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생각하다.

순례를 준비하며......

by 박동식

2019년 5월 22일(수)

일정: 파리에서 바욘.

시차적응이 안되어선지 밤새 뒤척인 것 같다. 바욘으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다. 예약을 했으니 가기만 하면 되었다. 민박 스텝에게 물어보니 자세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쉽게 전철로 가는 길이었고 별 탈 없이 도착해서 기차를 탔다.

몽파르나스역. 떠나는 사람과 도착하는 사람들 틈에서 외로움과 기대를 함께 느꼈다. 잘 갈 수 있을까?

한국에서 구입한 산티아고 길 책을 읽고 있으니 옆에 있는 외국인이 산티아고 걷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도 그렇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이룬에서 시작하는 북쪽 길 걷는다고 했다. 나는 바욘에서 시작해서 북쪽 길 걷는다고 했다. 그는 북쪽 길은 험하다며 손으로 위아래 물결치는 모습을 했다. 속으로 그렇게 험한가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5시간 10분을 달린 기차가 바욘에 도착했다.


그 외국인은 자신은 여기서 버스로 생장을 거쳐 이룬 까지 간다고 하면서 잘 걸으라며 Buen Camino 한다. 나도 Buen Camino 하며 헤어졌다. 난생처음 와보는 바욘. 읽은 책에 의하면 일단 바욘 대성당을 찾아야 했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대성당을 찾는 것은 쉬웠다. 얇은 지식으로 유럽에서 대성당은 가장 높은 지대에 있으며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차역을 나와서 5분을 걸어가니 강 건너에 성당의 종탑이 눈에 보였다. 15시의 태양은 뜨거웠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걸어야 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첫날부터 주눅 들지 말자 하면서 대성당을 향해 걸었다.

바욘 역. 날씨는 좋았고 마음은 설레었다. 두려움은 기대감으로 눌렀다. 하지만 걱정은 태산이었다.


성당으로 들어가니 난감했다. 책에서 본 공간은 분명히 있는데 사람이 없는 것이다. 16시가 넘어가니 일단 숙소를 잡고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근처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17시쯤 가보니 자원봉사하는 분이 있었고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과 순례자임을 보여주는 조개를 구입했다.


성당을 찾고, 숙소를 구하면서 점심을 건너뛰었더니 배가 몹시 고팠다. 우리나라 마트 같은 것이 있어서 들어갔다.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냉동 코너에 갔다. 야채 볶음밥과 컵라면이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내일 아침 먹을 것까지 계산해서 큰 걸로 구입했다.


저녁을 먹고 바람을 쐬러 밖에 나왔다. 19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지지 않았고 밝았다. 성당 쪽으로 가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잠시 뒤에 네 명이 관을 어깨에 들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따라 들어갔다. 장례식이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조용하게 치러지는 장례식은 차분했다. 조용히 망자를 보내는 미사가 끝난 후 한 사람씩 유가족과 포옹을 하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며 떠났다.

바욘 대성당에서 본 하늘. 저 하늘로 한 사람이 올라갔다.


순례길 출발하기 전 장례식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재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나는 군에서 열 번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이 거북스럽지는 않았다. 나보다 젊은 병사들, 그리고 간부들, 교인들을 보내면서 나는 무던히도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또 생각했었다. 죽음을 보는 내 눈, 염하면서 시신을 만졌던 내 손은 두렵고 떨렸었다. 그러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만 갖는다면 그것은 옳은 믿음이 아닌 것 같았다.


군종목사 초임 시절 의무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의무중대장이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 천국은 어떻게 갑니까?”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예수님 믿으면 가죠” 돌아오는 답은 싸늘했다. “아뇨 목사님! 그런 원론적인 답 말고요” 나는 왜 저렇게 물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중대장님 저랑 싸우자고 그러시는 것 아니죠?” “목사님 하고 싸울 이유는 없죠. 천국은 어떻게 갑니까?” 나는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알았다. 그리고 답했다. “천국은 죽어야 가죠” 그러자 중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그렇죠. 천국은 죽어야 가죠. 그런데 그 좋은 천국, 그렇게 가고 싶은 천국 갔는데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럽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전문의인 그는 인턴, 레지던트 시절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근무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죽은 이들의 유가족 10명 중 9명이 자기 멱살을 잡거나 험한 말을 하면서 사람 살려내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9명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천국 갔는데, 의학적으로 살릴 수 없는 사람인데 왜 나에게 살려내라며 멱살 잡고 험한 말을 했는지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죽어야 가는 천국. 그 천국에 들어가는 죽음이란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모르고 믿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순례길 떠나기 전 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방인의 죽음 앞에서 언제가 분명히 다가올 나의 마지막을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순례길이 올바른 믿음을 세우는 계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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