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산탄데르에서 산티야나 델 마르(37.15km)
2019년 6월 4일(화)
산탄데르의 잠 못 이루던 밤은 지나가고 새벽 5시에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5시 30분에 알베 문을 열고 출발했다. 10여분을 갔는데 머리가 허전했다. 모자를 두고 온 것이다. 다시 알베로 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모자 없이 지내는 수밖에” 하면서 다시 출발했다.
어느 도시건 새벽을 여는 풍경은 같은 것 같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지난밤의 흔적들을 치우는 청소부들의 수고가 여기도 같았다. 올라~~ 하며 인사를 했고 인사를 받은 그들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동이 트자 어두웠던 도시는 이내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출근하는 차량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들을 보면서 도시의 모습이 어찌 그리 판박이 같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교 앞에 아이를 내려주기 위해 긴 차량 줄이 있었고 그 줄 사이로 빠져나가는 나를 사람들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내 발보다 빨라도 이럴 때는 내 발이 낫구나 하면서 도심을 벗어났다.
한참을 걸으니 이내 하늘의 태양은 슬슬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세 시간쯤 걷자 책에 나온 갈림길이 나왔다. 돌아가는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위험을 감내하고 철길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철길을 걸으면 7.5km를 단축할 수 있다고 책에 나와 있었고 나는 철길을 걷는 것을 선택했다.
내 고향은 전주다. 그 옛날 전주역은 지금의 시청 자리에 있었다. 철길이 도시 한복판을 관통했었다. 내 나이 남자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 전쟁놀이를 하며 자랐다. 전쟁놀이를 할 때 조그만 단검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린 꼬마들이 단검을 소지할 수 없었고 단검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놀았다. 우산을 지탱해주는 우산대는 단검을 만들기에 좋은 재료였다.
고장 난 우산을 발견하면 우산을 해체했다. 그리고 우산대를 가지고 기찻길로 갔었다. 기찻길 위에 귀를 대고 있으면 기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알 수 있었다. 기차는 늘 다니는 시간에 다녔고 기차가 오기 전 우산대를 선로에 올려놓았다. 기차가 지나가면 둥글했던 우산대는 납작하게 변했다. 납작하게 변한 우산대를 나무 끝에 꽂아놓으면 꼬마들 눈에 딱 맞는 단검이 되었다. 이런 추억이 있는 나에게는 철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기보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줄 것 같았다.
길을 따라 걷다 강줄기를 보고 나는 철길로 올라갔다. 복선이었기에 철길은 넓었다. 철길 옆으로는 인부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고 그곳을 활용해서 나는 걸었다. 모그로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까지 포함해서 30여분을 철길을 걸은 것 같다.
다리 앞에 도착해서 나는 앞뒤를 살펴보았다. 기차가 지나갈 때 다리를 건너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내 뒤에서 요란한 경적 소리를 내며 기차가 다리를 건넜다. 기차의 맨 뒤 칸이 통과한 후 나는 철교를 건넜다. 모르그 역으로 들어간 나는 잠시 쉬어가기 위해서 풀숲에 배낭을 내렸다. 그러는 동안 다시 기차가 도착했다. 일단의 순례자 무리가 배낭을 메고 내렸다.
말로만 듣던 날라리 순례자들이었다. 하지만 어떡하랴 나도 리엔도에서 라레도까지 차를 탔으니 그들을 향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여기까지 3시간 넘게 걸어왔는데 너희들은 그렇게 웃으면서 내리냐" 하며 속으로 볼멘소리를 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눈에 확 들어왔다.
태극문양을 보여주었고 구에메스에서는 세탁기를 무료로 사용하게 해 주었던 프랑스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배낭 옆에는 내 모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를 향해 걸어갔고 그도 나를 향해 오면서 모자를 흔들었다.
그 청년이 가지고 온 모자는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닐 수 있는 모자였다. 하지만 내가 전역한 부대에서 받은 모자였기에 나에게는 추억이 담긴 모자였다. 그 청년은 아침에 짐을 정리하다 보니 모자가 눈에 띄어서 나를 만나면 주려고 자기가 챙겨서 왔다고 했다. 모자가 없어서 뜨거웠던 내 머리는 조금은 시원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가지고 있던 간식을 탈탈 털어서 그 청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한참을 자연을 벗 삼아 걷던 순례길은 매캐한 냄새가 나는 도시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쿠돈이란 도시였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이 솟은 굴뚝과 기다란 파이프가 연결된 공장들이었다. 때마침 비가 오려는지 하늘도 잿빛을 띄면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초록색 대지를 보며 걷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물집이 잡힌 왼쪽 발바닥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또 조급함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산티야나 델 마르 공립 알베는 침대가 16개임을 알았기에 빨리 가지 못하면 다음 마을까지 가던지 아니면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사립 알베에 짐을 풀어야 했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 같다. 물집이 잡힌 왼쪽 발바닥 때문에 걸음은 느리지 그러면 늦게 가게 되고 그러면 16명 안에 들지 못하는데. 그러면 어떡하지 비싼 돈 내고 사립알베에 들어가야 하나? 어제 받은 돈이 있으니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사립알베 갈까? 아니야 앞으로 기간도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걸어보자. 그래도 안 되면 사립 알베 가지 뭐. 그런데 어차피 사립 알베 갈 거면 굳이 빨리 걷지 않아도 되지 않나? 별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리에 가득 찼다.
이렇게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는데 다음 목적지까지 7km 남았다는 표지판과 함께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부니 쉴 수 없었다. 쉬면 그 찬바람 속에 몸이 차가워지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이 초록색 들판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2시간을 쉬지도 않고 걸었다. 찬바람이 불어선지 여태까지 느렸던 발검음도 빨라졌고 머리를 가득 메운 잡생각도 사라졌다. 이때부터 나는 찬바람 맞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걸었다.
그렇게 2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고 찬바람이 잦아들면서 낮은 언덕을 넘었다. 눈앞에 한눈에 봐도 오래된 마을이 나타났다. 그런데 바닥이 돌길이었다. 에이~~ 하면서 마을로 들어섰다. 앱에 나온 알베를 물어보니 친절하게 성당 쪽으로 가란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서 기웃거리니 한 사람이 나와서 성당 뒤편에 있는 커다란 문을 열어주며 알베를 알려주었다. 들어가 보니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30분 뒤에 검은색 차량이 들어왔고 차에서 내린 관리인은 접수를 받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찬바람에 시달렸던 몸은 원기를 회복했다. 빨래를 끝내고 발바닥을 보았다. 걷는 동안 붙여놓았던 밴드를 제거했다. 그리고 어제저녁에 스님이 나누어 준 명주실을 바늘에 꿰어서 물집을 통과하게끔 해놓았다.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바닥이 돌로 되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돌과 돌 사이에 있는 모래 덕분에 아무리 큰 차량이 지나가도 건물에는 진동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그 옛날 마차가 지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어도 건물이 멀쩡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관광지여서 그런지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운치 있는 곳을 찾았고 순례자임을 말하니 15유로 식사를 13유로에 먹을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점심과 저녁을 고기로 먹은 날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저녁 늦게까지도 배가 든든했다. 긴 시간 걸은 나에게 순례길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역시 잘 먹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