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세브라요에서 폴라 데 시에로(34.43km)
2019년 6월 10일(월)
아침에 눈을 뜨면 침낭을 다시 배낭에 넣고 짐을 싸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이 일을 19일째 아무 탈 없이 하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아직 동트기 전인지 바깥은 어두웠다.
어제 구입한 바게트 빵과 남은 우유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쌀쌀했다. 2시간을 걸으면서 손을 바꿔가며 주머니에 넣을 정도로 추웠다. 마침 문을 연 바르가 있어서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추운 몸을 녹였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따뜻함이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
바르를 나서니 앞에 프란즈 씨가 걷고 있었다. 아침 해가 밝아오고 9시쯤 되니 차가운 공기는 물러갔다. 프란즈 씨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젊은 나이지만 힘들었다. 그래도 나름 걷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여기에 와서 내가 그리 잘 걷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30여분을 따라가니 프란즈 씨가 사진을 찍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히 웃으며 손짓을 했다. 그와 2km 정도를 걸으면서 서울에 관한 이야기와 자녀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늘 걷는 길은 북쪽 길과 프리미티보 길로 나눠지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어 있다. 북쪽 길을 걷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히온으로 가고 프리미티보 길을 걷는 사람은 오비에도 방향으로 가야 했다.
프란즈 씨는 어제저녁 자기 무릎을 가리키며 프리미티보 길은 무리라고 했다. 갈림길에 도착하기 전 고풍스러운 조그만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다리 중간쯤 가서 서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카메라에 나의 모습을 담았다. 그가 보여준 사진은 전문가의 솜씨였다. 내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갈림길에서 프란즈 씨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미스터 박, 너와 너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순례길도 잘 걷기를 바랍니다” 한마디 한마디 진심을 담아 말하는 그에게 나도 동일한 말로 화답했다.
갈림길에서 나는 길 친구가 되었던 루비히드를 다시 만났다. 그와 동행했던 순례자와 함께 사진을 찍고 나와 루비히드는 오비에도로 프란즈 씨와 그 순례자는 히온으로 각자의 순례길을 다시 출발했다.
갈림길을 지난 순례길은 캄파 고개를 넘어야 했다. 지도를 보니 두 개의 길로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오르막으로 넘는 길과 평탄한 수도원을 끼고 가다 급격한 오르막을 오르는 길이었다.
수도원 옆에는 알베가 있었다. 혹시 몰라 수도원을 끼고도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알베 앞에 가보니 다 허물어져 가는 흉가와 같았다. 폴라 데 시에로에서 만난 루비히드는 계속되는 오르막 길로 왔다고 했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긴 담을 따라 수도원의 철문을 지나자 길은 급격하게 오르막으로 변했다.
산 중턱까지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니 아주 조그만 마을이 나왔고 마을 입구에서 주민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인사를 받아주면서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운다. 그 주민은 카미노 길은 멀리 돌아가니 자신이 아는 길을 알려주겠다며 숲을 가리켰다.
길이 없을 것 같은데 주민 말이니 믿고 10여분을 갔지만 길은 나오지 않았다. 왔던 길을 가다 보니 왼쪽으로 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보였다. 왕래한 흔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민이 알려주었으니 믿고 갔다.
아직 마르지 않은 아침 이슬과 머리 위로 쳐진 거미줄은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렇게 30여분을 길도 아닌 하지만 길은 분명한 오르막길을 올랐다.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없는 숲이어서 무조건 산 정상을 향해 난 길의 흔적을 찾았다. 근 한 시간 숲을 헤치고 포장된 길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길을 헤매다 마침내 길을 찾은 나그네의 심정을 알게 해 주었다.
캄파 고개 정상에 올라가니 이제는 본격적인 내륙 길임을 알려주듯이 높은 봉우리들이 앞으로 보였다. 바다를 보려면 묵시아를 가야 볼 수 있었다. 책과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는 1146m의 팔로봉과 그 외에도 높은 봉우리들이 프리미티보 길에 가득하다고 했다. 캄파 고개는 그 산들을 넘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통과하는 첫 단계인 것 같았다.
문을 닫은 주유소와 식당의 흔적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정상에는 자전거를 타는 일단의 무리들이 정상에 온 기쁨을 누리면서 사라졌다. 정상에서 내려온 길은 넓은 평야지대로 이어졌다.
지금껏 봐왔던 풍경처럼 마을이 있으면 넓은 초지가 있었고 그 초지에는 소 아니면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추웠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뜨거운 정오의 햇살로 내 몸을 땀범벅이로 만들고 있었다.
베가 데 사리에구를 막 벗어나는 길에 바르가 눈에 띄었다. 산을 넘느라 배도 고팠고 무엇보다도 시원한 콜라를 먹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들어갔다. 날은 덥고 입맛은 없었다 하지만 걷기 위해서 풍성해 보이는 야채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해서 바깥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동안 신호가 없던 왼쪽 발바닥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이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물집 잡혔던 자리 밑으로 작은 물집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알베에 도착하면 처리하기로 하고 밴드로 응급 처지를 한 후 식사를 했다. 막상 식사를 했지만 정오가 지난 햇볕 아래에서 걷는 게 싫었는지 발이 떼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알베까지 가야지 잠을 잘 수 있기에 얼음이 남은 컵에 물을 받아먹고 출발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보며 지루하리만큼 걸었다. 마을 입구 주택에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그림은 한쪽 벽을 푸른 초지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로 채워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 말이 어떤 마을인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 아이디어이인지 참 참신하다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하늘을 보니 내가 불쌍해서인지 구름이 몰려와서 파란 하늘을 덮어주었다. 하늘을 향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걸었다.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누군가 봤으면 한참을 쳐다봤을 것이다.
지루함을 이기는 것이 인생에 필요하다고 했지만 현실은 정말 힘들었다. 하늘의 구름이 없었다면 오늘도 잘 익은 통닭구이가 되었을 것이니 그걸로 만족하며 걸었지만 참 힘든 시간이었다.
한적한 마을이 끝나면서 공사장으로 변한 큰 건물이 나왔다. 폴라 데 시에로에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공사장을 벗어난 길은 사람이 살지 않아서 폐허가 된 주택가를 가로질렀다. 언제 알베가 나오나 하는 조바심을 안고 화살표를 따라갔다.
사람들의 왕래가 번잡한 곳으로 들어오니 안심이 되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알베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마침 나이 지긋한 어른이 운전하는 차가 주차하기에 알베를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길 건너편을 보라고 한다. 순례자들이 보였고 그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알베가 있다고 했다. 지도에 있는 것처럼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알베는 건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최신식이었다. 여태까지 자본 공립 알베 중에 가장 좋았다.
저녁을 먹고 왼쪽 발바닥을 살펴보았다. 물집이 생겼고 하던 방식대로 명주실을 물집에 넣었다. 저녁거리를 같이 사러 갔던 체코 여성이 자기 구급약품이 있다며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는 웃으면서 나도 구급약품이 있고 이게 한국군인 스타일이라며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발바닥을 보면서 발이 참 수고한다는 생각을 했다. 400km 넘게 걸은 발 치고는 이 정도면 상처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만족하다고 할 때 한문은 滿足이다. 왜 하필이면 발 족(足)일까? 한문 뜻풀이를 잘하시던 목사님께 들은 말이다. 족(足)은 두 개의 한문이 결합된 글자다. 위에 입 구(口)가 있고 아래에 그칠지(止)가 있다. 입을 그치게 하는 게 발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 말씀을 듣고 이따금씩 발과 발바닥을 쳐다보면서 나는 입을 다무는 연습을 했었다.
그 옛날은 발이 없으면 어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말을 하고 싶으면 뭘 보던지, 듣던 지 해야 했다.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동을 해야 했고 발의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놀리는 입을 향해 입 다물어 할 수 있는 신체기관이 발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발과 발바닥을 주물러 주었다.
다행히 내일은 오전 중에 순례길이 끝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