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도 걱정하지 말자

2일: 생장 드 뤼즈에서 이룬(28.43km)

by 박동식

2019년 5월 24일(금)

어제저녁에 빨아둔 빨래는 화장실에 틀어둔 라디에이터 덕분에 바짝 말라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흐렸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추운 날씨였다. 우리나라 5월의 기온과는 달랐다. 어제저녁에 사둔 바게트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 일정은 이룬까지 가는 길.


이른 아침 생장 거리는 한산했다. 흐린 하늘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길을 걸어야 하는 나의 기분도 축 처졌다. 하지만 오늘은 국경을 넘는 날이기에 그것도 두 발로 넘는다는 나름의 이유를 머리에 각인시키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길 위에 흔적을 남기며 걸었다. 구름이 끼고 많은 양의 비는 아니어서 걷기에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비와 바람과 쌀쌀한 날씨는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걸으면 춥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봤던 캠핑카들이 줄을 지어 어디론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라룰레타 캠핑장이었다. 호기심에 그리고 배도 고팠던지라 캠핑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내 배를 채워줄 곳을 찾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먹다 남겨둔 바게트 빵 나머지로 궁색한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성같이 보이는 곳이 있었고 그 앞에는 10대 정도 되는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성채 샤토 뒤르튀비였다. 긴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을 통과해서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마을을 통과했다. 빵만 먹어서인지 배에서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배를 채워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허기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다. 1993년 2월 18일 나는 지금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31사단에 입대했다. 그곳 신교대에서 신병 교육을 받고 꽃이 피는 4월 전라남도 해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시간은 흘러 12월 성탄절을 이틀 앞둔 날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의 시작은 행군이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일병임에도 불구하고 난 입맛이 없었다. 희한했다. 훈련병 시절부터 입맛이 좋아서 자대에 와서도 늘 배 안 고프게 밥을 많이 먹었는데 그날은 이유를 모르겠다.

밥을 반만 먹고 식당을 나왔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겨울철 완전군장은 꽤 무겁다. 무거운 군장에 개인화기까지 메고 출발한 행군은 평지를 걸을 때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산을 넘으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산을 넘는데 가파른 언덕길이 아닌 임업 도로를 따라 걸어서 인지 시간이 길어졌고 아침을 배부르게 먹지 않아서인지 갈수록 허기가 졌다. 산을 내려와서는 다리가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일병이었다. 내가 입대할 당시는 군생활이 28개월에서 26개월로 줄어드는 시기였다. 자대에 가니 병장이 8호봉까지 있었다. 중대 반이상이 병장이었다. 그러니 일병이 군기가 빠지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군대가 좋아졌고 그때만 해도 군대는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병이 다리가 풀려서 엠블런스를 타고 숙영지에 도착했을 때 그 누구도 따듯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한 이틀은 욕만 먹은 기억뿐이다. 이튿날 저녁 그러니까 1993년 성탄절 저녁에 숙영지로 배달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작은아버지 가족이 보낸 성탄 축하카드였다. 그 카드가 없었다면 난 1주일간의 혹한기 훈련기간을 정말 힘들게 보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산을 넘을 때나 여행 기간 동안에는 늘 배 부르게 밥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배고픔을 면하게 해 준 고마운 편의점.

이때도 낮은 언덕임에도 불구하고 마트를 찾아서 과일과 초코스낵을 사서 배고픔의 아우성에 답을 주었다. 견딜만한 빗줄기는 굵어졌고 도로를 따라 걷던 순례길 안내표지는 다시 숲과 초지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비 내리는 도로보다는 시골길이 안전했다.


엉데에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시골길의 순례길이 막혀 있었다. 앞을 보니 언덕이 무너져 내려 있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도로 길을 30여분 걸었다. 다행히 길은 다시 시골길로 연결되었고 이윽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비다소아 강 다리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언덕에서 보이는 다리를 향해 내려갔다. 그런데 복잡한 로터리에서 노란색 화살표를 찾지 못해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좋겠다 했는데 마침 빵모자를 쓴 어른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친절한 프랑스 어른. 이분 덕분에 나는 무사히 이룬으로 갈 수 있었다.

그 어른은 내 가방에 달린 조개 모양을 보면서 말을 걸었다. 물론 프랑스어였다. 프랑스어를 모른다고 하니 짧은 영어로 산티아고 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신을 따라 오라며 손짓을 했다. 족히 500m 되는 거리를 나를 이끌고 가서 언덕에서 보았던 다리 앞까지 안내해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땡큐를 연발했다.


그 어른은 헤어지기 전에 자신이 얼마 전에 안내해주었던 한국인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끝까지 잘 걸으라고 하면서 격려해주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이런 호의를 받으니 앞으로의 순례길이 잘 될 것 같은 작은 희망이 생겼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석.


프랑스가 보고 배우면 좋겠다.

그렇게 다리를 건너서 스페인 이룬에 도착했다. 이룬에 들어서니 눈에 확 띄는 차이가 있었다. 바로 순례길 표시였다. 프랑스에서는 노란색 화살표를 찾는 것이 마치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크게 표시된 노란색 화살표가 곳곳에 심지어 땅에도 그려져서 너무나 편한 순례길이었다.


이룬에 도착하니 스페인 도착을 축하하는지 비도 멈추었다. 잠시 지친 몸을 위해 근처의 스포츠 센터 지붕 아래에서 쉬었다. 그리고 이룬 성당을 거쳐서 시청에서 세 번째 세요를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룬의 알베르게를 찾아가면 오늘 일정은 끝이었다.


이룬 시청을 나와서 카미노 앱을 켰다. 핸드폰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 나를 어떤 할아버지께서 손짓을 하며 길을 알려주셨다. 할아버지가 알려준 길에는 노란색 화살표가 잘 그려져 있었다. 나는 앱에 나온 길을 무시하고 그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도시를 벗어나기까지 나는 화살표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걸었다. 화살표는 이내 나를 산으로 안내했다. 북쪽 길은 산이 있다고 했으니 이 길이 맞는구나 하면서 산으로 들어섰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2시간 정도를 산길을 걸었다. 그런데 느낌이 싸했다. 핸드폰의 지도를 보니 나는 바다와는 정반대 길인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북쪽 길 처음은 분명히 바다가 보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길은 잘못된 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집이 나오면 길을 물을 작정으로 다시 30여분을 걸었다. 다행히 사람 사는 집이 있었고 “올라~~~~”를 크게 외쳤다. 마침 집에 사람이 있었고 통역기를 돌려서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다. 시간은 15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아침부터 비를 맞은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집주인은 이 길이 산티아고 가는 길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난 길을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염치 불고하고 큰 실례인지는 알았지만 혹시 하룻밤 묶을 수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는 못하고 미안하지만 여기서 30분만 걸어가면 마을과 큰 길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을과 큰 길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룬의 알베르게로 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을 부여잡고 빗속을 뚫고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방향으로 차가 가기에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손을 들었고 세워진 창문으로 통역기를 돌려서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차는 이룬 과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차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차를 보냈다.


20분을 걸어 큰길에서 지나가는 승합차에 손짓을 했다. 젊은 수리공이 타고 있는 차였다. 그런데 그 차도 마찬가지로 이룬 과는 반대방향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터벅터벅 이룬을 향해 걸어가는데 뒤에서 빵~빵 하는 소리고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 젊은 수리공이 타라는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염치 불고하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어디 가냐고 묻기에 바욘에서 받은 알베르게 주소를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10분 떨어진 곳이라며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통역기를 통해서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늘 하루 세 번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에 가장 고마운 도움이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15시 55분이었다. 5분 뒤에 알베르게 관리인이 접수를 받았고 나는 두 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이미 이틀 전부터 해온 대로 샤워하고 빨래를 했다.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주위에 식료품점이 있어서 냉동 볶음밥과 라면 묶음을 사서 알베르게로 왔다.


주방에 갔는데 한 동양인 여성이 나에게 “한국분이세요?”하며 말을 걸었다. 3일 만에 들어보는 한국말에 “네~~”했다. 여성분도 저녁 전이어서 내가 사 온 걸로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분은 이틀 전에 포르투갈 길 600km를 걷고 오늘 이룬에 왔다고 한다. 5년 전에는 프랑스 길을 걸었고 오늘부터 북쪽 길을 걸을 거라고 했다. 그분을 통해서 순례길에 대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같이 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갈 수 있는 데까지 안내를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분은 내 부탁을 들어주셨고 5일 동안 공립 알베르게가 문 닫은 곳과 걸을 거리를 조정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3일이라는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37일 후 포루투를 관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룬 알베르게까지 오는 길은 조금은 험했고, 돌아왔다. 하지만 인생길에서 돌아가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나를 도와주신 할아버지의 도움도 선의였을 거라며 잠시 원망했던 생각을 돌렸다.

돌아가더라도 너무 조급해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빨리 간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지는 말자는 교훈을 새삼 느끼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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