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떠돌아다니다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직접 타투를 해야겠다. 하고 말이다.

by hari

유럽을 떠돌아다니다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직접 타투를 해야겠다. 하고 말이다.

나는 피렌체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편도 비행기를 끊어버렸다.

작년에는 거의 외국에 나가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술작가를 계속 할 작정이었고(사실 너무 당연하게), 나머지 생계수단을 결정하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 충실하며 살곤 했다. 그리고 막막할 때마다 두려움을 뛰어넘은 채 지금껏 모아둔 돈으로 외국에 나가서 지냈다. 나는 계속하여 프랑스와 이태리 등의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작년 9월, 왠지 프랑스가 나를 이끄는 것 같다는 기분에 피렌체에서 몇 달 머문 뒤 프랑스에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편도 비행기를 끊어버렸다. (12월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코로나와는 상관이 없다.)
피렌체에서의 삶은 평온하고 평탄했다. 한국에서는 내 시간이 거의 없이 바쁘게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어서 숙소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자연을 산책하거나 명상하고, 요가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피렌체 외각의 피에솔레.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장소.
새벽 다섯시에 피렌체에서 만난 태국 친구와 함께 명상을 하고 조깅을 했다.
약 한달동안 피렌체에서 지내면서 발견한 강가 옆에 있는 산책로. 두 시간을 걸어도 끝없이 나타난다.
맨발로 산책하며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아는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팔에 상처가 있어 타투를 했는데, 타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직접 다시 도안을 짜 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문득 내 안의 깊은 곳에서는 ‘차라리 내가 직접 타투를 해야겠다.’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언니에게 나중에 타투를 배워 직접 해주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내 몸에는 타투가 8개가 있다. 그 중 처음 받은 건, 2016년도였다. 나는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지금은 다행히 완치하여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이유 중 커다란 부분은 가족에게 있었고, 어느 날 나는 가족들과 대거로 싸우고 말았다. 습관적으로 내 팔에 자해를 해 오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그만두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내면에서 끓었다. 그리고 이전에 봤던 도안으로 자해를 해왔던 팔에 타투를 받기로 결심했다.
아직도 첫 타투를 받은 그 날이 기억난다. 바늘과 잉크가 내 살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여 작업을 하는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이태원의 샵이었고, 타투이스트와 나 둘 뿐인 작업실이었다. 약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된 타투는 우리의 대화속에서 물들었고, 행복하고 포근한 분위기와 짙푸른 하늘 속에서 달과 별이 총총하게 있었던 그 날은 내가 있었던 날들 중에서 최고로 행복한 날 중 하나였다. 삶은 나에게 첫 타투의 행복감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피렌체를 거쳐서 파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고, 함께 미술관에 가고, 카페에 가서 같이 작업을 하곤 했다. 그 사람은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서 본 에펠. 이 날 우리는 창가 구석에 앉아서 부슬비가 내리는 안개 속의 에펠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존재했다.
뷰트 쇼몽 파크. 이곳에서 혼자 산책하기도 하고 그 사람과 산책하기도 했다.
파리에서의 일기.


하지만 나에게 남겨진 기간은 단 몇 개월뿐이었고, 그는 그 기간 동안에만 사랑할 수 있는 상대라고 느껴졌다. 영화와 같던 그 순간 속에서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게 슬펐는지, 타투를 배워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하면서 타투이스트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 중에 발견한 사람은 ‘현재’였다. 나랑 동갑이었고, 처음 선생님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현재’ 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삶이 나에게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현재의 작업실은 강남의 높은 오피스텔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이전에 내가 창업을 교육받으려다가 중간에 포기한 회사의 바로 옆 건물이었으며, 큰 창문 너머에 바로 파리바게트가 보였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삶의 메시지같다는 생각을 했다.
타투는 그림과 굉장히 다르다고 느껴졌다. 일단 바늘의 깊이와 청결도를 유지해야 하며, 그림으로는 슥슥, 그리면 되는 것들인데, 타투는 조금 더 섬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이가 아닌 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게 평생 갈 수도 있는 작업물을 남기는 것이기에 내가 줄곧 해왔던 작업과는 다르게 타인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작업임에 분명했다.
몇 달 간 연습을 하다가 문득 처음 타투를 사람의 몸에 하는 날이 왔다. 엄청 긴장할 것만 같았지만, 아예 긴장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몸에 바늘을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2017년 먹으로 그린 그림을 팔에 새겨드렸다.



지금껏 손님을 받기도 하고 혹은 지인의 몸에 새겨주기도 했다. 나는 작업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서 손보고 싶었지만, 손님의 스케줄이나 피부에 따라서 짧게 끝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갑자기 친구와 연락하다가, “타투 받을래?”한 마디에 작업실에 놀러와서 즉흥적으로 타투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기에 다 끝나면 너무나 피곤했지만, 손님과 함께 쉬는 시간에 담배를 태우거나 혹은 침묵하고 있다가 간간히 들려오는 유머나 대화속에서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 분에겐 세 개의 타투를 하루만에 새겨드렸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고문하는 그 기분에 나중에는 깔깔거리며 피로한 웃음이 터져버렸다


피렌체에서 연락 온 언니. 결국 리터칭을 해주고 말았다. 이전 도안 위에 작업해야 해서 꽤 힘든 작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에 충실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라는 메시지의 타투를 새기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집 앞에 피어올랐던 아름다운 꽃을 새겨드리기도 했다. 누군가와는 옛날 가요를 들으며 새벽까지 작업했는데, 그 별 것 아닌 분위기에 취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누군가에게는 자해를 한 흔적 위에 행복이라는 뜻의 꽃을 새겨주기도 했다. 오랫동안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기원하며 말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다 행복한 기억들과 순간들을 많이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고 느껴진다.
이 시작이 나의 찰나의 순간들이더라도 다른 미래의 순간들과 조화를 이루어 여러 좋은 에너지로 발현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완벽하기 보다는 비록 고통스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