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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Feb 16. 2020

<스스로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앤드리아는 운이 좋게도, ‘런웨이’라는 패션 매거진의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가 된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세련되었고, 감각적이고, 패셔너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앤드리아는 그저 평범하다 못해 촌스럽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앤드리아. 자신을 에밀리라고 부르는 미란다에게 소신껏 스스로의 이름을 말한다.
마녀, 악마라고 불리는 미란다. 같이 일하면서 앤드리아는 그녀의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업무를 해야 하고, 힘든 일도 다 감내해가며 일을 해야 하지만, 자신의 꿈인 저널리스트를 위해서 낯선 곳에 불시착한 환경 속을 다 받아들이고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다. 저널리스트가 된다는 것, 그것이 초심이고, 새로운 환경에서 예상치도 못한 일을 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이며, 그녀는 그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일과 사람에 지쳐 남자친구에게 한탄하는 앤드리아

  

   하지만 어느 새 그녀가 욕하던 세련되고 감각적인 모습의 회사 사람들처럼, 그녀 자신도 그러한 모습으로 점점 변해간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많이 꾸며졌으며, 어딜 가나 눈에 띈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잘 하기 시작하며, 미란다의 눈에도 꽤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자신을 꾸미기 시작한 앤드리아


동료들도 인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일부, 혹은 전부가 그 일이 되어버리는 과정이 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건 어딜 가든 진리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노력이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그만 두어야 할 때 그만 두는 것도 가장 현명한 것이다.     


   앤드리아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미란다는 그러한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파리에까지 데려갔으며, 미란다는 어느 정도 화려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을 하는 것처럼 풍겨진다. 그리고 이전의 촌스러운 모습은 온대간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 마음 한구석에 있는 사람에 대한 따스함은 살아있었는지, 미란다가 어떠한 곤경에 처했을 때, 그녀는 미란다에게 귀띔을 해 주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 자신의 진심을 미란다에게 알게 모르게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앤드리아의 행동에 미란다는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차를 타며 어떠한 행사 자리에 가며 대화를 한다.     


귀띔해주는 앤드리아.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말하는 미란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삶이 자신의 삶이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앤드리아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직시하며 그 상태로 핸드폰을 버리고 유유히 떠난다.     


   어느 때에나 해야 되고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타이밍이든 자기 자신이 선택한 것이며, 그것에 대하여 비난할 필요도 없고 판단할 필요조차 없다. 일은 그런 것이다. 그저 드라마같이 어떠한 이야기의 형태로 삶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일 뿐, 그것 자체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리고 앤드리아는 반짝이는 삶의 상황을 버리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결심한다. 누군가가 원하는 화려하고 값비싼 삶의 상황을 버리고 말이다.     

반짝이는 삶의 상황을 버리고 떠나는 앤드리아

   그리고 미란다는 앤드리아가 새로 면접을 보는 회사에게 말한다.     


   “그녀는 나에게 큰 실망을 준 비서이다. 하지만 그녀를 채용하지 않으면 당신은 멍청이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삶의 상황들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통제하지 못하는 기이하고도 급작스러운 상황이 있다.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것이 삶인 것이다.     

   어떠한 주어진 임무를 온전하게 끝마치지 못하더라도 그 상황 속의 자신은 최선을 다한 것일 거다. 그러므로 어떠한 결과이든 스스로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시 했더라면, 이라는 가정법도 할 필요가 없다. 그 때 그 상황 속 자신은 나름대로의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앤드리아 또한 그랬을 것이다. 비록 서툴고, 자신이 알지 못하고 거의 관련성이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맡은 임무이지만, 성장했고, 상처받고, 어눌하고, 완벽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삶에서 어떠한 반짝이는 진주를 발견했듯, 아름답게 존재했을 것이다. 그것이 고통이든 행복이든 간에. 


본래의 모습을 찾은 앤드리아
그리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지만, 본래의 앤드리아를 발견하고 미소짓는 미란다.

가장 삭막할 것 같은 영화가, 어쩌면 가장 따뜻한 분위기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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