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의 설레임

1일: 바욘에서 생장 드 뤼즈(28.41km)

by 박동식

2019년 5월 23일(목)



낯선 이국의 둘째 날 밤 역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두 번은 깬 것 같다. 그렇게 잠을 못 이루고 새벽을 맞이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6시에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어제저녁 마실 나간 김에 책에 나온 다리를 찾아봤었다. 일단은 남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고 강을 따라 걷는 길이 어디인지를 눈여겨봐 두었었다.

첫 번째 표지. 37일 동안 조가비 표시만 따라갔다.

호텔에서 나와 어제 봐 둔 다리에 가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제 보지 못했던 기둥이 보였고 거기에는 조개 모양의 순례길 표시가 있었다. 눈이 확 떠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되었다. 강둑을 따라서 한참을 걸었다. 군데군데 있는 조개 모양 표시를 찾는 재미는 첫날 순례를 떠나는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강둑을 따라 점점 바욘과 멀어졌다. 언덕을 올라와 4차선 도로를 걸었다. 커피 1유로 표시를 보고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2시간 정도를 걸었으니 젖은 양말도 말릴 겸 바깥 테이블에서 이른 아침의 공기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무리스코 호수에서의 휴식. 망중한이란 게 이런 것인가?

무리스코 호수까지 무리 없이 조개 표시와 함께 화살표를 따라 잘 걸었다. 무리스코 호수에서 잠시 쉬면서 잔잔한 호수에 비친 하늘과 주위 경치를 감상했다.

매일 보던 회색빛 도시와는 너무나 다른 자연을 보면서 왠지 차분해지는 나 자신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길을 나섰다.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올드카 열대가 줄을 지어 지나갔다. 그동안 들었던 자동차 엔진 소리와는 다른 소리에 눈을 돌렸고 그 열대를 끝까지 보았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백발이었다. 마음에 맞는 노부부들이 여행을 즐기는 모습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었다. 해가 점점 내 머리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올드카 열대를 본 후 부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이정표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여태 보이던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일단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니 가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길을 헤매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나를 긴장시켰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구글의 힘을 빌렸다. 비다흐와 게타리까지는 구글의 안내를 받아 걸었다. 바다 근처까지 가니 생장이 항구라는 생각에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북쪽 길의 매력은 바다를 보면 걷는 것이다. 흐린 날이었다. 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복숭아 맛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무척이나 싸다는 것.

바다 근처 마을 마트에서 샌드위치와 납작 복숭아 5개를 구입했다. 이것으로 점심을 해결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마침 서핑을 즐기기 위해서 주차하는 곳에 의자가 보였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점심을 먹었다.

아직 서핑을 하기에는 바닷물이 차가워 보였지만 젊은 무리들은 보드를 메고 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군에 있을 때 봤던 박스카(통신차량)와 비슷했다. 젊은 부부의 여유가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점심을 먹다 보니 앞에 독특한 캠핑카가 있어서 식사를 끝내고 그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나를 보더니 차 안에서 젊은 남자가 인사를 한다. 서핑하냐고 물어보니 아내와 서핑하기 위해서 여행하는 부부였다. 가까이 와서 구경하라며 차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었다. 사진도 찍고 짧은 인사와 함께 생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게타리에서 생장까지는 쭉 뻗은 도로를 걸었다.




한낮의 태양은 정말 뜨거웠다. 태양의 열기와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순례길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을 거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멀리 빌딩이 보이길래 저곳이 생장이겠지 하면서 걸었다. 그러나 그곳은 생장이 아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달아 있는 곳을 걸을 때는 지나가는 차들이 정말로 부러웠다. 그렇게 태양의 열기와 도로의 열기가 섞인 길을 걸어 마침내 생장에 도착했다. 생장의 정식 명칭은 생장 드 뤼즈이다.

한 낮은 정말 더웠다. 멀리 보이는 곳이 생장이었으면 했지만 아니었다. 그 너머에 생장이 있었다.

나중 일이지만 내가 바욘에서 출발해서 생장을 거쳐 이룬에 왔다고 했을 때 프랑스 친구가 왜 생장에서 이룬까지 왔는지 놀랍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생장이란 지명이 프랑스 길 출발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거쳤던 생장 드 뤼즈를 보여주니 그제야 이해했는지 프랑스길 출발점과 같은 이름이라 헷갈렸다고 했다.



생장 성당 내부. 항구도시여서인지 배들이 많이 걸려있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을 했다. 일단 생장 성당을 찾았다. 성당 찾기는 쉬웠다. 성당에 들어가니 항구 도시여서 인지 배들이 성당 천정에 걸려 있었다. 무사히 생장에 도착함을 감사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세요를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볼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성당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 바깥 구경을 하고 다시 성당에 들어왔다. 누군가 제단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여서 제단 앞에서 기다렸다. 잠시 뒤 사제복을 입은 신부님이 나와서 순례자 여권과 배낭을 보여주면서 세요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순례자 여권과 배낭을 본 신부님은 알았다는 듯이 나를 성당 사무소로 안내해주었다. 그곳에서 두 번째 세요를 받았다. 나는 혹시 생장에 알베르게가 있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NO”였다.




어떡하나 생각하다 다시 구글의 힘을 빌렸다. 가장 저렴한 호텔을 찾았는데 57유로였다. 다시금 눈물을 머금고 서둘러 호텔을 찾았다. 성당과 가까운 곳이어서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어제 묶은 호텔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작은 공간이었지만 최저가이기에 짐을 풀었다.


첫날이어서 긴장도 했고 이정표를 찾지 못했을 때의 당혹감도 있어서인지 침대에 누우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늘 걸으면서 입었던 옷들을 빨아야 했다. 이 일은 피스테라에 도착한 37일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만약 이것을 하지 못하면 이틀 뒤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


순례를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본 글이 있다. ‘순례의 시작은 짐 싸기부터다’ 그 글을 본 후 짐을 싸는 기준이 정해졌다. 일단 이번 여행의 목적은 순례. 그러니 멋을 낼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짐은 의외로 단순해졌다.

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일본인? 중국인? 나 대한민국 사람이야!!

바지 두 개, 팬티 세 개, 긴팔 두 개, 반팔 두 개, 수영복, 모자 두 개, 양말 세 켤레, 빨래집게 세 개, 침낭. 물티슈, 구급약품, 일기장, 책, 필기도구, 무릎보호대, 운동화, 슬리퍼, 등산화(나는 군용 전투화) 이게 전부였다. 그래도 어깨에 메보니 무거웠다.


순례길에 필요한 것과 불 필요한 것의 구분을 어떻게 하냐고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산탄데르에서 만난 스님 일행이 해준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삼일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면 그건 필요 없는 거예요”


순례길도 이럴진대 인생길 걸으면서 나는 짐 정리를 잘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보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뒤로 한 채 어쩌다 한번 사용하는 것 때문에 내 인생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정말 필요한 것을 위해 나는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긴장하며 출발했던 순례길 첫날이 내 삶에 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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