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를 거부하며 걷다

3일: 이룬에서 파사이아(18.94km)

by 박동식

2019년 5월 25일(토)

알베르게에서의 첫날밤은 낯설었다. 2층 침대의 아래층을 썼고 위층은 외국인 여성이 양쪽 맞은편도 미국과 독일에서 온 여성들이 사용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베르게는 남녀 혼숙임을 알았지만 막상 접해보니 신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샤워장도 남녀공용으로 사용했으니 더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낯선 곳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비가 내리는 이룬을 떠났다.


이른 아침 출발하는 순례자들. 이들과 다시 만나기도 하고 첫 만남이 끝이기도 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온통 순례자들 뿐이었다. 카미노 앱에 나온 대로 걸으면 세바스티안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혜원 씨(한국 여성분)가 세바스티안 공립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다며 내일 파사이아까지만 가자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가자는 곳까지 갈 테니 안내만 잘해달라고 거듭 부탁을 드렸었다.


어제도 비를 맞았는데 오늘도 비를 맞고 시작하니 몸이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떡하랴 내가 날씨를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뜨거운 태양이 아님에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40여분을 걸어가니 하이스키벨 산이 앞에 나타났다. 높이는 300m가 안되었다. 하지만 바다부터 올라가는 것이라 꽤 힘들었다. 처음부터 산이 나타나니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앞으로의 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북쪽 길에 대한 정보는 책과 인터넷을 통해 미리 알아볼 수 있었다. 하루에 두 개에서 세 개정도의 산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산의 높이는 400m에서 500m 정도. 하지만 바다에서부터 시작하는 고도라서 생각보다 높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길을 걷는 사람들 중 이틀 내지 삼일 만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종종 읽을 수 있었다.

이룬과 강 건너 프랑스 엉데가 보인다.


북쪽 길 첫날이었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산을 오르기에 비 오는 날도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등산스틱을 준비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산을 넘어야 길이 열리기에 깊은숨을 들이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팔랐다. 올라가는 도중 쉬면 더 힘든 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고 경험했기에 힘들었지만 우의를 쓴 채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과달루페 공소.


산 9부 능선 하늘이 보이는 곳에 조그만 공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서 이룬을 조망할 수 있었다.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룬 시내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잔뜩 끼고 흐린 날이라 시계는 좋지 않았지만 어제 건너왔던 다리도 보이고 다리 왼쪽으로는 바다도 보였다. 이곳에서 순례길이 해변 길과 산길로 나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꿀 맛 같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걸었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옆을 지나가는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나보다 앞서 갈 수 있음에도 그 청년은 나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안녕하세요” 하는 게 아닌가? 외국인이 유창하게 안녕하세요를 하니 내 작은 눈은 금세 토끼눈이 되어서 한국말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스페인 사람이고 이름은 하비엘이었다. 합기도를 배웠고 1단이며 사부님과 사모님이 한국분이어서 한국말을 조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국에 갔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냈다.

제주도, 속초, 서울을 가봤다며 한국이란 나라가 참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내 나이 또래의 스페인 아저씨가 따라와서 셋이서 잠시 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과 같이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워낙 신체조건이 차이가 나니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쳐졌고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나는 휴식을 취했다.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산을 넘은 게 아니었다. 산의 8부 능선을 타고 이룬을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비는 멈추었다. 비가 멈추니 걷기에는 좋았다. 땅도 돌들이 적당히 섞여서 진흙탕이 아니어서 좋았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었다.

북쪽 길은 걷는 동안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혼자만의 시간이 좋았다.

앞서 갔던 두 사람을 1시간쯤 뒤에 다시 만났다. 역시나 20여분을 같이 걷다가 그들과 헤어졌다. 나는 새삼 체력 차이를 느꼈고 내 페이스대로 걸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못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주님을 믿는 한 성도로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늘 강조한 것이 있었다. 내가 받은 은혜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주님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주님이 보시기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니 절대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외국인들과 걸으면서 내가 전한 것이 그렇게 쉽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당연히 다른 사람의 것을 보게 된다. 눈이 달렸고 귀가 달렸으니 보고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니 자연히 내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다. 그 인지상정을 쉽게 떨치기는 정말 힘든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같이 걷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니 난 그들의 신체조건이 참 부러웠다. 나중에는 네덜란드, 독일 여성들보다도 빨리 걷지 못하는 내 발과 체력을 보면서도 난 좌절하지 않았다. 왜? 나와 그들은 다르게 창조되었으니까 했지만 솔직히 그들의 신체조건이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37일 동안 길을 걸으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 나보다 느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신체조건이 부러웠고 더 빨리 걷지 못하는 나의 체력에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참 못난 행동이고 생각이었음을 알고 빨리 뉘우치고 회개했다.


그들이 걷는 길과 내가 걷는 길은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이기에 같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빠르고 나는 느리다는 것. 하지만 그들의 빠름과 나의 느림은 비교할 것이 못된다. 그들과 나의 신체조건은 다르기 때문이다.


비교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더군다나 믿음 생활을 하면서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하면 더 주눅 들게 마련이다. 왜 나에게는 저런 은혜가 없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라. 주님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 과연 있는가? 있다면 무엇과 주님을 비교하겠는가? 주님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시다. 그러니 주님이 주시는 것도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걷는 동안 최고로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걸었다. 그러면서 많이 보고 많이 느끼려 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걷는 길이 훨씬 즐거웠고 힘들어도 긴 시간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파사이아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겨서였다. 오늘 자는 공립 알베르게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알베르게는 마을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내려다보는 파사이아의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아쉬운 점은 비가 와서 침울했다는 것 빼고는.

파사이아 알베에 그려진 재미있는 그림.
파사이아 알베. 위고의 집이었다고도 하고 수도원이었다는 말도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연 식당에는 외부에도 식탁이 있었다. 한 외국인이 먹는 음식을 나도 주문을 했다. 점심을 먹고 알베르게에 가니 혜원 씨도 와있었다. 오후 4시에 문을 여니 시간이 남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서 커피를 먹으며 비에 젖었던 몸을 녹였다. 알베르게 관리인은 정확히 4시에 와서 문을 열었다.


어제 했던 방식대로 침대를 배정받고 온수에 샤워를 하니 지쳤던 몸이 이제는 살 것 같다며 신호를 보냈다. 이제 겨우 4일 걸었는데 이틀을 비를 맞았더니 내가 스페인에 비 맞으러 왔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는데 하는 생각은 이내 이런 잡생각을 쉽게 물리쳤다.


파사이아 알베(알베르게의 줄임말)는 어떤 이들은 성당이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장발장의 저자 빅토르 위고의 집이었다고 한다. 파사이아 마을에는 위고의 기념관이 있었다. 유서 깊은 곳에서의 하룻밤은 그래서인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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