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좋다

4일: 파사이아에서 오리오(27.52km)

by 박동식

2019년 5월 25일(토)


알베르게에서의 첫날밤은 낯설었다. 2층 침대의 아래층을 썼고 위층은 외국인 여성이 양쪽 맞은편도 미국과 독일에서 온 여성들이 사용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베르게는 남녀 혼숙임을 알았지만 막상 접해보니 신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샤워장도 남녀공용으로 사용했으니 더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낯선 곳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비가 내리는 이룬을 떠났다.


이른 아침 출발하는 순례자들. 이들과 다시 만나기도 하고 첫 만남이 끝이기도 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온통 순례자들 뿐이었다. 카미노 앱에 나온 대로 걸으면 세바스티안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혜원 씨(한국 여성분)가 세바스티안 공립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다며 내일 파사이아까지만 가자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가자는 곳까지 갈 테니 안내만 잘해달라고 거듭 부탁을 드렸었다.


어제도 비를 맞았는데 오늘도 비를 맞고 시작하니 몸이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떡하랴 내가 날씨를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뜨거운 태양이 아님에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40여분을 걸어가니 하이스키벨 산이 앞에 나타났다. 높이는 300m가 안되었다. 하지만 바다부터 올라가는 것이라 꽤 힘들었다. 처음부터 산이 나타나니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앞으로의 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북쪽 길에 대한 정보는 책과 인터넷을 통해 미리 알아볼 수 있었다. 하루에 두 개에서 세 개정도의 산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산의 높이는 400m에서 500m 정도. 하지만 바다에서부터 시작하는 고도라서 생각보다 높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길을 걷는 사람들 중 이틀 내지 삼일 만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종종 읽을 수 있었다.

이룬과 강 건너 프랑스 엉데가 보인다.


북쪽 길 첫날이었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산을 오르기에 비 오는 날도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등산스틱을 준비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산을 넘어야 길이 열리기에 깊은숨을 들이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팔랐다. 올라가는 도중 쉬면 더 힘든 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고 경험했기에 힘들었지만 우의를 쓴 채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과달루페 공소.


산 9부 능선 하늘이 보이는 곳에 조그만 공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서 이룬을 조망할 수 있었다.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룬 시내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잔뜩 끼고 흐린 날이라 시계는 좋지 않았지만 어제 건너왔던 다리도 보이고 다리 왼쪽으로는 바다도 보였다. 이곳에서 순례길이 해변 길과 산길로 나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꿀 맛 같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걸었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옆을 지나가는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나보다 앞서 갈 수 있음에도 그 청년은 나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안녕하세요” 하는 게 아닌가? 외국인이 유창하게 안녕하세요를 하니 내 작은 눈은 금세 토끼눈이 되어서 한국말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스페인 사람이고 이름은 하비엘이었다. 합기도를 배웠고 1단이며 사부님과 사모님이 한국분이어서 한국말을 조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국에 갔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냈다.

제주도, 속초, 서울을 가봤다며 한국이란 나라가 참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내 나이 또래의 스페인 아저씨가 따라와서 셋이서 잠시 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과 같이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워낙 신체조건이 차이가 나니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쳐졌고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나는 휴식을 취했다.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산을 넘은 게 아니었다. 산의 8부 능선을 타고 이룬을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비는 멈추었다. 비가 멈추니 걷기에는 좋았다. 땅도 돌들이 적당히 섞여서 진흙탕이 아니어서 좋았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었다.

북쪽 길은 걷는 동안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혼자만의 시간이 좋았다.

앞서 갔던 두 사람을 1시간쯤 뒤에 다시 만났다. 역시나 20여분을 같이 걷다가 그들과 헤어졌다. 나는 새삼 체력 차이를 느꼈고 내 페이스대로 걸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못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주님을 믿는 한 성도로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늘 강조한 것이 있었다. 내가 받은 은혜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주님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주님이 보시기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니 절대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외국인들과 걸으면서 내가 전한 것이 그렇게 쉽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당연히 다른 사람의 것을 보게 된다. 눈이 달렸고 귀가 달렸으니 보고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니 자연히 내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다. 그 인지상정을 쉽게 떨치기는 정말 힘든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같이 걷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니 난 그들의 신체조건이 참 부러웠다. 나중에는 네덜란드, 독일 여성들보다도 빨리 걷지 못하는 내 발과 체력을 보면서도 난 좌절하지 않았다. 왜? 나와 그들은 다르게 창조되었으니까 했지만 솔직히 그들의 신체조건이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37일 동안 길을 걸으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 나보다 느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신체조건이 부러웠고 더 빨리 걷지 못하는 나의 체력에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참 못난 행동이고 생각이었음을 알고 빨리 뉘우치고 회개했다.


그들이 걷는 길과 내가 걷는 길은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이기에 같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빠르고 나는 느리다는 것. 하지만 그들의 빠름과 나의 느림은 비교할 것이 못된다. 그들과 나의 신체조건은 다르기 때문이다.


비교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더군다나 믿음 생활을 하면서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하면 더 주눅 들게 마련이다. 왜 나에게는 저런 은혜가 없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라. 주님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 과연 있는가? 있다면 무엇과 주님을 비교하겠는가? 주님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시다. 그러니 주님이 주시는 것도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걷는 동안 최고로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걸었다. 그러면서 많이 보고 많이 느끼려 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걷는 길이 훨씬 즐거웠고 힘들어도 긴 시간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파사이아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겨서였다. 오늘 자는 공립 알베르게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알베르게는 마을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내려다보는 파사이아의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아쉬운 점은 비가 와서 침울했다는 것 빼고는.

파사이아 알베에 그려진 재미있는 그림.
파사이아 알베. 위고의 집이었다고도 하고 수도원이었다는 말도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연 식당에는 외부에도 식탁이 있었다. 한 외국인이 먹는 음식을 나도 주문을 했다. 점심을 먹고 알베르게에 가니 혜원 씨도 와있었다. 오후 4시에 문을 여니 시간이 남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서 커피를 먹으며 비에 젖었던 몸을 녹였다. 알베르게 관리인은 정확히 4시에 와서 문을 열었다.


어제 했던 방식대로 침대를 배정받고 온수에 샤워를 하니 지쳤던 몸이 이제는 살 것 같다며 신호를 보냈다. 이제 겨우 4일 걸었는데 이틀을 비를 맞았더니 내가 스페인에 비 맞으러 왔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는데 하는 생각은 이내 이런 잡생각을 쉽게 물리쳤다.


파사이아 알베(알베르게의 줄임말)는 어떤 이들은 성당이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장발장의 저자 빅토르 위고의 집이었다고 한다. 파사이아 마을에는 위고의 기념관이 있었다. 유서 깊은 곳에서의 하룻밤은 그래서인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밤이었다.

2019년 5월 26일(주일).

어제 알베 문 여는 시간 기다리면서. 처마 밑에서 비 피하는 신세가 조금은 처량했다.

이룬 알베에서도 그랬고 파사이아 알베에서도 동양인은 나와 혜원 씨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외국인들은 우리 둘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이따금씩 질문도 던졌다. 뭐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북쪽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동양인이 아니어서 그런가 하면서 때로는 그 시선을 즐기기도 했다. 해가 떠야 할 시간임에도 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오늘로서 3일째 우의를 뒤집어쓰고 길을 나섰다.






마을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난간을 부여잡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에 비까지 내리니 미끄럽고 넘어지면 그 뒷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건너편까지 가는 시간은 채 1분도 안된다고 들었다. 첫배를 기다리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빵집에서 산 바게트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한국에서는 몇 천 원 하는 빵인데 이곳에서는 1유로도 하지 않아서 근 20일 동안은 내 아침과 점심을 책임져 주었다. 그렇게 첫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갔다. 이어지는 오르막길. 일행과 걷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내 페이스대로 걸었다. 비는 세차게 내렸고 시야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20190526_082224.jpg 어제 저곳을 통과해서 노르웨이 배가 바다로 나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만난 기분이었다.

그렇게 1시간 40분을 산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눈앞에 다시 언덕이 나타났고 그 언덕 끝자락에 카페가 있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봤던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알베와 카페였다. 흠뻑 젖은 몸을 추스리기 위해서 카페의 문을 열었다.






알베 간판.

인자하게 생긴 마치 산타할아버지처럼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우의를 벗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고 주인은 여기에 비스킷과 빵 그리고 따뜻한 우유를 더해서 내놓았다. 2시간 비를 맞고 걸었는데 이렇게 따뜻한 음식을 보니 감사가 절로 나왔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기도를 끝내고 커피를 한 모금 넘기니 차가운 몸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주인이 나에게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 크리스천이라고 답하니 이내 웃으면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서 내 옆에 앉는다.


공동체 리더와 아내.

그가 내민 것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공동체에 관한 책이었다. 이곳 말고도 세바스티안에도 알베가 있다고 했다. 또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에도 공동체가 있다고 했다. 자기들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본받아서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성경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를 함께 읽으면서 공동체의 기준이 되는 말씀과 자신들이 따르고 있는 공동의 신앙고백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야 할 길이 있음에도 워낙 진진하게 설명해서 차마 일어나지를 못하고 30여분을 앉아서 들었다.

나에게 설명을 해준 남자분은 공동체의 리더였고 프랑스 출신이며 아내는 독일 출신이었다. 그렇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받고 성경적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분들의 흔적을 뒤로한 채 다시 길을 나섰다.




여전히 비는 세차게 내렸다. 어제 목표로 했던 세바스티안에 도착했다.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휴양지. 1시간을 걸어야 끝에 도달하는 긴 해변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마침 비가 멈추었고 도시를 통과하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낯선 동양인에게 “올라~~”라는 반가운 인사를 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조그만 동양인 남자가 순례를 하는구나 하면서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의 눈빛을 받으며 해변의 끝에 도착했고 다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해변 모퉁이를 돌아 그다음 해변 끝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비는 오고 안개까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목적지는 오리오. 공립알베(알베르게의 줄임말)가 없고 사립 알베뿐이어서 어제 혜원 씨가 예약을 해주었다. 도시를 벗어나기 전 마트에서 점심에 먹을 과일을 구입했다. 그리고 언덕을 넘고 산에 접어 들어서 지친 다리도 쉴 겸 의자에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먹다 남은 바게트 빵 반쪽과 납작 복숭아 2개. 나머지 2개는 걸으면서 수분 보충과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길에서 먹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7시간을 비와 안개 그리고 진흙과 동행하며 걸어서 오리오 알베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혜원 씨는 도착하는 사람들마다 동양인 남자 보지 못했냐며 물어봤다며 고생하셨다고 했다. 알베 주인도 나를 보더니 “park~~~”하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알베에 도착하면 늘 하던 일과를 하고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쓰고 카스에 글을 올렸다.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면 하루가 끝이다. 이런 생활이 지겨울 것 같지만 단순함의 반복이 삶이 아닌가 싶었다.


비와 안개 그리고 진흙길을 걸으면서 조금은 갑갑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진흙길에 빠지는 발을 빼느라 힘들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중에 더 갑갑하고 힘들었던 것은 안개였다.

20190526_123524.jpg 앞이 보이지 않아서 힘들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 들리는 것이 더 많았다.


안개가 걷히자 이런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북쪽 길은 오른편에 바다를 그리고 왼편에는 산과 초지를 보면서 걷는 길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3일째 비를 맞으니 언제나 그런 멋있는 경치를 보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고 안개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니 갑갑했다. 그래서 딱 보이는 곳까지 갔다. 그리고 그곳이 오르막이면 올라가고 내리막이면 내려갔다. 그런 길이 반복되면서 멀리 보이지 않는 것도 때론 좋은 것이구나 생각을 했다.




나중에 경험한 일이다. 프리미티보 길을 걸었던 첫날 일정은 오비에도에서 그라도까지 가는 길이었다. 그라도에 가기 위해서는 넓은 평야지대를 걸어야 했다. 그 시작점에서 보이는 마을이 그라도였고 나는 멀리 보이는 그라도를 핸드폰에 담았다. 그리고 정확히 사진 찍은 지점에서 알베까지 40분을 걸었다. 이후로도 이런 경험을 몇 번했다. 보이는 것이 오히려 소위 말하는 희망고문이란 걸 직접 체험하니 때로 멀리 보이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은혜구나 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멀리 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와 경험은 한계가 있다. 그러니 멀리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이고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것을 예측해가면서 산다는 것도 때론 어리석은 행동인 것 같다. 안개가 낀 길을 걸으면서 딱 보이는 곳까지 가고 그곳에 갔을 때 앞에 보이는 곳까지 가는 것. 때론 내 삶의 먼 앞까지 보여주시기 않고 하루만 보여주시는 주님의 뜻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주님의 기도에 내일의 양식을 위한 기도는 없다. 다만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있다.

오늘을 산다는 것. 안개 낀 인생에서 보이는 길까지만 걷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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