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그리고 아쉬운 작별

7일: 시오르차에서 라라베추(34.73km)

by 박동식

2019년 5월 29일(수)


바욘에서 생장 오는 날 빼고 하루 종일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본 날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순례자인 나에게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시오르차의 수도원을 출발한 시간은 6시.

수도원 전경. 출발할 때 찍었다.

오늘 목적지는 라라베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30km가 넘는 길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길 위에 내 발걸음을 더해가면서 걷다 보니 1주일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산티아고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맨 앞자리 숫자도 변했다. 그래서인지 30km가 넘는 거리도 이제는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수도원이 있는 곳의 해발고도는 309m였다. 28km 지점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었기에 수월하게 걸었다. 네 개의 산을 넘었지만 수도원에서 출발했기에 넘었다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산을 넘거나 둘레를 지나는 길은 맑은 날이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해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광합성 작용을 하기에 정말 좋았다. 식물이 아님에도 왜 사람이 해를 보고 살아야 하는지 절실하게 느꼈던 하루였다.

당나귀들도 오랜만에 파란 하늘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처럼 길도 좋았으면 했지만 길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비를 맞고 걸은 날이 4일이다. 그러니 이곳에도 당연히 비가 연달아 내렸다. 오늘 넘었던 산들은 중간중간에 간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중장비들이 오고 가며 길에 깊숙하게 바퀴 자국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그 바퀴 자국은 며칠 내린 비와 함께 걷기에 힘든 구덩이와 진흙탕 길을 만들어 놓았다. 오늘은 근 11시간을 길 위에 있었다. 그리고 8시간 이상을 이런 길과 걸었기에 정말 힘든 하루였다. 다행히 그늘이 없는 구간은 마른땅이어서 감사하며 걸었다.

20km가량 이어진 산길은 힘들었지만 나만의 기도 굴처럼 여겨졌다. 앞뒤로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산에서 난 목청을 높여 기도하고 찬양했다. 내 기도와 찬양을 듣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었다. 참 오래간만에 소리 높여 기도하고 찬양했던 시간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그때 걸었던 산길과 하늘이 눈에 선하고 다시 가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길 위의 기도는 길 상태와는 상관없다.

군 생활하면서 나는 9번 이사를 했다. 살았던 곳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양구, 춘천, 파주, 논산, 담양, 진접, 전곡, 대전, 이천. 대부분의 군부대가 도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서 자녀들은 늘 자연을 벗 삼아 자랐다.


그래서인지 아침이 되면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닌 새소리가 들리는 곳이 더 많았다. 지금은 서울에 살면서 하루 종일 자동차 소리를 듣고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으면서 여태 들었던 도시의 소음에서 멀어지면 왠지 모를 외로움과 때로는 두려움이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시오르차에서 라라베추까지 걸었던 날은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것이 여태까지 멀어졌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20km가량 이어진 산길은 도시의 소음에서 나를 완벽하게 차단해주었다. 더군다나 앞뒤로는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이보다 완벽한 차단막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푸르다 못해 시퍼런 하늘이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시퍼런 하늘만 보면 지루할 것 같아서인지 서로 모양이 다른 구름들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그런 구름들이 가만히 있으면 또 지루할 것 같은지 적당한 바람이 불어 군데군데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그늘이 나를 향해 오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눈요기 거리였다. 눈이 이렇게 호강하는 동안 산속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자기들만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로 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나는 이 길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스쳐가는 바람의 결을 피부로 느끼고 들려오는 새소리를 내 귀에 채우고 마음까지 도달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가 흘러나왔다.

48년을 살면서 나 혼자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느껴본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늘 복잡함 속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철저하게 혼자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만나주셨다.


사실 사역을 쉬면서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늘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안했다. 첫머리에 적었듯이 지금이 물질이 가장 필요한 때였다. 그런데 가장이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처지를 경험한 가장들은 내 심정을 누구보다 더 이해할 것이다. 그런 마음, 그동안 목사로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하지 못했던 넋두리를 산길을 걸으면서 난 다 토해냈다.


목회자로 살아온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지 내 속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지는 못했다. 물론 긴 시간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과 군에서 만난 동역자들과는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낼 수 없는 마음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그 산길에서 나는 저 밑바닥에 있는 것까지 끄집어내어서 하나님께 넋두리를 했다.


상상이 가는가? 48살 먹은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어리광 부리는 것을 뛰어넘어 마치 마트 바닥에서 이거 사달라며 드러누운 아이처럼 울었다는 것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자리가 너무나 그립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 들려주신 음성 때문에 잘 버티고 견디고 있다. 아마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공연이나 음악 그리고 영화 등등을 보거나 듣거나 하면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깊이 감동 받는 것에 비유하자면 할 수 있는 현상이 이런 것이다.


왜 신앙의 선배들이 자기 스스로 광야를 찾고 세상과 단절하는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이때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익숙한 것과의 단절은 그동안 멀어진 것과의 소중한 만남과 그 멀어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 익숙한 것은 어느 날 불현듯 나를 떠난다. 그것도 사전 통보나 계획도 없이. 그러니 살면서 내가 어떤 것과의 만남을 더 중요시해야 할지는 더 명확해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산길을 걷는데 앞에 노년의 부부가 걸어가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 온 부부였다. 언뜻 봐도 70이 가까운 부부였다. 나나 그 부부나 서로 영어를 못하니 짧은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들의 걷는 모습을 보니 부부가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한 곳을 보며 살아왔겠지. 아내가 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는 여자보다 체력이 좋다. 그러니 당연히 남편이 길을 걷는 것도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부부를 보니 남편과 아내가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남편이 사전에 공부를 했는지 아내에게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와는 참 다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변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부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20190529_132757_HDR.jpg 아픔을 간진한 도시 게르니카.

산길을 잠시 벗어난 곳은 게르니카였다. 게르니카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는 그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게르니카를 검색하면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 배경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오니 참고하면 좋을 듯싶다.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마침 점심때여서 나는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점심 식사로 11유로를 지출하기는 처음이었다. 매번 점심을 거의 바게트 빵으로 먹어서 그런지 이날 먹은 점심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점심을 먹은 후 출발한 순례길은 다시 산으로 이어졌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고이콜레할데부터 이상한 그림과 현수막을 보기 시작했다. 담이나 흰 종이 위에 마치 검은색 병아리처럼 그려진 지도 위에는 ‘free them all’ 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라라베추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이곳에도 현수막과 이런 그림이 광장에 가득했다.

바스크 독립을 염원하는 그림.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바스크 분리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지역은 바스크주다. 바스크 주는 독자적인 바스크어도 가지고 있다. 바스크어는 유럽의 다른 언어와는 뿌리가 다르다고 한다.

세계 유수의 특수부대원들이 착용하는 베레모의 뿌리도 바스크인들이 쓰는 베레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190529_190949.jpg 그림 속의 인물들이 감옥에 투옥되어있는 것 같다.

바스크 주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ETA라는 무장단체를 만들어서 과격한 유혈 독립운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2017년에 이 단체가 해산하면서 독립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들었지만 지금도 바스크주 사람들은 바스크는 스페인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독립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그들에게 자유를 달라는 외침이 처음 순례길을 걷는 나에게도 전해지게 된 것이다.



라라베추에 도착한 시간은 17시쯤이었다. 알베에 도착하면 하는 신성한 의식(?)을 끝내고 나는 도시 구경을 나갔다. 알베 바로 앞은 광장이 있었다. 아직도 중천에 떠 있는 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있었다. 아마도 그들도 나처럼 오랜만에 해를 보는 것 같았다. 유모차를 탄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바르(bar)에 모여 앉아서 따스한 햇볕과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슈퍼에서 내일 먹을 점심거리와 그동안 길 안내를 해준 혜원 씨를 위해서 비스킷을 샀다.

20190529_190819.jpg 오랜만에 햇살인지 이후에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혜원 씨는 빌바오에서 관광할 곳이 생겨서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다가 다시 북쪽 길을 걷는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절벽에 위치한 길은 멋졌고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느 영화에도 나온 곳이라며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는 순례길이 목적이니 그냥 순례길 걷겠다고 했다.

이룬부터 라라베추까지 길 안내를 해준 고마움에 답은 해야겠는데 마땅한 선물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길 걷다가 배고프면 간단히 요기도 될 수 있는 비스킷을 사서 배낭에 넣어주었다.


난 순례길을 떠나면서 난생처음 가보는 길이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었다.

그 기도에 응답을 받아서 나는 너무 좋았고 감사했다. 사실 혜원 씨는 가나안 성도였다. 내가 군목으로 예편한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난 혜원 씨가 그동안 겪은 이런저런 상처와 교회에 대한 실망을 들으면서 성도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정말 창피했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처음 신학의 문을 두드렸을 때의 마음가짐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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