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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Oct 11. 2022

당신은 누구입니까?

트와이스의 “What is Love”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저 기운차고 발랄한 아이돌 노래로 느껴졌다. 그러다 우연하게 제목을 보니 아이돌 노래 제목으로는 제법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사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철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제목 자체만으로도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영화 <후아유>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에 빠졌다. 영화는 형태(조승우)와 인주(이나영)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일반적인 멜로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제목 탓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공허하고 본질적인 고민을 했다. 


사람은 자신을 ‘사회적인 나’로 규정하고 소개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흔히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하고 있다’거나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 등 속한 집단과 사회적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 소개는 대게 오래 남는 첫인상이 된다. ‘어느 학교’나 ‘무슨 일’ 등을 얘기할 때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요소들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들을 치열하게 살게끔 만드는 동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이 어느 집단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해서 존재가 부정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때 나를 구성하는 사회적인 것들을 채반으로 거른 뒤 남아있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여유롭다’는 말이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시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거짓말 같지만 현실이다. 여유 속에서 삶의 의미와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여유 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다. 1년간 책 1권을 읽은 성인의 비율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는 ‘2021 국민독서실태’의 발표나 얼마 전 ‘심심한 사과’에 대해 뜨겁게 논의되었던 문해력 문제도 그 연장선에 있다.  


연 초에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있었다. 특기를 말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남들보다 조금씩은 뛰어난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탓이다. 그만큼 나를 돌아보고 살지 않았다. 치열하게 살아야 평범해질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과연 요즘 2030세대에게 나를 돌아보고 정말 내가 누구인지를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형이상학적 고민은 경쟁 사회에서 가치 없고 불필요한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


친한 형과 대외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형은 활동을 단지 스펙 쌓기라고 생각하기보단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했다는 말이 깊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 대외활동의 본질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의도치 않았지만 나 스스로도 자연스레 그래왔음을 깨달았다. 정말 기자가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하게 된 학보사 활동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나와 맞지 않음을 강렬하게 느꼈지만 동시에 글쓰기에 흥미를 느꼈다. 영화제에서 봉사를 하며 영화가 풍기는 냄새와 분위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며 마냥 그렇진 않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교육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찌 보면 삶이란 나를 찾아가는 긴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가. 나는 나를 얼마나 아는가? 정말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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