. 있다고 하니 돈 걱정하지 말고 빨래 가지고 따라오란다. 나는 그의 친절에 고마움을 표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은 뒤 청년은 자신이 한국 여행 때의 경험과 좋았던 추억을 짧은 영어로 말해주었다. 한국 사람을 만나서 자기는 너무 좋다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오히려 자신이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난 배낭에 붙은 태극기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태극기가 욕먹지 않게 길을 잘 걸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이곳 알베는 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었고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19시 30분에 이곳에 묶는 모든 순례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스페인어와 영어로 알베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내일 걷는 순례길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짧은 영어 실력이기에 전부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오래된 사진이나 지도를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충 알 수 있었다. 30분간의 소개가 있은 후 모두 식당으로 이동해서 저녁 식사를 했다. 야채 수프와 생선 수프가 빵과 함께 나왔다. 등록을 하면서 5유로를 기부했지만 액수에 비하면 너무나 맛있는 식사였다.


오늘로서 길을 걸은지 11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걸어온 길도 200Km가 넘었고 알베에 있는 이정표에는 산티아고까지 639km 남았다. 하지만 걸어야 할 길이 더 남았고 이 지루함을 극복해야 끝까지 갈 수 있기에 다시금 마음을 동여맸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걸었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련다. “걷다 보니 걸어진다” 믿음과 인생도 지루함의 연속이고 그 지루함을 이기는 것이 나에게는 믿음이니 내일도 잘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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