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수고와 의미 있는 하루

20일: 폴라 데 시에로에서 오비에도(18.58km)

by 박동식

2019년 6월 11일(화)


폴라 데 시에로 알베에 붙어있는 안내문. 대한민국 짱~~

알베의 하루는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의 시간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아무리 조용히 움직인다고 해도 사람의 움직임에 사람은 반응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6시가 못되어서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어제 사둔 냉동 볶음밥으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아침거리는 어제와 같이 쌀쌀했다. 좀 걷다가 문을 연 바르가 있으면 어제처럼 커피를 마셔야지 하면서 출발했다.

폴라 데 시에로를 벗어나기 전 비가 내렸다. 날은 춥고 비까지 내리니 급하게 문을 연 식당이나 바르가 있는지를 찾았다. 마침 내 앞에 가던 순례자들이 어디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우의를 털고 들어오는 나를 향해 “올라~~”한다. 나도 인사를 하며 그들이 먹고 있던 큰 잔을 가리키며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먹는 동안 비는 잠잠해졌다. 우의를 쓰고 다시 길 위에 섰다.


도시를 벗어나니 초록색 대지가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었고 그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는 길이 순례길이었다. 마침 다리를 건너는데 하늘에 일곱 가지 색이 선명한 무지개가 떴다.

20190611_080959.jpg 비가 엄청 내릴 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 시절에는 종종 무지개를 봤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무지개를 본 적이 언제인지 싶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 무지개를 찍었다. 핸드폰을 넣자 하늘에서 후드득 소리를 내며 다시 비가 내렸다. 이날 나는 무려 여섯 번 무지개를 봤다. 내 평생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듯싶다.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를 네 번까지 하다가 그 뒤로는 벗지 않았다. 몸을 보온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섯 번 무지개를 본 것을 행운이라고 해야할까 불행이라고 해야할까?

비는 전투화가 다 젖을 정도로 무섭게 내리기도 했고 보슬보슬 내리기도 했다. 내리는 비를 우의도 감당하지 못했는지 옷이 젖었고 잠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니 4일 연속 비를 맞고 걸었던 때가 생각이 나서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오늘 걷는 구간은 도로와 인접해서 걷는 구간이었다. 시골길도 있었지만 오비에도에 초입에서는 고가도로 밑으로 난 하천 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공립 알베까지 가는 구간은 온전히 시내를 관통해서 걸었다. 비도 오락가락하고 차도를 따라 걸어서 인지 또 시간도 짧아서인지 이날의 기억은 무지개를 여섯 번 봤다는 기억이 전부다.

아! 하나 있다. 코요토에서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숲 속으로 향했다. 지도에 나온 순례길을 봐도 다시 도로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뭔가 있겠지 하면서 숲으로 향했다. 숲은 공원이었고 공원에서 도로로 나오는 길은 중세 다리가 있었다.

비가 오는 시간 중세에 지어진 다리는 인적도 없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다리는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의 외로움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었다. 도로에서 벗어나 있고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니 순례자들이라도 역사가 묻어 있는 다리를 보기 원했나 싶었다.



그렇게 오비에도의 초입에 도착하니 비가 멎었다. 비가 멎은 도심지를 우의를 입고 걸으려고 하니 조금은 이상했다. 하늘에 해까지 떴는데 말이다. 그래서 우의를 벗고 도심지를 걸었다. 알베에 도착하니 문 여는 시간이 16시였다.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3시간 30분을 어디서 보내나? 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오른쪽 사거리 건너편에 패스트푸드점이 보였다. 그곳에 들어가서 3.65유로 음식을 먹으면서 3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우의를 입고 걸었다. 도심지를 걷는데 비가 또 왔다. 오전 날씨는 정말 변덕이 심했다.

알베 앞에 가니 5명의 순례자들이 있었다. 16시까지 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문이 얼리겠거니 했는데 안에서 사람이 나오면서 문이 열렸다. 그 사람은 알베 앞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었고 우리는 알베 앞에 가서 관리인을 기다렸다.

이곳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였다. 16시가 되자 젊은 남자가 가방을 메고 와서 문을 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던 그는 우리를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비를 맞아서 볼 품 없던 순례자들은 순서대로 그를 따라 들어가서 수속을 끝냈다.


어제오늘 아침의 한기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리고 프리미티보 고지대를 걸을 생각을 하니 따뜻한 옷이 필요했다.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나는 스포츠용품을 파는 곳을 검색했다. 다행히 알베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막상 매장에 도착해보니 영업을 하지 않았다. 다시 검색을 해보니 까르푸가 있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가는 방법도 알려주니 가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까르푸는 우리나라 대형마트처럼 컸다. 하지만 왠지 사람이 없었다. 이상하다 하는 마음으로 안에 들어가니 문을 연 소형 매장은 있었지만 까르푸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내일이 오비에도 축제라며 일찍 영업이 끝났다는 것이다. 어떡하랴 축제라고 하는데. 나는 터벅터벅 다시 버스를 타고 마트에서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 거리를 사서 알베로 왔다.

20190611_173621.jpg 오비에도 알베의 오후. 변덕스러운 하늘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햇살이 너무 따뜻했다.

내 침대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은 빨래가 있었다. 세 시간을 버틴 패스트푸드점에서 폴라 데 시에로에서 같이 출발한 두 명의 프랑스 사람을 만났었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샤워를 끝내고 빨래를 하려고 하는데 마침 세탁기를 돌리려고 그 두 사람이 빨랫감을 안고 세탁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함께 빨래를 하자고 했다. 돈이 없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면서 내 빨래를 가져갔다. 짧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옷을 사기 위해서 알베를 나왔었다. 건조까지 해놓은 그들의 성의에 나도 뭔가를 해주어야겠다는 마음에 마트에서 사 온 스틱커피의 일부를 그들의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내일부터 새로운 길을 걷는다. 어제 넘은 고개는 높은 축에도 끼지 못하는 높은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 들어온 순례자들을 보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나이 지긋한 순례자가 높은 산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자신도 갈 수 있다고 해서 가는 것이니 젊은 너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팔십이 넘은 할아버지부터 부모님과 함께 걷는 십 대까지 연령도 다양했고 인종도 다양했다. 다양한 만큼 걷는 이유도 다양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 재미로, 걷는 걸 좋아해서 이 세 가지에 웬만한 이유는 다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신앙을 위해서 걷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순례자가 있다.


라라베추에서 만난 순례자였다. 순례자는 두 명이었다. 흰머리와 흰 수염이 인상적이었던 한분 때문이라도 두 순례자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프랑스 사람이었고 둘은 프랑스 북부에서부터 순례에 나섰다고 했다. 혜원 씨가 나이를 물어봤을 때 놀랬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칠십이 훨씬 넘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조심스레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데 왜 산티아고 길을 걷냐고 물었다. 한분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나머지 하나는 신앙을 위해서라고 했다.

두 사람은 가톨릭 신자였고 오래된 친구였다. 자신의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었다. 나는 거기에 찍힌 세요를 보면서 그리고 걸어온 거리가 800km가 넘었다는 말에 두 번 놀랬다. 그들은 수첩에 적힌 것도 보여주었다. 프랑스어여서 내용을 물었더니 순례길을 떠나는 자신에게 지인들이 부탁한 기도 요청이라고 했다. 두 순례자는 길 위에서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들의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나도 힘든 순례길이었다. 그런데 걸어온 거리만큼 남은 거리를 그 나이에 걷는다는데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산티아고까지 1600km의 거리를 누군가를 위한 기도로 채우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나도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며 당신들의 노정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들도 반갑다며 나에게도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20190611_203133.jpg 20일 걸은 흔적.

이 날 나도 마음먹으면 외국에서도 원하는 곳을 갈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했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의 힘이 대단함도 느꼈다. 어리숙한 영어지만 그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들 때문에 또 놀랜 하루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나름 기분 좋은 하루였다. 그리고 힘든 여정을 앞에 두고 생전 처음 보는 이들에게 호의를 받고 격려를 받은 날이었다. 보람찬 하루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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