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이제는 익숙한지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어제 걷느라 피곤한 몸은 기억하지 못하겠지 생각하지만 그 몸이 내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몸이란 것은 정말 신비하다.
일어나면 침낭과 배낭을 가지고 최대한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잠을 자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서 나머지 짐들을 가지고 나간다. 비단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이건 서로를 위한 불문율이다.
밖에 나오니 나와 같이 짐을 싸고 있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아침 식사 시간이 7시인데 아직 시간이 일렀다. 물통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 식당 근처에서 서성이니 스텝이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들어가니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란다.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 그리고 각종 잼과 쿠키가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매번 딱딱한 바게트 빵만 먹다가 갓 구워 나온 빵을 먹으니 입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 같았다.
5유로의 기부금을 낸 손과 마음이 참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끝까지 미소를 잊지 않고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섬기는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렇게 행복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알베 앞에는 소들이 이른 아침부터 풀을 뜯고 있었다. 매일 아침 출발 전 하는 기도를 이 날도 했다. 다른 것 없다. 세 가지다. “주님 오늘 하루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주님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주님 오늘 잠자리를 허락하소서” 너무나 간단하지만 37일 순례길을 걸으면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 기도다.
순례길 걸으면서 흔하게 본 풍경이다.
눈을 뜨고 하늘을 본다. 간간히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오늘은 그늘이 있을 것 같아 적잖이 안심을 하고 출발했다. 소들 목에는 크기가 다른 종이 메어져 있다. 그래서 풀을 뜯어먹는데도 듣기에 좋은 소리가 났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가는데 덩치가 작은 소가 큰 소 밑으로 입을 밀어 넣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작은 것은 망아지였고 큰 것은 어미 소였다. 어미 소는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었고 아직 젖을 떼지 못했는지 망아지는 한껏 부풀어 오른 어미 소의 젖꼭지에 입을 대고 어미가 주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니 놀랬는지 금세 먼 곳으로 도망을 간다.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미안 미안을 연달아 말하고 성급히 발길을 돌렸다.
앞을 보니 나보다 먼저 출발한 백발의 어른이 길을 걷고 있었다. 얼추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가 되니 어른이 나에게 “비아누 비아누” 하면서 하늘과 들판 곳곳을 가리킨다. 비아누가 어떤 뜻이냐고 물으니 그 어른이 휴대폰에서 번역기를 돌려서 나에게 보여준다. 이탈리아 할아버지였고 비아누는 이탈리아어로 천천히란 뜻이었다. 출발하면서 한 어른이 나에게 천천히 천천히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풀도 보라며 손짓하는 것이었다.
비이누를 알려주신 이탈리아 할아버지.
리엔도에서 침대가 없어서 낭패를 본 뒤로 나는 조급해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다음 알베에 도착하기 위해서 빨리 걸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15시가 넘어서 도착했기에 행여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하나 잠시 마음을 졸이기도 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는 연륜 있는 이탈리아 할아버지를 통해 나를 천천히 가게 하신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후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졌다. 할아버지를 앞서가는 게 조금 멋쩍었다. 그러나 어떡하랴 나는 할아버지에 비해 젊은것을. 적당한 거리를 앞서가서 홀로 하늘과 언덕 그리고 풀밭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그렇게 걸어가니 자연스레 그동안 내 삶에 함께 해주시고 많은 것으로 나를 채워주신 은혜에 감사했고 입에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가 흘러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빨리 걸었다면 결코 부르지도 않았을 찬송이었다. 빨리 걸었다면 결코 돌아보지 못할 인생이었다. 그러나 천천히 자연의 호흡에 내 발걸음을 맞추니 지나온 인생이 보였고 그 인생길에 함께 해주신 내 하나님의 손길이 보였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를 찬양하니 자연스레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님 제가 뭐기에 저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마음에 들려오는 감동은 이랬다. “너는 나에게 메인 둘로스지”
사도 바울은 자신을 늘 종으로 표현했다. 그때 사용된 단어가 헬라어 ‘둘로스’이다. 둘로스는 그 당시 선박의 가장 밑 부분에서 노를 젓는 격군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죄수이거나 포로들이었다. 탈출하지 못하도록 발과 손에 착고가 채워졌고 이것은 다른 격군들과 연결되어서 기둥에 묶여있었다. 그러니 배가 침몰해도 둘로스들은 살아남지를 못했다. 그런 둘로스들의 평생소원은 자기 몸에 메인 착고를 풀고 배를 탈출하던지 자유인의 신분이 되는 것이 평생소원이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둘로스들과 달랐다. 평생을 예수님께 메인 둘로스로 사는 것을 자랑했다.
내가 감히 바울과 비교가 되겠는가? 비교라는 단어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이 길을 걸으면서 늘 평탄한 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고비마다 나는 내 주인 되신 주 앞에 엎드렸다. 마치 종이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듯이.
많은 고비를 그렇게 넘기면서 나도 때로는 그런 삶이 싫어서 다른 길로 가볼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그 길은 나에게 맞지가 않았다. “비아누 비아누”란 단어 때문에 나는 한동안 웃다가 울다가 길을 걸었다.
순례길은 이렇게 눈이 호강한다. 저 뒤까지 걸어서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청년은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은채 이 모습이었다. 뭘 생각하는 것일까?
갈리사노를 벗어난 순례길은 이내 해안으로 이어졌다. 멀리 보이는 해안 절벽을 따라 걷는 순례길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며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해안절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영국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자전거로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이었다. 그에게 절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찍어주겠다고 하니 그는 괜찮다고 하며 다시 돌아서서 바다와 해안절벽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한참을 걸어가서 뒤돌아볼 때까지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서 있었다.
해안절벽을 지나 순례길을 찾았는데 그만 해변으로 내려오는 실수를 범했다. 다행히 썰물 때였다. 물이 막 빠져나간 곳은 그래도 걷기에 수월했다. 아직은 해수욕하기에 이른 때였지만 파도가 높아서인지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군데군데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카미노 앱의 지도를 보면서 해변의 끝인 소모에 도착했다.
파도가 높았다. 군데 군데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산탄데르로 가는 배를 타면 오늘 순례길은 끝난다. 그래도 해변을 걸어서인지 이전과는 다른 피로감이 몰려왔다. 배만 타면 오늘 순례가 끝난다는 생각에 힘을 내서 선착장을 찾아 발걸음을 내디뎠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비아누를 알려주신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마도 해변이 아닌 길을 찾아서 도착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루비히드. 포베냐에서 보고 3일 만에 만나니 참 반가웠다. 3일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등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산탄데르로 향하는 배가 선착장에 들어왔다. 배를 기다리던 순례자들은 줄을 지어서 배에 올랐다. 산탄데르로 향하는 배는 한 곳을 경유해서 산탄데르에 도착했다. 덕분에 지친 다리와 어깨가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산탄데르에 도착해서 공립 알베를 찾았다. 이탈리아 할아버지는 먼저 산탄데르 성당으로 가셨다. 할아버지는 신앙이 좋은 분 같았다. 이후에도 두 번 만났는데 그는 순례길에 있는 성당을 놓치지 않고 들렸고 카메라에 담았다. 할아버지를 따라 성당을 찾아갔고 그는 입장료를 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인사를 하고 알베를 찾았다.
알베에 도착하니 문을 여는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배낭에 있는 바게트 빵을 꺼내서 물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이 있었고 몇 번 만난 이들과는 서로서로 수고했다며 안부를 묻는 동안 알베의 문이 열렸다.
산탄데르 알베. 좁은게 흠이라면 흠일까?
알베에 들어오면 늘 하는 의식을 끝내고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사님” 눈을 돌리니 스님 일행이었다. 리엔도에서 잠깐 보고 헤어졌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서 다시 만난 것이다.
스님 일행의 짐 정리가 끝나고 스님이 직접 만든 차를 마시면서 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행한 분은 스님과 인연이 깊은 분이었고 등산학교를 졸업하신 분이었다. 도시, 문명과는 떨어져 사시는 분이었고 자연친화적인 분이셨다. 여기에 오게 된 사연도 서로 나누었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되었다. “가정이 없는 제가 오늘 저녁 사겠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셋은 버거킹으로 향했다. 메뉴판에 나온 햄버거 그림은 어느 나라나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림과 같은 햄버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손에 쥐어진 햄버거는 그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 햄버거가 정직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내일 아침과 점심을 대신할 바게트 빵과 과일값도 스님이 내셨다. 자꾸 이러시면 부담 간다고 하니 스님 왈. “세 번을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만난 인연이 보통인가요?” 하신다. 유심 교체하는 것 도와드리면서 “이 정도면 밥값 한 겁니다” 하면서 웃었다.
내일 걸어야 할 거리가 38km 가까이였다. 일찍 자야 했다. 세면을 하고 모든 정리를 끝낸 뒤 침대에 가려는데 스님 일행인 여성분이 나를 부른다. “목사님 잠깐 손 좀 줘보세요” 하는 말에 “왜 그러시는데요?” 했다. “잠깐 줘보세요”하는 말과 함께 내 손 안으로 무언가를 건넸다. 손을 펴보니 100유로였다. “아니 이게 뭡니까?” 했다. “목사님. 이거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인데요. 숙소 신경 쓰지 마시고 걸을 만큼만 걸으세요” 하신다. “저도 기부받아서 왔어요. 나누고 싶어서 그래요”하는 말에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하면서 침대로 왔다.
얼마 뒤 스님은 나에게 빌려간 책을 다 읽었다며 돌려주었다. 나도 내일 갈 곳을 보고 자려고 책을 폈다. 그런데 책에 100유로가 꽂혀 있었다. “스님!”했더니 조용히 하라며 입에 손을 대면서 웃으신다.
아마도 저녁 먹기 전 나누었던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때 내 머리에 스치고 간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스님이, 불교 신자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냐고?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이런 상황을 경험한 나로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돈을 받아서가 아니다. 난생처음 만난 사람이고 굳이 따지자면 종교도 틀리다. 그러나 상대방의 처지에 마음을 움직였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준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일일까?
나는 산탄데르의 저녁을 잊지 못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 까라는 생각도 수없이 해보았다. 그렇게 산탄데르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