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데바에서 시오르차(33.94km)
2019년 5월 28일(화)
이른 아침 길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침낭 밖으로 몸을 빼고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벽녘 공기는 참 신선했다. 데바를 관통하는 강을 건너는 다리는 공사 중이었다. 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걷는 순례길은 북쪽 길이 늘 그러하다듯이 산으로 이어졌다. 370m를 찍은 산길은 잠깐 내리막을 걷다가 다시 494m를 향해 가파르게 올라갔다. 비까지 내렸다면 정말 힘들었을 길이었지만 간간히 내리는 비는 10시쯤 거치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길을 나는 하비엘과 잠깐 같이 걸었다. 그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의 고향은 마드리드에서 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며 넓은 평원이 있다고 했다. 한국에 가서 놀란 것은 차를 타고 짧으면 한 시간 길어도 3시간을 가면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자연에 놀랐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파리에 도착할 때의 풍경이 머리에 떠올랐다. 파리 드골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서 하강할 때 눈에 들어온 풍경은 끝이 없이 펼쳐진 평원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지 않는가?
내가 사는 서울만 해도 전철을 타고 인천에 가면 바다가 있다. 서울 한복판에는 남산이 우뚝 솟아있고 동서남북 마음만 먹으면 등산을 할 수 있는 산이 지천에 있는 나라가 내 조국 대한민국이었다.
하비엘은 속초 설악산과 제주의 오름에 반했다고 했다. 그 점은 나도 동의했다. 그리고 한국의 음식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순댓국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나중에 스페인 음식을 보니 우리나라 순대와 같은 음식재료를 보고 왜 하비엘이 순댓국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비엘과 걸었던 시간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통하여 내 나라 대한민국이 참 좋은 나라임을 새삼 알게 되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데바의 알베를 떠난 사람들의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씩 만나는 사람도 있다. 때론 다른 알베에서 출발한 사람들을 만나면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되풀이하며 인사를 나누며 짧은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뜸한 만남을 뒤로하고 길을 걷는데 앞에 사진을 찍는 여성이 있었다. 이 험한 길에 사진까지 찍는 열정에 대단하신 분이다 하면서 지나가는데 “한국분이세요?” 한다. 반가웠다. 혜원 씨 말고는 한국말을 해본 적이 없으니 오랜만에 듣는 우리나라 말이 참 정겨웠다. “네”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북쪽 길의 경치가 좋다는 말을 듣고 사진을 찍으면서 걷는 중이라고 했다. 나이가 있고 체력 생각해서 하루에 20km만 걷는다고 했다. 그분과는 세 번 정도 다시 만난 것 같았다. 동양인이 그것도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든 북쪽 길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니 기쁜 시간이었다.
카미노 앱의 일정으로는 마르키나였으나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가 있는 시오르차까지 가기로 했다. 마르키나를 지나는 순례길은 평지였다. 오랜 시간 산길을 걸어서 인지 이런 길로 시오르차 까지만 갔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았다.
순례길은 마르키나를 벗어나면서 공장의 후미진 길로 이어졌다. 도저히 길이 이어질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갔다. 공장 왼쪽은 작은 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사이에 순례길이 이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 길이 아니었으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을 것 같았는데 자기 사유지를 흔쾌히 할애해준 주인의 마음에 참 고마웠다.
그렇게 시오르차까지 왔고 내 눈에는 성당의 종탑과 그 너머 산에 있는 또 다른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두 종탑을 보면서 나는 제발 눈앞에 보이는 종탑이 수도원이고 멀리 보이는 종탑이 성당이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바람을 해보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수도원이 마을 한복판에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나를 통해서 새삼 알게 되었다.
마을에서 수도원까지의 거리는 1km 정도였다. 그러나 40여분의 길은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40여분을 헥헥 거리며 수도원에 도착했고 백발이 성성한 신부님의 안내로 알베에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혜원 씨는 벌써 알베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신부님이 해주지 못한 알베 안내를 해주었다.
나는 식당을 겸한 곳에 침대를 잡았다가 길가에 있는 방으로 옮겼다. 천장이 높아서인지 침대는 3층이었다. 역시 동양인은 단 두 명이었다.
이곳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었다. 19시 30분에 미사가 있었고 미사가 끝난 뒤에 순례자들이 식당에 모여서 수도원에서 제공해주는 수프와 빵으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미사는 스페인 말로 진행되었다. 군에 있을 때 성당에는 자주 가보았기 때문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비치되어있는 순서지에 따라 미사는 진행되었다. 순례자들 중에 가톨릭 교인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 따라서 다른 순례자들은 행동했다. 그렇게 미사가 끝나고 내가 처음 침대를 잡았던 식당으로 다 모였다.
20여 명쯤 되는 순례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신부님이 가져다주신 커다란 솥의 수프와 빵을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한 솥에 있는 식사를 나누니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이렇게 식사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도 나는 길을 걸었다. 오르막 길, 내리막 길, 흙 길, 진흙탕 길, 포장된 길. 어떤 길이 걷기에 좋을까? 흙길이 가장 좋다. 포장된 길은 보기에는 걷기에 좋아 보인다. 그러나 땅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많이 간다. 하지만 흙 길은 충격도 분산되고 관절에도 무리가 덜 간다. 하지만 나는 다른 답을 구했다. 길만 있으면 된다는 것.
길이 있어야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굳이 걷기 좋은 길을 택하는 것보다 길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하루였다.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으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니 굳이 좋은 길, 나쁜 길 가릴 이유가 없어진 하루였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잘 걸었는지 뒤돌아보았다. 더불어 길 되신 주님이 미천한 나에게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에서 동행해 주심에 감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