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리오에서 데바(30.36km)
2019년 5월 27일(월)
일어나서 하늘을 봤다. 여전히 하늘은 흐렸고 일기예보도 비가 예상되었다. 그렇다고 순례를 멈출 수는 없는 일. 아침을 먹고 전투화 끈을 조였다. 오리오를 통과한 길은 잠시 강변을 따라 걷게 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 피어난 물안개가 조금은 운치를 더해주는 길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산길.
북쪽 길은 하루 평균 두 개 내지 세 개의 산을 넘는다고 했으니 이제는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사라우츠를 거쳐 수마야 해변까지 이어진 순례길은 좋았다. 단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말이다. 오늘 지난 길의 고도가 137m, 200m, 283m다. Geo-Tracker앱을 설치하면 그날 걸은 길의 고도와 속도 그리고 구글 지도를 통해서 걸었던 길이 표시가 된다. 글을 쓰면서 보니 마치 그곳에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비바람 몰아치는 사라우츠 해변은 을씨년스러웠다. 기다란 해안이 끝나자 도로 옆에 해안을 따라 만들어 놓은 보행자 전용 길이 나왔다. 초입에서 사진을 찍고 한 시간 넘게 걸었다. 쉴 곳도 없었고 도로 옆에 만들어 놓은 곳이어서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걸었다. 우의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급조된 순례길이었고 우리나라 날씨만 생각한 나는 반팔과 자외선을 막아주는 얇은 긴팔 옷 그리고 얇은 바람막이가 전부였다. 그러니 비 내리는 차가운 날씨와 바닷바람에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행히 작년에 샀던 우의는 방수와 더불어 미약하지만 보온도 해주었기에 한 시간이 넘는 바닷길에서도 유용했었다.
해타리아에 도착해서 순례길을 보니 마을을 통과하게 되어있었다. 점심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빵집에 들어갔다. 익숙하게 바게트 빵을 구입했고 슈퍼에 들어가서는 과일을 구입했다. 해타리아를 벗어난 순례길은 해양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수마야 해안으로 이어졌다.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해안 길을 걷는 동안에는 잠시 비가 멎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걸었던 길은 참 좋았다. 아 이게 북쪽 길의 매력이구나 했다. 데바에 들어가기 전 이치하르에 도착했을 때 다시 비와 바람이 몰아쳤다. 배낭에 묶어놓았던 우의를 다시 꺼내 입으면서 유럽의 괴팍한 날씨가 이런것이구나를 다시금 몸으로 되새김질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데바까지의 순례길은 사유지를 많이 지났다. 그런데 그 사유지의 대부분은 소를 방목하는 곳이었고 길에는 온통 소똥 천지였다. 비는 내리지 길은 진흙탕이지 거기에 소똥이 합해졌으니 분명히 길을 걷는데도 코로는 소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길을 걸으면서 문득 시편 133편 1절 말씀이 생각이 났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런데 길을 걷는 나에겐 이렇게 각색이 되었다. “진흙과 소똥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지나는 순례자에게는 큰 곤욕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 잠시나마 혼자서 피식하며 웃었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엄청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치하르에서 데바까지 고도차는 280m였다. 그리고 그 내리막은 가히 상상을 불허했다. 돌로 포장된 된 곳. 진흙과 소똥이 연합한 곳. 작은 돌로 포장된 곳. 450m가 넘는 내리막길 등 여태까지 걸었던 모든 길을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길이었다. 밑창이 두꺼운 전투화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돌로 포장된 길을 내려갈 때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찌릿함은 이것이 지압이구나를 생각나게 했다. 결국 담벼락에 붙어서 아슬아슬하게 길을 내려왔다. 450m가 넘는 길은 한참을 뒤로 걸어서 내려오기도 했었다. 무릎 보호대가 없었으면 고생의 강도가 심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데바에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순례길을 살펴봤을 때 데바라는 도시는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곳의 고도차가 상당해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데바에 들어오니 내일 걸어야 할 나가는 길이 정말로 한참이나 밑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느라 무릎과 발바닥이 너무나 아팠다. 그래서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을 되살려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마침 지나가는 할머니 두 분이 있었고 저분들이라면 분명 엘리베이터를 타겠지라는 생각에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내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 뒤에서 유모차를 끌고 오는 아기 엄마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걸어가니 정말로 도시의 위아래를 이어주는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배낭을 멘 나를 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두 개라고 손으로 알려주었고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말해주었다. 그 정도로 도시의 고도차가 심하나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다른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 분들의 도움으로 도심 아래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알베가 있는 역사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데바의 알베는 관광안내소에서 접수를 하고 접수증을 가지고 가야 했다. 관광안내소가 어디인지를 지도에서 찾아보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영어로 도와드릴까요? 하면서 혹시 관광안내소를 찾고 있냐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많은 순례자들을 보았고 길을 알려주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하니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준다. 그러면서 만약 길을 잃으면 저기 보이는 종탑을 보고 가면 된다는 말까지 더해주었다. 그라시아스 하면서 헤어진 후 알려준 길로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문이 닫힌 것이다. 시간을 보니 15시.
스페인의 여름은 무척 덥다고 들었다. 그래서 12시부터 14시까지는 피에스타라는 휴식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고 날씨도 쌀쌀한데 피에스타를 하나 싶었다. 그러나 날씨와는 상관없이 공공기관 모두가 피에스타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관광안내소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으니 스페인에 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으니 내 모습이 참 처량했다. 오늘까지 벌서 4일째 비를 맞고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온몸이 눅눅했고 그런 상태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여러 명의 순례자들이 속속 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문이 닫힌 것을 보고 어떤 외국인이 경찰서로 가보자고 했고 그 사람을 따라 경찰서까지 갔지만 역시 그곳도 문이 닫혀있었다. 다시 관광안내소로 와서 16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16시가 되니 직원이 와서 문을 열고 따라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어기적 어기적 거리며 들어가서 순례자 여권과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을 보여주었다. 알베 사용로 5유로를 내니 내가 자야 할 침대 번호를 적어서 사용증을 주었다. 3분 정도 걸어가니 오늘 묶을 알베가 나왔다. 이곳 알베는 1층은 기차역이고 2층이 알베였다.
대부분의 알베에는 신발장과 입구에 신문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가 오면 신발이 젖었다. 그런데 그 신발을 내일 신어야 하기 때문에 물과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신문을 제공했다. 나도 4일째 비를 맞았기 때문에 익숙한 방법으로 신문을 구겨서 전투화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침대에 가서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온수로 샤워를 하니 지친 몸이 조금은 회복되는 것 같았다.
다음은 빨래. 그런데 빨래를 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어떻게 하나 하고 있는데 첫날 만났던 하비엘을 만났다. 내가 샤워하고 있는 동안 들어와서 그도 빨래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탁기 사용료는 3유로, 건조기는 4유로였다. 프랑스 사람이 자기 세탁하니까 그냥 옷을 넣으라고 했다. 땡큐 하면서 빨랫감을 넣은 뒤 건조기는 하비엘과 내가 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빨래가 해결되자마자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사람들이 오고 가고 짐을 푸느라 시끄러운 데도 나는 세 시간 정도를 시체처럼 잠을 잤다. 나중에 혜원 씨가 그러는데 사람들이 내가 무척이나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처럼 보여서 걱정을 했다고 그랬다. 4일 동안 비를 맞고 걸었으니 오죽했겠나 싶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나니 생체시계는 먹을걸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마침 알베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10,5유로라고 해서 바로 달려갔다.
순례자 메뉴는 간단하다. 가장 먼저 수프를 먹을 건지 샐러드를 먹을 건지 결정한다. 두 번째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 선택하면 된다. 그다음은 디저트다. 그리고 물, 콜라, 와인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나는 따뜻한 수프와 소고기를 선택했다. 선택은 탁월했다. 따뜻한 수프에 바게트 빵을 찍어 먹으니 지쳤던 몸이 만세를 부르는 것 같았다. 수프를 바닥까지 싹싹 먹어치웠다. 뒤에 나온 소고기는 내 손바닥만 한 것 두 장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 사도가 스페인에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도 나처럼 비도 맞았을 것이다. 하루의 끼니도 투박하고 거친 음식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4일 동안 비를 맞고 걸으면서 나는 괜히 왔나? 우리나라에서도 맞을 수 있는 비를 왜 굳이 여기서 맞고 있을까? 힘들다 등등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참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구나 했다. 그와 나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의 수고와 나의 수고를 비교한다는 것은 더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날을 기점으로 힘들어도 입으로는 불평하지 않았고 생각으로도 불평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보다 큰 사람의 길을 내가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고 기쁨이었던 순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