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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Jan 01. 2020

천국과 지옥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

- 스포가 있습니다. 스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읽으실 때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의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레스터 레븐슨    



   이 영화는 삶에 대하여 아주 본질적인 것들을 깊숙이 말하고 있다. 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함께 존재한다. 사실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이는 환상에 의지하며 환영을 진실인 양 취급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 있고, 누군가는 늙어서 죽고, 누군가는 자살하여 죽는다. 이처럼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런 방식으로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삶은 진실로 비극인가?    


(사진 있으면 삽입하기)    

   영화는 평범하고 행복한 한 가족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가족 중 자녀 2명과 남편(크리스)은 사고로 죽고, 아내(애니)만 남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는 죽은 뒤 ‘의식’이 되어 새로운 세상, 즉 천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크리스는 천국에서 만난 또 다른 ‘의식’(이전에 같이 일했던 정신과 동료, 사실은 모습을 변신한 자신의 아들이었다.)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나’란 무엇인가? ‘나’는 몸인가? ‘나’는 생각하는 마음인가? 떠다니는 감정인가?     


   ‘나’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의식’이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존재성인 것이다. 진정한 ‘나’라는 것은 영원하고 죽을 수 없다. 모든 감정과 생각,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관찰하고 있는 의식이다. 그것이 진정한 본성이자 진정한 자신이다. 모든 부적절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제거한 유일한 진심, 그것은 바로 진자아인 것이다.     



   이 영화는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지구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관점이다.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지어낸 상상이다.     


   이 영화에서의 ‘천국’은 자신의 상상 속의 세상을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크리스는 죽은 후에도 애니의 그림을 상상하며 그 속에서 헤엄을 치고, 달리기를 하고, 애니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크리스는 애니에 대한 하나의 소식을 듣는다.     


   애니는 자신의 가족 세 명을 잃은 뒤,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으며 자살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애니는 지옥에 간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지옥’은 진실로 아이러니하다.     


   종교에서 나오듯 죄를 지어서 가는 지옥도, 악행을 하여 가는 지옥도 아닌, 스스로의 마음이 만든 지옥인 셈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옥은, 본인 마음의 현실이 반영한 대로, 삶이 지옥처럼 느껴져, 모든 것들을 보지도, 느끼지도 않고, 그저 스스로의 생각에만 빠져, 삶을 피폐하고, 할 수 없고, 무기력하게 느끼고, 병들게 느끼고, 실현할 수 없게 느끼고, 암담하고, 비참하게 느끼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지옥에 간 사람들은 자신이 이전에 알았던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빠져 산다. 그 곳에서 그들은 영원히 고통 받는다. 


   그리고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천국으로 데려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곳의 고통은 사랑보다 더욱 크기 때문에 사랑으로조차 이길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애니를 진실로 사랑하는 크리스는 지옥에서 애니를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모습을 변장한 그의 동료와 아들이 크리스의 뒤를 따른다.     


   그는 지옥으로 향하고, 애니가 만든 애니의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3분 이상 있으면 정신을 잃게 된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몇 분이 지나도 애니는 ‘진짜 크리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마음 속 크리스’를 그리워한다. 결국 그는 최종적으로 선택을 한다. 서로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애니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진실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는 3분 뒤 정신을 잃는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애니는 그 순간 정신이 깨어나고 정신을 잃은 크리스를 바라보며 포기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상대방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고통에서 깨어났을 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다시 찾는 것. 이것이 바로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나오는 ‘아토포스적 사랑’이 아닐까?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본질적인 사랑일 것이다.     

정신을 잃고 있는 크리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애니. 

    

   애니는 이전에 크리스에게 말하곤 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실로 진실이다. 하지만 지옥(자신의 마음의 지옥)에서부터 깨어나 천국으로 돌아온 애니는 다시 말한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모든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변화한다. 굳이 억지스러운 낙천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고 비관론자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변치 않는 것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관점을 되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저 ‘사랑’이다. 사랑이 아닌 모든 것은 비본질적인 것일 뿐,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제거했을 때 남겨진 것은 사랑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본질적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의 풍요와 행복과 사랑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삶의 비극과 불행과 비사랑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물질적인 환상을 넘어 우리가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진실이다. 즉, 천국과 지옥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을 뿐,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판타지적 요소가 결합되었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크게 잊고 있는 본질을 깨우쳐주는 영화이다. 


   또한 여러 시퀀스가 시간과 상관없이 내용의 문맥적으로 조합된 미장센, 그리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영상미들이 이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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