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4살이 되기까지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없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가지고 생활했고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주는 일, 학보사 활동과 대외활동 등으로 들어오는 돈을 생활비에 보태 사용했다. 아르바이트라고 해봤자 단기 서빙 알바, 축제 알바 등 단기 위주로 해왔다. 혹은 소위 ‘꿀알바’라고 하는 편한 일자리들을 찾았다.
당시의 나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 급여를 제때 주지도 않으면서 시답지 않은 일들로 화를 내는 사장, 소리치거나 중얼거리며 욕을 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미디어나 소문으로만 듣던 일들이 나에게 금방이라도 닥칠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들을 위해 구직 사이트를 들어갔다가도 마음속으로 온갖 핑계를 대며 회피했다. 곤란하고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기 싫었던 것이다.
더불어 나의 노동가치가 최저시급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아르바이트는 돈을 시간으로 사는 것 같았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시간을 팔아 돈을 얻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 나에게 노동은 유의미한 것을 배우는 수단이어야만 했다.
군대는 이런 어리석고 오만한 새내기 대학생의 생각을 없애주었다. 군 생활을 하며 욕은 욕대로 먹어봤기에 타인의 화나 욕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으며 나의 노동가치가 최저시급만 돼도 감사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커져 버린 소비와 욕망을 감당하기 위해선 아르바이트가 불가피했다. 그렇게 지난해, 처음으로 자영업자와 근로계약서를 쓰고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수제버거를 파는 프랜차이즈였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어 선택했다. 하지만 음식점 알바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주방은 세 명에서 운영되었는데 주문이 들어오면 한 명은 패티를 굽고 한 명은 빵을 구운 뒤 그 위에 야채와 소스를 올린다. 햄버거가 만들어지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튀김과 음료를 준비하고 햄버거가 완성되면 포장을 해 내보낸다. 2평 남짓 되는 좁은 주방에 위치한 세 명은 주문이 들어오면 반자동적으로 반복 노동을 수행한다. 컨베이어 벨트 없는 포디즘이다.
끼니 시간대에 원하는 햄버거를 만들어 먹거나 튀기고 남은 감자튀김을 먹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또한 감사하게도 사장님 또한 좋은 분이었다. 그럼에도 단점이 압도적이었다. 먼저 일이 고됐으나 만족감은 없었다. 일하는 내내 피부 위에 기름이 층을 이룬 것 같은 찝찝함이 계속해서 맴돌며 온몸에 햄버거 냄새가 진동했다. “배달의 민족 주문!” 하고 울리는 반복된 소음은 환청을 듣게 했다. 홀과 배달 주문이 쌓여갈 때쯤이면 꼭 전화로 컴플레인이 하나씩 들어왔다. 다 내던지고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음식점은 끼니 시간대 배고픈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주문에 문제가 생기거나 속도가 지체될 경우 컴플레인을 받기 쉬운 일이었다.
단순 반복 작업은 개인의 쓸모를 상쇄시킨다. 또한 스스로를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다. 노동이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바로 “배달의 민족”이 만들어낸 불합리한 시스템이었다. 배달의 민족이 없던 시절, 우리는 전단지나 전화번호부를 통해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배달의 민족이 생긴 뒤로는 거의 대부분 해당 앱을 이용해야만 주문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자영업자는 분명 자본가이지만 그 위에 새로운 자본가인 배달의 민족이 올라서면서 음식 시장은 기이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음식점들은 좋은 별점을 얻기 위해 강제적인 경쟁에 놓였다. 자체 배달 시스템인 맥딜리버리가 있는 맥도날드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가게가 이에 포함되었다.
자본가, 즉 가게의 사장 또한 별점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하며 이는 아르바이트생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내가 근무했던 수제버거 집의 경우 아르바이트생과 사장님이 있는 단톡방이 있었다. 사장님은 별점 1개짜리 댓글이 달리면 단톡방에 공유해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물론 앞으로 더 잘하자는 의미와 실수를 줄이기 위한 시도였지만 개인에게 분명한 부담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배달의 민족이 만든 괴이한 시스템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두 번째로 한 아르바이트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서비스직 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갑게 인사하고 음료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손님으로서 갈 땐 카페의 분위기가 여유로워 보였지만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처음에만 느낀 부분이었고 적응이 되자 목소리도 상황에 맞게 점차 변했으며 주문이 많아도 여유롭게 제조할 수 있었다. 해당 아르바이트는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기 아쉬웠을 정도로 장점이 많았다.
먼저 나는 커피에 열광한다.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커피 관련 수업을 들으며 한국에 있는 커피 농장을 가 볼 정도로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커피콩을 보고 커피 냄새를 맡으며 일을 하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또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멀리서 지켜보는 일도 재밌었다. 직접 대화해 보진 않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음식점과 달리 카페는 배고픈 손님보단 음료를 마시며 공부를 하거나 여유롭게 대화를 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때문에 음료 나오는 속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진상 손님 또한 거의 없었다. 또한 배달의 민족 앱을 사용하지 않는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에 배달과 평점에 대한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매장으로 걸려오는 전화에는 컴플레인이 거의 없었다. 여유로운 시간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점장님 또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친절했다. 근무 때마다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무료 음료도 장점이었다.
누군가는 성인이 되자마자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어느 정도의 용돈을 받아 생활할 수 있었던 나는 오만하고 게으른 생각으로 현실을 회피하고 안락함을 누려왔었다. 아르바이트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한다. 두 아르바이트는 그간 가지고 있던 두려움을 깨고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끙끙 앓는 두려움은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힘들었던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아르바이트를 찾을 수 있었고 자신 있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며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경험이 쌓이다 보면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환경을 향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아르바이트들은 내 안에 있던 오만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