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티보가 나를 부르다

17일: 야네스에서 산 에스데반 데 레체(38.4km)

by 박동식

2019년 6월 8일(토)

이층 침대 위층에서의 잠은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낡은 침대는 밑에 자는 사람의 움직임에 위층까지 움직였다. 더군다나 129년 된 알베 바닥은 나무였다. 낮에는 몰랐지만 저녁과 새벽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여기 사람이 있다며 나무들은 소리를 냈다. 피곤하니 이런 소리 무시하고 잘법한데 조금 걸었다고 몸이 이렇게 예민할 줄 몰랐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를 보니 35km였다. 일찍 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알베에서는 비닐봉지에 아침을 넣어주었다. 해가 뜨기 전 야네스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쌀쌀했다. 두툼한 옷을 입고 앞에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부러웠다. 걸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바람 부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택가를 벗어난 길 모퉁이의 커다란 주차장에는 캠핑카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군에 있을 때 휴가를 가면 군 휴양소를 이용했었다. 여름이면 객실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백사장에 카라반들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아이들이 나중에 저곳에서 자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금껏 지키지 못했다.

전곡에 근무할 때도 캠핑족들의 성지라고 하는 한탄강 캠핑장에도 카라반이 있었는데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인지 캠핑카를 보면 언젠가는 저 차를 타고 여행을 꼭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캠핑카를 보면서 다시 다짐을 하면서 걸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종종 봤던 캠핑장에는 다양한 캠핑카가 많았다.

순례길은 셀로리오의 해변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등 뒤로 떠오르는 태양을 봤다. 구름에 가려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순례자들은 해를 보면서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침 바다의 바람과 왼쪽으로 보이는 평온한 초지는 걷는 사람의 마음에 “힘들어도 걸으니 여유롭고 좋지” 하는 것 같았다. 조금 가니 평온한 초지에서 풀을 뜯는 소도 보였다. 마트에서 본 문구가 생각이 났다. ‘해풍 맞고 자란 섬초’ 이 소를 잡으면 이렇게 광고하겠지. ‘해풍 맞고 자란 소’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한참 걷다 뒤를 봤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추고 있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걸어보자.


언덕을 넘어서면서 순례길은 내륙으로 이어졌다. 나베스, 누에바를 지나는 길은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높낮이였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코미야스 오는 길에서 만났고 세르디오 식당에서 만났던 영국인이 앞에 가고 있었다. 나를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 묵묵히 길을 걸었다. 뒤를 돌아본 그가 “올라”하면서 인사를 한다. 난 그가 나처럼 황색 피부였기에 중국인인 줄 알았다. 그는 싱가포르 태생의 영국인이었다. 그는 코미야스 알베에서 내가 나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잤냐고 물었고 그 후 행적에 대해서 물었다.

영국인 알렉스. 정말 잘 걷는 친구였다.

코미야스에서는 호텔에서 잤고 그다음도 알베에 자리가 없어서 엘 파렐에서 잤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예약을 하느라 바빴다며 투덜댔다. 그는 알렉스라고 자신을 밝히면서 내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외국 사람이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의 핸드폰으로 그리고 내 핸드폰으로 서로를 찍고 다시 걸었다. 그는 내일까지만 걷고 영국으로 간다며 산티아고까지 가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프리미티보 길로 가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어제저녁 내 옆 침대에 잤던 스페인 순례자가 있었다. 그는 순례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처음 길을 걷는 나에게 북쪽 길로만 가지 말고 프리미티보 길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구입한 책의 저자도 북쪽 길에서 프리미티보 길을 걸었다. 책으로만 읽었기에 프리미티보 길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했다. 그 스페인 순례자는 책을 보여주면서 높은 산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렵지만은 않으니 한번 걷는 것 꼭 프리미티보 길로 가라고 강권했다. 그 사람 말로는 프리미티보 길을 걷지 않으면 순례자가 아니라는 말에 나는 “yes”했다.

그런데 알렉스도 자신도 그 길 걸어봤다며 정말 멋있는 길이라고 잘한 결정이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는 내 스틱을 가리키며 스틱이 필요할거라 했다. 나는 저렴하게 구입한 배경을 이야기해주었다.

얼마 못 가서 걷는 속도 때문에 서로 잘 걸으라는 말을 한 뒤 나는 잠시 쉬었다.



노란색 화살표는 군데군데 잘 보였다. 하지만 도로에서 언덕이나 숲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화살표가 맞는지를 물었다. 묻는 방식은 간단하다. 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산티아고” 했다. 길이 맞으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살표 방향을 내가 잘못 알고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내게 다가와서 자세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나처럼 길을 묻는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이렇게 길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들의 친절함에 나는 어색한 스페인 말로 “무차스 그라시아스”로 내 마음을 표했다.


그렇게 길을 걸어서 관광도시인 리바데세야까지 왔다. 도시는 컸다. 그 도시를 지나야 오늘 목적지인 산 에스데반 데 레체였다. 도시는 컸지만 알베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고 리바데세야 도심지를 통과하면서 마트와 슈퍼가 있었고 그곳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입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일이 주일이니 작은 마을의 슈퍼들은 다 문을 닫을 것이란 것을 알았지만 이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도시를 벗어난 순례길은 적당한 기울기의 산으로 이어졌다. 한 시간 정도를 인적이 없는 길을 걸었고 저 멀리 조그만 성당이 보였다. 지도를 보니 그 성당 근처에 알베가 있었다. 하지만 저 멀리 보였기에 알베에 도착하니 16시가 넘었다. 하늘이 흐려서 망정이었지 아니면 난 잘 익은 통닭이 되었을 것이다.


관리인이 없어서 조금 기다렸더니 남자 셋이서 무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하면서 들어왔다. 그중 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올라” 하면서 인사를 했다. 관리인이었다. 늘 하는 것처럼 순례자 여권과 초록색 한국 여권을 제출했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관리인은 손짓으로 나를 기다리라고 하더니 잠시 뒤에 한 여성을 데리고 왔다. 그 여성은 나에게 영어로 이야기할 줄 아냐고 물었고 나는 손으로 조금이라는 표시를 했다.

관리인은 열심히 스페인어로 여성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다. 여성은 나에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긴 문장이어서 짧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남성이 한 이야기는 이랬다.

여기에 오는 각 나라 순례자들을 통해서 그 나라의 돈을 수집하고 있고 한국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천 원권 지폐를 꺼냈다. 그랬더니 내가 지불한 돈에서 1유로를 내 손에 쥐어주면서 “무차스 그라시아스”를 연발했다. 외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하면서 속으로 “무차스 그라시아스”를 연발했다. 3백 원 조금 넘는 차이인데 사람 마음이 이렇다.

마트에서 2개묶음 세일해서 구입한 컵라면.

그런데 이곳에는 성당과 알베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알베 관리인이 해주는 음식이 있는데 조금 비쌌다. 나는 배낭에 있는 컵라면과 얼마 남지 않은 바게트 빵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오늘 걸으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마을을 지날 때마다 나이 든 어른들은 길을 가르쳐 주면서도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운전자나 조수석에 앉은 사람들도 고개를 뒤로 하면서까지 쳐다보고 갔다. 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휴대폰으로 봐도 얼굴은 검게 그을렸을 뿐 이상이 없었다.

알베에 들어와서 나는 아~~~ 했다. 동양인은 나 혼자. 길을 걸을 때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도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그러니 여행을 해보지 않은 나이 든 어른들에게는 동양인을 보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도 지나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왜소한 남자였으니 그들 눈에 내가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군에서도 이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춘천에 근무할 때였다. 출근길이 약간 늦었다. 서둘러 차를 운전해 가는데 신호등이 찰나의 순간에 빨간색 신호로 바뀌었다. 춘천댐 근처에 있는 부대라서 길은 한가했고 차도 없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얼마나 빨리 간다고 하면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회의 시간에 늦지 않게 넉넉히 부대에 도착했다.

회의가 끝난 후 인사처 사무실에 들러서 업무협조를 했다. 일이 끝나자 부관 장교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이라서 다르시네요. 저도 빨간불이었지만 늦어서 갈까 했는데 목사님 차 보고 그냥 있었습니다” 만약 신호를 무시했다면 나에 대한 소문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뒷덜미가 싸늘했었다.


크리스천의 삶도 이런 것 같다. 안디옥 지방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워낙 특이했었다. 살아있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세상에 죄수로 죽은 예수라는 사람의 말과 그의 삶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으니 얼마나 특이했을까? 하루 이틀 그들의 삶을 지켜보던 안디옥 사람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별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 믿는 사람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 아니다. 독특한 믿음의 삶을 지켜보고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러니 크리스천이란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 이름인가?

누군가 내 삶을 보고 “그럼 그렇지 너도 나와 다른 것 없네.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일요일에 놀러 가고 너는 교회 가는 것뿐이네”라는 말을 듣는다면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까? 유심히 나를 보던 스페인 사람들의 눈에서 나는 누군가는 반드시 나를 보고 있다는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보면 힘이 든다. 이런 멋진 풍경은 고생에 대한 보상인것 같다.

일기를 쓰고 침대가 있는 방에 들어갔는데 어제 나에게 프리미티보 길을 알려준 스페인 순례자가 바로 왼쪽 침대에 있었다. 서로 인사를 했다. 그가 내 다리 쪽 건너편에 있는 젊은 사람과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데 스페인 말이 저렇게 시끄럽나 싶었다. 표정은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때는 웃기도 하는 게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대화 한가운데에 있는 나에게 오른쪽에 있던 할아버지께서 짧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라며 무언가를 꺼낸다.


익숙한 우리나라 제품의 태블릿 PC였다. 전원을 켜면서 나에게 옆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뭐지 하면서 가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각종 정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걷고 있는 북쪽 길에서 내륙으로 꺾어지는 길을 보여주면서 이 길이 프리미티보 길이라고 알려주었다. 오늘 두 번째로 나에게 프리미티보 길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길을 알려주는 손은 산티아고에서 묵시아를 거쳐 피스테라에서 멈추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original route”하신다.


이날 저녁 나는 순례길 여정을 프리미티보 길로 산티아고를 거쳐 묵시아에서 피스테라까지 연장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날의 결정은 정말 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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