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코미야스에서 엘 페랄(33km)
2019년 6월 6일(목)
편안한 잠자리여서 그랬는지 아침이 유난히 개운했다. 코미야스를 벗어나는 길은 가로수 길이었다. 왼쪽으로는 초록색 초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풍경이 펼쳐졌고 그 멀리로는 산들이 높이를 자랑하며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도로와 가로수가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강을 건넌 순례길은 오얌브레 해변으로 이어졌다. 칸타브리아 해를 오른쪽에 두고 걷는 순례길은 초록색과 파란색을 양쪽으로 볼 수 있어서 회색빛에 지친 눈의 피곤이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었다. 오얌브레 해변에서 골프장을 보았다. 몇 번 홀인지는 모르지만 순례길에 인접한 홀은 바다를 조망하게끔 되어 있었다. 이곳도 경치가 좋아서인지 몇 대의 캠핑카가 주차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변길은 다시 산으로 이어졌고 왼쪽 멀리 만년설에 덮인 산봉우리가 보였다. 만년설을 보다니 하면서 길을 걷는데 건너편 해변에 그림같이 자리 잡은 도시가 보였다. 산 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였다.
주황색 지붕이 인상적인 도시는 보기에도 오래된 다리를 건너 들어갔다. 원래 다리가 없었고 순례자들을 위해서 배가 운행되었다고 한다. 그런 불편함이 지속되다가 1495년에 지금의 다리가 완공되어서 사람들이 편하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를 통과하다가 여태까지 본 적 없는 다른 안내 표지석을 보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조개 모양이 맨 밑에 있고 그 위로 빨간색 십자가가 자리하고 다시 그 위로 빨간색 화살표가 있는 세로로 긴 표지 석이었다. 이곳만의 독특한 표시인가 하면서 다시 걸었다.
세르디오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위해 바르에 들어갔다. 코미야스 오는 길에서 잠시 만났던 영국인이 올라 하면서 인사를 한다. 그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것은 제쳐두고 햄버거를 먹으라고 한다. 주인에게 햄버거를 주문했다. 우리나라 햄버거와는 달랐다.
손바닥만 한 햄버거 빵에 고기 패티와 양배추 두 장이 전부였다. 그리고 접시에 계란 프라이 두 장과 감자튀김을 접시에 담아서 가져다주었다. 더운 날씨여서 음료는 콜라를 주문했고 레몬과 얼음이 담긴 컵에 캔 콜라가 딸려왔다.
햄버거는 아쉬웠지만 한 끼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30여분 동안 천천히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길 위에 섰다. 10여분 마을을 벗어나는 길을 걷는데 담들이 많이 본 예전 기억을 되살렸다. 돌만 다를 뿐 길이 제주도의 마을과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역시나 익숙한 승합차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으면서 저 차 운전 많이 했는데 하면서 피식 웃었다.
세르디오를 벗어나니 길은 채석장을 왼쪽에 끼고돌았다. 초록색 대지위에 낯설게 자리 잡은 채석장은 주위 풍경과는 이질감을 주었다. 하지만 사람도 살기 위해서 자연의 일부를 빌려야 하니 나중에 채석장이 용도를 다 한 뒤에는 주위와 어울리게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채석장을 넘어 부스티오 공립 알베에 도착했다. 몇 번 얼굴을 맞대고 인사했던 순례자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오늘 여기서 묶을 거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리가 없단다. 그러면서 문을 가리킨다.
자리가 다 찼다는 안내문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15시가 안되었는데 자리가 없다는 것은 나보다 빨리 걸은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순간 저 사람들은 순례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빨리 걷기 내기를 하는 사람들인지 하는 못된 생각을 했다.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 터벅터벅 왔던 길을 내려왔다.
알베로 가기 전 나는 동네 사람에게 알베 위치를 물어봤었다. 그 사람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나를 보더니 왜 오냐고 한다. 자리가 없다고 했더니 오른쪽 언덕을 가리키면서 저 언덕 너머에도 알베가 있으니 가보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덕을 오르면서 왜 그리도 세게 스틱을 쿵쿵 내디뎠는지 창피하다. 먼저 온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빨리 걷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분노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창피하다.
언덕을 넘고 작은 기도처를 지나 콜롬브레스에 도착하니 커다란 알베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낯익은 독일 청년도 눈에 띄었다. 그와는 구에메스에서 알게 되었다. 독일임에도 유창한 영어로 여성들에게 웃음을 유발했던 젊은이였다. 저녁 먹는 시간에도 그의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둘이 눈이 마주쳤고 거의 동시에 올라~~ 하는 사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거리만큼 가까워졌다. 그런데 청년의 말에 또 좌절했다. 상당히 큰 알베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만큼 저 아래에서 또 분노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청년은 검색해보니 여기서 1km만 가면 숙소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난 무조건 같이 간다고 하면서 길을 나섰다.
16시가 다되어가는 태양은 정말 뜨거웠다. 길을 걸으면서 정말 1km냐고 물었던 것 같다. 걱정 말라며 그 청년은 지도를 보면서 앞장서 걸었다. 신체조건이 워낙 차이가 나니 나는 먼저 가라고 말하며 뒤에서 그를 쫓아갔다.
길게 뻗은 2차선 도로 오른쪽에 2층 건물이 보였다. 앞서 가던 청년이 저곳이라며 환히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1층 바르에 들어갔다.
다행히 방이 있었다. 어렵게 구한 숙소여서 그런지 청년에게 덕분에 오늘 잘 곳을 찾았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길 건너편에도 식당을 겸한 숙소가 있었다. 나중에 그러는데 이곳이 저렴해서 선택했다고 그런다.
글을 쓰는 지금 그날 카스에 적었던 글 후반부를 다시 생각하며 옮겨본다.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했는데 독일 청년 덕분에 오늘도 잠잘 곳을 찾았다. 길을 걸으면서 내일을 생각하는 건 사치인 것 같다. 그저 오늘 걸을 힘과 양식, 그리고 잠잘 곳만 있으면 감사할 뿐이다.
야고보 사도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가 길을 걸으면서 주님께 구했던 것이 커다란 성공과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큰 교회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지나는 마을에 자기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하루 먹을 양식과 잠자리에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린 미래를 준비한다면서 현재의 내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저녁에 비수가 날아오는 것도 막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길을 걸으면서 다시금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를 새삼 마음에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