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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May 05. 2024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사랑의 다양한 형태, 영화 <챌린저스>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읽으실 때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 어떠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주관적 해석이 담긴 글입니다.      


영화는 두 남자가 테니스를 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타시(젠데이아)가 그 둘을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그녀의 부상이 있는 무릎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의 무릎 속 1자로 새겨진 흉터는 이 영화의 소재인 테니스장의 네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내포된 그녀의 포지션, 관계, 여러 비유적 암시 등은 과연 무엇일까?     

   사랑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모와 자식, 꿈과 우정, 그리고 연인간의 사랑.

   그 형태는 시대를 초월하며 다양한 인종 속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존재한다.       

   영화 ‘챌린저스challengers’는 이러한 사랑의 다양한 형태, 그리고 관계에 대한 비유적으로 제시한다.

      

위에서부터 아트, 타시, 패트릭


   주인공들은 13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그들의 10대 시절 청소년때의 시절로 영화의 시퀀스는 전환된다. 그 속에서 세 남녀, 즉 타시(젠데이아), 아트(마이크 파이스트), 패트릭(조쉬 오코너)은 테니스 대회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셋의 관계는 비로소 시작된다.      

   타시에게 동시에 사랑에 빠진 아트와 패트릭은 밤의 해변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테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타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테니스는 관계야. 선수와 관객간의 관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꼭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셋은 밤 산책을 마친 뒤 아트와 패트릭의 숙소에서 대화를 하다가 스킨십을 하게 되고, 셋이 키스를 하다가 후에는 타시가 중간에서 서로 키스를 하는 아트와 패트릭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신이 진행된다.      

   즉, 타시는 자신의 무릎에 새겨진 흉터처럼, 항상 중간의 포지션에서 그 둘을 조종하는 듯한 위치에서 이 둘의 경기와 같은 ‘관계성’을 지켜보는 인물이다. 언제든 이 둘의 중간에 있으며, 이 셋의 관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마치 심판의 역할을 하며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스킨십을 이어나가던 이 셋의 관계에서 타시는 중지하며 그들에게 말한다. 

“내일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에게 번호를 줄게. 끝내주는 테니스를 보는 게 내 목표거든.”

   즉, 타시는 자신의 꿈과 열망(테니스)에 사랑을 걸며 이 셋의 관계성을 통하여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얼음과 불’이라고 불리는 아트와 패트릭은 테니스 파트너로 궁합이 잘 맞는 것만큼 친구 사이로도 돈독하고 오래 된 사이이다. 

아트와 패트릭

   이 영화에서 이 둘은 내면의 가치로써 비유되는 ‘이성(얼음, 아트)’ ‘본능(불, 패트릭)’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비유적 암시는 결국 경기에서 이겨서 타시와 연인사이의 관계성을 쟁취한 패트릭의 다음과 같은 대사에서 알 수 있다.      

“넌 확률 테니스 치니, 내가 망치길(타시와의 연인 관계)기다리겠지.”     

   즉, 아트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계산하고 곰곰이 숙고하고 생각한다. 미래의 확률을 생각하며, 사랑에 있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이성적으로 다가가는 매끄러운 모양새를 보인다.      

   아트의 이런 성향과 대조되는 패트릭은 본능적인 인물로 묘사가 되는데, 그것은 13년이 지나서 30대가 된 이후에도 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테니스 선수로써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인물, 그리고 타시와 예속관계를 유지하며 항상 타시에게 맞추고 타시보다 낮은 포지션을 유지하는(마치 타시의 팬클럽 회장과 같은) 아트와는 다르게, 타시에게 직접적이고 어쩌면 강압적이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셋의 성격 속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테니스로 대화를 하게 된다. 즉 패트릭이 타시와 섹스를 했다면 아트의 서브 틱(습관)인 라켓을 목 정중앙에 두는 행동을 패트릭에게 요청하게 된다. 결국 패트릭은 아트의 서브 틱을 행동으로 묘사하게 되어서 타시와의 성적 관계를 테니스를 통하여 암묵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이에 타시를 사랑하는 아트는, 패트릭의 바람둥이 성향과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타시를 만나서 패트릭이 타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 타시는 말한다.      


“누가 사랑받고 싶대?(타시)”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아트)”     


   패트릭과 타시는 둘 다 불같은 두 성격으로, 타시는 본인의 경기 전에 패트릭과 심하게 싸우게 되고, 그 영향으로 인하여 타시는 본 경기에서 심한 부상을 당해서 더 이상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무릎에는 1자 모양의 마치 네트와 같은, 중간자, 즉 심판하고 조종하는 자의 역할을 암시하는 흉터가 남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아트는 타시와 재회하게 되는데, 부상을 당한 타시에게 자신의 코치가 되어줄 것을 제시한다. 이에 타시는 아트에게 묻는다.     

“이젠 날 사랑 안 한다고?”     

   그리고 이에 대답하는 아트.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이 둘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가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고, 결혼을 한 뒤에도 이 둘의 관계성, 즉 예속 관계(타시가 조종하고 아트가 조종당하는)를 유지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아트는 언제나 타시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길 원하고, 타시는 자신의 좌절된 테니스라는 꿈을 아트를 통해서 실현시키고자 한다. 승승장구 하던 아트는 어느 순간부터 정체기가 찾아오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타시는, 아트의 승리를 위하여 챌린저급 대회를 나간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아트와 패트릭, 그리고 타시는 재회한다.      

   그리고 또 다른 관계성이 시작된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던 타시는 결국 원했던 것은 패트릭(본능)이었고, 8년 전의 아틀랜트에서의 패트릭과의 만남 속에서의 외도였건 혹은 13년이 지난 현재에서의 패트릭과의 외도를 통하여 자신의 본능, 즉 진정한 자신의 본성을 봐 준 패트릭과의 관계를 언제나 따랐으며, 다시 돌아가는 건 결국 확정된 미래와 본인의 꿈인 아트(이성)이었다. 즉, 세 관계의 ‘사랑’이라는 이름표 하에 타시는 패트릭과의 관계성을 통하여 자신의 본능과 다듬어지지 않은 본인의 가장 나약하고도 못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출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성취욕과 욕망과 꿈을 아트를 통해서 표현했던 것이다.      

   타시는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대회에서 이길 것만 같은 패트릭에게 불안해하며 말한다.      

“부탁할게, 시합에서 져줘.”     

   이에 패트릭은 절망된 아트와의 친구관계, 그리고 타시와의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를 승낙한다. 그리고 불안한 타시는 패트릭에게 다시금 묻는다.     

“달리 져줄지 어떻게 알지?”     
“알 수 없지.”     


   여전히 불확실성과 본능의 패트릭.     


   그리고, 사우나에서 아트와의 대화를 통해서, 패트릭은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 

“너랑 공 치던 게 그리웠다고(패트릭).”


“난 안 그리워(아트).”     

   이를 통해서 패트릭은 자신의 테니스적인 욕망이 어떠한 꿈이나 혹은 여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트와 즐겁게 테니스를 쳤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무척 그리워하고 그 관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내비춘다. 본인의 본능에 충실하지만 결국에 알고보면 가장 순수하고 적나라하며, 직접적으로 자신의 진심을 ‘선한 척 하며’ 표현하지 않고 불같이 강렬하게 표현하는 인물상이기도 하다.      

아트의 의자를 끌어서 배려해주는 패트릭
언제나 아트를 위한 우정의 사랑을 내비추는 패트릭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욕망과 사랑에 대한 형태들로 뭉친 세 인물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인 ‘타이브레이크’에서 마주치게 된다.      

   지금까지 패트릭은 타시를 위해서 ‘져 주는 것 같은 경기(중간에 라켓을 부수기도 하는 장면을 통해서, 이것이 져 주는 게임이 아니라 진짜로 져 주는 것 같은 연출력을 일부러 표현하는)가 아니라, 진짜로 지는 것 같은 경기’로 임했다면,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트릭은 다음과 같은 장면을 통해서 아트의 진실된 본능, 즉 아트의 본성을 끌어올리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그것은 바로 아트의 틱 서브를 하는 것. 라켓을 몸 중앙에 두고 볼을 라켓 중앙에 가리키는 것. 이것은 이전에 청소년 시절, 이 둘이 함께 즐겁게 테니스를 치면서 타시와 패트릭이 잤는지 궁금해하는 아트를 위하여, 잤다는 표현을 암시하는 시그널이었다. 즉 그는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아트의 부인인 타시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아트에게 알리게 된다.      

   이러한 패트릭의 상징적 표현을 통해서 아트는 충격을 받게 되고,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곧이어 패트릭의 진심을 읽게 되고, 아트는 타시를 통한 예속 관계를 스스로 깨게 된다.      

   이에 서로 웃으며 마지막 긴장감 넘치는 경기로 이 영화의 시퀀스는 마무리 된다. 

   항상 패트릭에게 타시와의 관계에서도(진정으로 타시가 사랑했던 것은 결국 패트릭이었으므로), 테니스 경기에서도 졌던 아트는, 마지막 타이 브레이크에서 패트릭의 위치보다 더 높은 곳에서 공을 치게 되며, 네트, 즉 타시라고 표현되는 그 중간 선을 넘게 되어 공을 있는 힘껏 치며 패트릭을 이기게 된다.    


   공을 치며 아트는 네트를 넘어가게 되고, 이에 패트릭 위에서 내리 꽂아서 두 인물, 패트릭과 아트는 껴안으며 둘의 진정한 우정이라는 관계성은 회복이 되고, 아트는 타시라는 인물상의 적절하지 않은 예속 관계를 통해서 이긴 것이 아닌, 진짜로 자신의 힘을 통하여 처음으로 패트릭을 이기게 되고(아트의 꿈은 사실 어떠한 경쟁의 욕망으로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테니스와, 친구와 함께 잔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패트릭은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우정이라는 사랑의 형태를 얻게 되고,      

   결국 타시는 이전에 본인의 전성기였을 때의 경기에서 이기기 직전 포효하는 듯이 소리를 질렀던 장면이 이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재현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매력적인 어투가 아닌 어딘가 힘이 빠진 것과 같은 가짜와 같은 뉘앙스를 암묵적으로 내재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타시 또한 이 두 인물간의 관계성을 통하여 자신의 꿈에 가까이 갔다(하지만 은퇴할 것이라는 아트의 말을 통하여 이 꿈이 거품과도 같은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통제하고 강압하는 자는 진실과 진심 앞에서 지는 법.

   영화의 마지막 절정 장면을 통하여 이 세 인물은 본인들이 가장 원했던 사랑의 형태를 전부 다 쟁취하게 된다. 즉, 패트릭은 친구라는 관계성, 즉 우정이라는 사랑의 형태를, 아트는 연인간의 사랑(경기에서 이기지 않으면 아트를 떠날거라는 타시의 말을 통해서 아트는 연인간의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다.)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면 자신의 예속 욕구를 끊어내고 진실로 자신의 본능과 본성을 따르며 잔잔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사랑을, 그리고 타시는 부상으로부터 좌절된 자신의 테니스를 향한 성취욕, 꿈을 쟁취했다.      

   하지만 타시의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포효를 통해서 결국 그녀가 이룬 것은 남을 통한 자신의 욕망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거품과도 같은 것이라는 암시도 읽어낼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욕망하는 사랑의 형태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챌린저스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질문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제시되어있으며, 인물간의 표정 변화, 대사, 그리고 중간중간 섬세하게 짜여진 미장셴, 신들을 통하여 영화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해답들을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비유들을 읽고 해석하고 공감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또한 인물들의 다양한 의상과 신체의 표현들, 그리고 시각적인 감각적 디자인적 요소들과 미장셴, 사물, 색감 등을 통하여(중간에 타시가 입고 있는 I TOLD YA라는 티셔츠를 통해서 인물의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함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로에베라는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의 감각성을 볼 수도 있으며, 특히 중간중간 삽입 된 힙한 ost를 통해서 (중간에 넘어지는 장면과 중첩 되어 빠른 비트가 나오는 등, 영화의 힙한 요소를 표현하기도 했다.) 긴장감과 게임과 같은 연출 등 또한 볼 수 있다.      

I TOLD YA


영화는 2024년 4월 24일 한국에서 개봉했으며, 현재 상영 진행중이며 젠데이어가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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