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라라베추에서 빌바오(19.21km)
2019년 5월 30일(목)
오늘은 여태까지 걸은 거리 중 가장 짧은 거리를 걸었다. 지오트랙 앱에 나온 거리는 19,21km다. 라라베추를 벗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도심을 벗어난 길은 금세 넓은 평원으로 이어졌다.
이따금 보이는 집에는 바스크 자치주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집집마다 걸어둔 깃발을 보면서 바스크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다시금 읽을 수 있었다.
빌바오를 가는 길은 두 개의 마을을 통과했다. 자연스럽게 길은 포장된 도로였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니 당연히 자동차를 위한 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도로는 자동차와 사람을 위한 도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례자들이 있으니 그러겠지 했다. 하지만 도로 옆으로 사람을 위한 길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참 존경스러웠다.
길은 공존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길은 열려 있어야 하고 그 길을 누구는 빨리 갈 수 있고 누구는 천천히 갈 수 있다. 빠름과 느림이 공존해야만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빨리만 간다고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느리게만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다.
이 둘이 공존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빠름만을 추구해서 벌어지는 아픔을 굳이 먼 곳에서 보지 않아도 나는 많이 봐왔고 그것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런 모습을 생각하며 걸었던 길은 나에게 신선했다.
두 개의 마을을 지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평탄한 길을 걸을까? 생각을 하니 길은 다시 산으로 이어졌다. 언덕에 위치한 공장지대를 지나 빌바오로 향한 고속도로 위로 순례길은 이어졌다. 산을 오르는 초입에서 난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산 높이는 351m. 높지는 않았다. 그렇게 산을 넘어 내리막의 끝에서 빌바오를 대면했다.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네르비온 강어귀의 작은 어촌에서 시작한 이 도시는 철로 부를 축적한 도시이다. 그동안 등산 스틱이 없었기에 이곳에 도착하면 데카트론을 찾아서 스틱을 사라는 혜원 씨의 말을 들었다.
구불구불 길을 걸어 도심에 들어온 나는 지도를 살펴가면서 데카트론 매장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빌바오 대성당을 들렀고 도심의 중앙공원도 지났다. 대도시답게 사람들은 많았고 관광을 위해 온 사람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잊었던 도시의 활력을 눈으로 보았다. 찾아간 매장은 우리나라 대형 마트와 같았다. 다만 이곳은 아웃도어와 스포츠 용품에 특화된 곳이었다.
지하부터 2층까지 연결된 매장에는 다양한 제품의 아웃도어 제품과 스포츠 용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니 저렴했고 사고 싶은 제품들도 많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이 아쉬웠다. 등산스틱과 양말 두 켤레 그리고 스포츠 음료를 14.99유로에 구입했다. 원화로 하니 약 19,850원. 깜짝 놀랐고 기분이 좋았다. 매장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구입한 이온 음료와 어제 산 바게트 빵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 빌바오 공립 알베를 찾아 길을 나섰다. 지도를 보니 3km 정도 걸어가면 되었다. 라라베추에서 알려주기를 도시가 넓으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버스는 타기 싫었다. 걷기 위해서 왔으니 걸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지도를 살피면서 네르비온 강을 건넜다. 도심지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화살표는 잘 보였다. 지도와 화살표를 비교해가면서 걷는 길은 이내 도심의 높은 언덕으로 나를 안내했다. 알베가 이런 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도심에서 벗어났다.
언덕을 올라가니 도심과는 다른 주거 환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우리가 말하는 달동네였다. 그리고 달동네가 끝나는 지점에 공립 알베가 있었다. 도착한 시간은 15시였다. 알베가 문을 여는 시간은 16시. 한 시간 정도를 계단에 앉아서 쉬었다. 그 시간 동안 순례자들은 계속해서 도착했고 자신들의 배낭을 온 순서대로 정리했다.
16시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문을 열어서 순례자들을 환영해 주었다. 늘 하는 방식대로 순례자 여권과 초록색 한국 여권을 제시하고 알베 사용로 5유로를 지불했다. 다 끝난 줄 알고 성큼성큼 들어가니 할머니께서 뭐라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말을 하셨다.
문득 스페인 하숙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배우 유해진 씨가 찬찬히 알베를 안내하는 장면.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하다며 다시 할머니 곁으로 갔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다리는 순례자들을 뒤로하고 내가 자야 할 침대와 세면장 그리고 빨래할 수 있는 공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을 모든 순례자들에게 해주었다.
나는 놀랬다. 그런 것쯤은 앞사람 보고 할 수 있으니 빨리 접수나 받고 들어가게 해달라고 우리나라 같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 있던 순례자들은 할머니가 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 하나 뭐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일이고 자신들은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처음 본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다. 평소 급한 성격의 나도 이런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몸으로 체험한 시간이었다.
이곳 침대는 싱글 침대였다. 여태까지 사용한 침대는 이층 침대였고 아래나 위층을 사용해도 늘 한 사람이 움직이면 나도 움직이게 되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 날 만큼은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알베와 도심이 너무 멀다는 것. 3km를 걸어왔다는 것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다시 3km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빨래를 널고 돌아오는 내 눈에 저녁식사에 관한 글이 보였다.
영어로 된 안내문에는 3유로를 내면 이곳에서 맛있는 저녁식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안내문을 가르치니 돈을 넣는 함에 3유로를 넣으란다. 환히 웃으면서 3유로를 넣으니 저녁식사 시간은 19시 30분이라고 그때 식당으로 오라고 알려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이들과의 식사시간은 어색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고 아니다고 하니 그럼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임을 말하는데 두 나라를 거치는 게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데바를 거치면서부터는 내가 먼저 한국인임을 밝히고 어디서 왔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은 왜 북쪽 길을 걷는지가 나왔다. 이 질문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fun” 또는 “active”라고 답했다. 북쪽 길을 걷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미 프랑스 길을 걸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프랑스 길은 지루한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쪽 길은 하루 평균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재미였고 역동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는 너는 왜 왔냐고 물었고 난 파사이아에서부터 이렇게 답했다. 짧은 영어 실력이고 문법에 맞지도 않았지만 이 썰렁함이 한 번도 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Long ago I read newspaper santiago.
I wanted santiago walking but (결혼반지를 가리키며) I married.
wife, three child.
korea father life very busy and difficult.
I lost santiago.
One day my wife said me.
“you go to santiago, now”
I said “thank you”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다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었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히나 결혼을 한 남자들은 아내와 세 아이가 있고 아빠의 삶이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해주었다. 빌바오의 저녁식사는 이렇게 나의 말도 안 되는 썰렁한 유머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