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산 에스데반 데 레체에서 세브라요(31.46km)
2019년 6월 9일(주일)
주일 아침이다. 알베에서 주는 갓 구운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으니 배가 든든해서 좋았다. 알베 옆에 있는 성당의 문이 잠겨 있어서 마당에서 나만의 예배를 드리고 출발했다. 어제저녁에 프리미티보 길로 간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세브라요까지 가라고 하셨다. 걷고 보니 31km였다. 하늘은 흐렸고 걷다 보니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산을 넘어 내리막길에 위치한 베가에 도착했다. 가정집 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잠시나마 그림 감상을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겠다 싶었다. 조그만 마을인데도 알베가 있는지 2층에서 짐을 꾸리는 순례자와 눈이 마주쳐서 “올라~”하면서 서로 인사를 했다.
해변을 잠시 걷던 길은 다시 산 중턱을 지나는 길로 이어졌다. 비도 오지 않은 흙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산길이 끝나고 잠시 해변을 본 뒤 바다를 볼 수 있는 언덕길로 이어졌다.
하늘이 맑았다면 바다색도 예뻤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맑은 하늘의 태양은 뜨거운 열기만 없다면 환영하겠지만 나만의 욕심이니 지금의 날씨에 만족하고 감사했다. 베시에야 해변을 지난 순례길은 한눈에 봐도 해수욕장임을 알 수 있는 라 에스파사로 이어졌다. 날도 흐리고 시간도 이른지라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군데군데 샤워시설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이 이곳이 해수욕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라 이스라를 지나 콜룽가에 들어서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단체티를 맞춰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서 어디를 가고 있었다. 문을 연 마트나 슈퍼가 없어서 문을 연 바르를 찾았다. 마침 입간판에 사진으로 메뉴가 나와 있는 바르가 눈에 띄어서 가보니 햄버거 세트를 팔고 있었다. 점원에게 햄버거 세트를 가리키고 바깥쪽에 자리를 잡았다. 세르디오에서 먹었던 햄버거 세트와 사진이 달랐으니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점원이 들고 온 세트는 사진 그대로였다. 흡족한 마음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길을 나서는데 핸드폰에 알림 메세지가 떴다. 앱에서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1100년 된 성당이 있으니 방문해보라는 메시지였다. 지나가는 길이고 주일이고 해서 나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나도 잠깐 서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시를 벗어나니 다시 시골길이었다. 앞을 보니 웬 어른이 길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방향을 보니 내가 가는 방향과 같아서 손으로 어른의 앞길을 가리켜주었다. 손을 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는 길을 걸어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었는데 앞서가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쉬고 있겠지 하면서 길을 걸었다. 사람 보기가 힘든 길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인지는 몰라도 나는 길을 걸으면서 찬양을 많이 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를 부르며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화음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길을 알려주었던 어른이었다. 그는 바로 뒤에 와서 여태 내가 불렀던 찬송의 음을 흥얼거렸다. 그의 흥얼거림에 나는 마저 찬송을 끝냈고 그는 엄지 척을 하고 힘차게 내 앞으로 걸어갔다.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고 높지는 않았지만 힘들었다. 그렇게 세브라요 알베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어른도 도착해서 다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알베에는 관리인이 없었다. 하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관리인은 17시에 온다는 글을 붙여 놓았다. 그와 나는 각자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알베에 들어오면 해야 할 일을 했다.
17시가 되자 관리인이 왔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는 자기 집으로 갔다. 저녁 식사를 해야 했기에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식당은 7km를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종이 한 장을 준다. 종이에는 전화를 하면 배달을 해준다는 슈퍼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나는 순례길을 떠나면서 전화를 일시정지시켰다. 그리고 해외 유심을 받아서 데이터만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이 도착해보니 국내 서보다 더 저렴하게 통화까지 되는 유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통화를 하지 못하니 전화번호는 그림의 떡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그 어른이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나는 스페인 말을 모르니 어떡하랴 생각나는 단어는 ‘알베르게’였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나는 몇 번이고 알베르게만 외쳤던 것 같다.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으니 그 어른이 다시 전화를 한다. 하지만 그 어른도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은 후 헛웃음을 지었다.
서로 난감한 얼굴을 지으며 침대로 돌아가는데 내 어깨를 건드린다. 저녁은 어떻게 하냐며 묻는다. 나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금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간 그는 자기 저녁 식사를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번은 거절해야 예의인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하니 그는 작은 가방을 보여주면서 넉넉하니 함께 먹자라며 손짓을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서 그의 저녁식사를 나누어 먹었다. 그의 이름은 프란즈였고 오스트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도 안 되면 통역기를 돌려서 대화를 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이제 자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프란즈 씨가 나를 깨웠다. 나가보니 웬 트럭이 알베 앞에 도착해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조수석 뒤의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그 차는 이동식 슈퍼였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빵, 과일, 우유, 음료수 등 식사대용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나는 내일 아침과 점심거리를 구입했다. 그리고 프란즈 씨에게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내가 사드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잠시 뒤 그가 과일과 빵을 구입했다. 내가 두 손을 모아서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니 웃으면서 그러라며 손짓으로 답을 했다.
처음 만난 순례자끼리 자기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경험은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나는 프란즈 씨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에게 이런 말을 통역기를 통해서 전달했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식은 생명이다. 당신은 오늘 나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는 이 글을 읽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 성도였다.
산탄데르의 잠 못 이루는 밤에 이어 세브라요의 잠 못 이루는 따뜻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