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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느끼는 게 너무 많은 요즘이라,

글을 잘 안 쓰다가 생각나는 대로 많이 많이 글을 쓰는 중이다.

사실 누군가가 직접 내가 되어서 내 삶을 느껴보았으면 좋을 정도로 신비롭고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하는데, 어느 날은 완벽하게 사랑에 둘러 쌓여 있었던 경험을 했다. 어느 날은 내 몸이 완벽하게 두 개로 분리되는 듯한, 사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듯한 느낌도 있었다. 이것들은 말로 아예 설명조차 되지 않는데, 결론적으로 둘 다 나에게 너무 많은 교훈을 주었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 같다.


사람이나 사물 등을 정형화 시키고 문자화시키면 그만큼 편하지만 실은 그만큼 그 사람을 그 틀 안에서만 바라본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웬만하면 누군가를 미워하진 않지만 문득 힘든 사람들은 종종 있는데, 다만 내가 그들을 착각했던 것 뿐이었다. 내 틀 안에서. 그럴 때마다 괜히 미안하곤 하지만 그만큼 또 배운 건 많다.


스스로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기르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있어서 스스로 반성할 때도 많다.


여하튼 내가 누군가에게 어찌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태도 또한 바뀐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하시고 감정적이어서 그런 엄마를 보며 누군가에게 사랑과 정을 나누어주는 걸 배웠던 것 같다. 동시에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하기도 하고, 지는 것 같아서, 실은 표현도 제대로 못 한 스무살 초반을 보냈던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를 질려서 떠나갈 것만 같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그러다가 대학생 때 대학원 언니 소개로 한 꼬맹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를 보면서 문득 정말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이만 다르지 사실 그 아이와 나랑 다를 것 없는 존재라는 게 마음속으로 와닿았고, 그냥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의구심이 들었다.


빛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그 아이를 문득 바라보았는데, 그냥 사랑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스무살 초반에, 두 번째 했던 연애에서 나보다 8살이 많았던 그 남자는 몇 명의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고, 너무나 어렸던 나에게 용서할 수 없는 짓들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아프진 않았고 그냥 놓아버렸다. 그러는 데에만 몇 년이 걸렸던 것 같지만, 사실 멍청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 사람에게 어느정도 감사할 수도 있을 정도로 용서한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누군가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억지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다 놓아버렸던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이 나에게 잘못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순간적인 실수가 모여 나라는 피해자를 만든 것 뿐이었다고 느꼈다. 아무렴 상관이 없었고, 난 자유가 되었다는 게 기뻤다. 누구든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 보다 더 큰 값어치가 있었다.


나는 ‘나’라는 걸 정말 모르겠다. 나는 너무 빠르게 변한다.

싫증을 잘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꾸준히 무언갈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그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요인때문에 내가 너무 많이 변한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지만, 그걸 인정할 때 비로소 정말 나 자신이 된 것 마냥 편안하다.


오늘 문득 스스로의 사진을 보다가,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바라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지켜보았는데, 평범한 듯 하며 묘한 느낌이라서 신기했다.


최근에 머리 아픈 일들이 간혹 있어서 혼자 해결책만 찾다가 답답해서 울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작업실 옆칸을 같이 썼던 오빠가 생각났다.


내가 제일 아꼈던 작업실이었고, 내가 제일 오랜 시간동안(하루종일) 보내는 장소이고, 과실 이후로 처음으로 내가 정말로 사랑하고 내 장소라고 느낄 정도로 애착이 많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작업할 때 집중도가 깨지면 너무나 예민해지는 나였기 때문에 사실 서로 트러블이 생기곤 했다. 나는 그 때 당시에 무슨 일을 하든 술술 풀리는 타이밍이었고, 오빠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옆에 있을 때 항상 웃고만 있지만 기운이 너무 안 좋아서 옆에만 가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 항상 들었다. 내가 그런 걸 감지하는 게 너무 예민한 탓과, 타인이 계속 오가는 장소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업실을 나와야만 했는데 마지막 날에 진짜 많이 울었다. 꿈에까지 작업실과 오빠가 나왔는데, 오빠랑 마지막날에 울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오빠가 미웠고, 용서랄 것도 없이 그냥 차라리 모르는 사이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클 정도로 그 공간을 너무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갑이 되어서 내가 오빠를 어느 정도 공격했던 것도 같은데, 내가 오빠의 입장이 되어보는 경험을 하니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기도 하더라.


하지만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듯, 그냥 그 때 우리가 서로에게 최선의 인연을 다 한다음에 떠난 느낌이라 아쉬움도 없고 후회도 없다. 질긴 느낌도 없었고 딱 거기까지의 친구였나? 싶은 느낌이 컸다. 왜냐하면 앞으로 걸어갈 여정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모든 것들은 완벽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내가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일어났다.


내가 사랑받고 싶다고 구걸할 때에는 문이 닫혔고

아무 생각 없이 사랑을 주면 문이 벌컥 열렸다.

몇 몇 사람때문에 울어보기도 했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만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그 인연에게 무언갈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눈동자 속에는 그 사람의 역사가 새겨져 있고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마냥 싫고 밉다고 생각했던 인연의 눈동자 속에는 걱정과 순수함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내 안에서 풀어주고 그냥 경청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느꼈다.


내가 옆에 있을 때 주눅이 드는 인연에게서도 나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싶어 강아지처럼 아양부리는 그런 모습들. 사실 애잔한 것이라 그냥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눈동자 속에는 희미하고 밝게 이십대의 청량함과 순수함이 있었다. 여러 개의 모습으로 바뀌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본인이 지정해 놓은 모습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그런 모습. 처음에는 의아한 그런 모습에 정말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 또한 그 사람에 대한 틀을 만드는 것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만 보는 사람.


내가 과연 그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사실 밀어내고 싶다지만 그 마음조차 그저 그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하는 어린아이의 장난같은 것이다. 나는 사랑받고 싶고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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