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도 의미가 있을까?

16일: 엘 페랄에서 야네스(21.94km)

by 박동식

2019년 6월 7일(금)


어제 묶은 숙소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딱히 갈 곳도 없으니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전 발바닥을 살펴보니 이제 웬만치 살이 올라와서 밴드를 붙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옆에서 독일 청년이 책을 뒤적이다가 나에게 내민다.

오늘 걸어온 길을 보여주면서 뒤에 있는 사람들도 어차피 내일 이 길을 지나간다며 우리가 앞서서 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일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해안 길로 가면 돌아간다고 한다. 대신 책에 나온 사진을 보여주면서 신기한 것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파도가 치면 해안가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물줄기가 올라오는 장면이었다. 자신은 내일 이걸 볼 거라고 한다. 나는 웃으면서 너 보다 나이가 많으니 짧은 길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책을 들고 다녔다.

그 책은 북쪽 길에 대한 책이었고 하루씩 걸을 수 있는 거리와 자세한 지도 그리고 길을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 식당 위치와 숙소도 상세하게 나와서 책 한권만 가지고 있으면 어디에 있어도 쉽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도 앱을 깔아서 보고 있지만 책을 보니 조금은 부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옆에 있는 독일 청년도 같이 일어났다. 밤새 쌀쌀한 기운이 느껴져서 두세 번 깬 것 같았다. 독일 청년은 매트리스 커버를 벗겨서 자신의 침낭과 함께 덮고 자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잘걸 하면서 피식 웃었다.

아침이 상쾌해지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끼면 순례길에 적응이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도 걷는다.

어제 나는 아스투리아스 주로 넘어왔다. 바스크 주 이룬에서 출발한 순례길은 포베냐에서 끝이다. 칸타브리아 주로 넘어온 순례길은 운케라에서 끝이다. 데바 강을 건너면 아스투리아스 주로 행정 소재지가 바뀐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포함된 갈리시아 주. 이렇게 우리나라로 치면 네 개의 도(道)를 넘는 순례길이다. 주(州)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나중에 갈라시아 주에서는 조개 모양과 화살표 방향이 여태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하늘은 맑았다. 구름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정오를 넘어서면서 구름이 몰려왔고 그늘이 생겨서 좋았다. 숙소 왼쪽으로 길게 난 도로 옆 순례길은 흙길이었다. 어느 정도 살이 오른 발바닥에 이보다 좋은 길은 없었다. 늘 하던 기도를 마친 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길을 걸었다.

잠시 뒤 오른쪽 기찻길로 기다란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이제 막 역을 벗어났는지 기차를 운전하는 젊은 기관사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느렸다. 젊은 기관사는 길을 걷는 우리를 보고 몇 번이고 경적을 울리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독일 청년과 나도 화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50분을 걷고 나는 휴식을 취했다. 독일 청년은 나중에 보자며 손을 흔들고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걸어갔다. 작은 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지나면 푸른 초지가 나오는 순례길은 오늘도 여전했다. 이따금씩 도로를 따라 걷던 순례길은 걷기에 부담되지 않을 만큼의 언덕으로 이어졌다.

바람이 정말 세게 불었다. 파도 높이도 장난 아니었다.

라파즈 캠핑장을 돌아가는 길목 끝에서 높은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면서 언덕으로 올라섰고 이때부터 맞바람을 맞으면 걸었다.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은 걷는 나를 힘들게 했다. 원치 않는 이물질도 이따금씩 입으로 들어왔고 거센 바람은 앞으로 나가는 내 몸을 미세하게나마 뒤로 처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 까지 내 몸이 느낄 만큼 내가 예민했나 싶었지만 이날 바람은 정말 거세었다.





야네스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항구를 끼고 있는 관광 도시였다. 도심의 건물들은 거센 바람을 막아주었고 도심 한가운데 광장에는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바르마다 인산인해였다. 도심을 통과해서 알베 앞에 가니 문 여는 시간이 14시라고 적혀 있었다. 배낭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제일 먼저 온 것 같았다. 30여분 뒤에 독일 청년이 다른 외국인 순례자와 모습을 나타냈다. 내가 배낭을 보고 있는 동안 둘은 먹을 걸 사러 갔다. 30여분 뒤에 둘은 점심거리를 사서 왔고 5분 거리에 마트가 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도 마트에 가서 빵과 우유 그리고 내일 점심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바람이 너무 불었고 몸도 추웠다. 알베 앞에 사각형의 아파트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제외한 사방이 5층 아파트였고 중앙 광장은 바람이 불지 않았고 햇볕은 따뜻했다. 그곳에서 세 명은 사가지고 온 음식물로 각자의 점심을 해결했다.

14시가 되니 알베 관리인이 문을 열었다. 세 명은 차례대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알베 건물 치고는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어서 지어진 연도를 물었다. 129년 되었다는 말에 입을 떡 벌렸다.

129년 된 숙소에서 자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하겠지.

샤워를 하면 다음에는 빨래를 해야 한다. 빨랫감을 가지고 내려가니 이곳은 빨래까지 해주는 알베였다. 공립 알베인데 15유로를 받아서 뭐 이리 비싸나 했는데 조식 포함해서 이정도의 서비스니 그럴 만도 했다. 덕분에 시간이 남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뜨니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알베에 들어왔다. 내가 있던 방 침대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18시임에도 문을 연 식당들은 드물었다. 대부분 식당들은 20시부터 저녁 영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서 알베를 나왔다.

바닷가 쪽으로 길을 잡고 걸었다. 왼쪽에 언덕이 보였고 사람들이 언덕 위에 조성된 공원에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위에 서니 앞으로는 짙푸른 바다가 보였고 뒤로는 커다란 산들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오늘 걸어오면서 나는 바다 뒤쪽으로 보이는 산들 때문에 조금 힘들었다. 길을 걸을 때 그 산들은 왼쪽에 커다란 벽처럼 보였다. 몇 시간을 걸어도 그 산들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오른쪽은 마을이 보였다가 언덕이 보이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지루한 왼쪽보다는 변화가 있는 오른쪽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공원에서 그 산들을 바라보니 내일 걸어야 하는 길에도 여전히 산들은 이어졌다. 하지만 끝은 보였다. 내일도 지루하겠네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20190607_115316_HDR.jpg 핸드폰이 터지지 않았다. 저 산이 없었으면 방향을 잃었을 것이다.

내가 오늘 걸으면서 방향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저 산들 때문이 아닐까? 사실 오늘 길을 걷다가 길을 잘 못 들어서 1시간 정도를 헤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데이터 연결도 안 되어서 내 위치를 파악도 못했었다.

여태까지 걸어온 서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서쪽만을 향해 가기에는 무언가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어야 했다. 그때 나는 왼쪽을 봤다. 여태까지 갑갑하게 왼쪽을 가로막고 있는 산들에게 그제야 고맙다는 말을 했다. 위치는 파악이 안 돼 지도상으로는 그 산들을 왼쪽에 두고 길을 가면 오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나는 1시간을 걸었고 데이터가 연결이 되어서 순례길을 찾을 수 있었다.


때로 변하지 않는 환경이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루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변하지 않는 모습에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변하지 않고 옆에 있는 것이 고마운 때도 있음을 오늘 알게 되었다.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야 때로 그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 생활도 인생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믿음도 인생도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20190607_180915_HDR.jpg 순례길은 멀리 보이는 산으로 이어진다. 방향 잃어버릴 염려 없다.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에 이런 것들이 기준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방황하던 인생들이, 부패한 사회가 교회를 보고 다시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사회도 정화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향해 그렇게 변하면 안 된다고 하니 부끄럽기 한량없다.

세상은 변해도 교회는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인생길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이 내 믿음의 길을 보고 저것이 진정한 인생이구나!라는 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좁게 보면 나도 그렇다. 만약 수시로 변하는 나처럼 주님도 수시로 마음을 바꾸셨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까? 결코 아니다. 주님이 변함이 없으셨기에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다. “지루함”이것 또한 믿음의 길에서 인생의 길에서 소중하게 여겨할 단어임을 내 삶에 각인시키는 시간이었다.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과 바다를 보면서 잠시나마 변하지 않는다고 원망했던 부끄러운 내 생각을 바꾸는 시간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배꼽시계는 밥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알베에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도 식당 신세를 져야 했다. 코미야스에서 실패를 맛본 뒤 다시는 실패하지 말아야지 했다. 얼추 저녁 영업시간이 되었기에 사람이 있는 곳을 살폈다. 검색의 힘을 빌려서 평이 좋은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끝내고 나왔는데도 해는 지지 않았다. 점심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바르와 식당의 안과 바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참 적응이 안 되는 저녁이었다. 그러나 막상 적응이 다 된 시점에 나는 한국으로 왔다.

이렇게 16일 차 순례길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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