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났다

by hari

전시가 끝났다. 아까 시우언니를 만나고 나서, 전시 내내 외적으로는 흥분상태인데 내적으로는 엄청 차분했다고 했다. 많이 복합적인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공연 때 썼던 유리컵이 깨졌는데, 꼭 그래야할 것만 같이 깨졌고, 그 기분이 불길한 느낌보다는 묘하게 새로운 날을 살아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서 신비로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듯, 나의 것을 자연스럽게 가져라. 라는 말인데, 비단 이것이 소유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상황적 운명과 전체 삶의 결을 따라서 내 것을 가지고 스스로, 곧은 길로, 불확실성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거의 직감에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나는, 한 가지 슬픈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기쁜일이 되리라는 걸 느끼는 것 같다. 울고 있더라도 깊은 자아가 나에게 괜찮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항상 그렇게 됐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건들일 수 없는 것들도 있고, 가끔씩 내 옆에 놓아 두는 것들도 있는데, 결국 나의 것이 되는 건 나의 것이 되고,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인연으로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붙잡아도 떠나는 사람이 있고,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삶이 소중한 것이다.

오늘은 거의 하루종일 울었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감동해서 울고 아쉬워서 울고(분명 차에서 안 아쉽다고 말했는데 집 오니까 아쉽다 ㅋㅋㅋㅋ) 복합적인 감정이라서 기분이 너무 묘하고 이상하다.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내 안에 있는 큰 나를 찾으려고 하는데, 한 번 콕 찔러서 그 큰 자아를 찾았을 때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용서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또다른 선물이 나타난다. 이해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되짚어보게 된다. 정말 짧은 기간동안의 전시였지만, 많은 감사와 슬픔과 기쁨과 행복과 설렘과 떨림과 사랑스러움과 친밀함과 감동과 많은 감정들이 같이 있었고, 그것들을 다 인정할 때 복합적인 나로써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걸 초월할 기반을 다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간 냉철해지고 단호해지려고 더 노력하고, 작업에 대해서 욕심과 작업물에 대한 완벽성을 조금 추구하려고 했는데, 그걸 놓아버리니 사실 그냥 부드럽게 살아도 된다는 깨달음 밖에 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편하다. 냉철한 인간인 동시에 그냥 따뜻하고 싶다.

너무나 감사한 기회로 전시를 많이하는 탓에, 지인들에게 전시에 놀러오라는 말을 하는 게 이제는 미안해진다. 매번 놀러와주고 축하해주고 하는 지인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한 한편, 매번 초대해서 매번 번거로운 발걸음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많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매번 유체이탈을 하는 나로써는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 많은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이 모였으며, 사실 준비하는 동안 나 스스로의 정체성이나 만족도를 위하여 준비한 전시는 전혀 아닌 것 같다. 부끄럽지만 그냥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한 상황인 것 같아서, 어쩌면 평상시에 주관이 너무 강하고 고집이 센 나로써는 이기적이게 보여질 수도 있는 인간이 이런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고마웠다. 그래서 더 묘하고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잘 얻어 걸려서 무언가를 행복하게 했다는 생각 뿐이어서 이상하다.


전시에서 옛 인연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내가 너무 너무 사랑했지만 거리상 어차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마지막에 좋아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접으려고 했던 시기가 생각나는데, 마지막 날 오빠가 준 편지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 지금도 딱 그런 느낌인데, 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사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벽화를 그리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게 재밌는 한편, 사람들이 많이 올까 아주 약간의 의심과 더불어서 상황자체를 해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부정적인 의미는 아닌), 막상 삼일이 되니 그 하루하루를 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가다 보니 몇 날 며칠 전시한 것 마냥 너무 알차고 보람차지만, 떠나 보내는 게 조금은 슬프다:


나는 운이 좋게 태어나서 행복을 정말 잘 느끼는 편이다. 전시를 하면 행복하다. 살아있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느낌에 행복하다기 보다는, 진심으로 사랑받는 것 같고, 무엇보다 좋은 건 “내가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자꾸 무언가를 주고 싶고, 그런 나 자신의 행위와 존재와 영감을 사랑한다. 그게 전부다.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하지만 행복을 소유하거나 존재 그 자체로 심어두려고 하면 금방 달아나버린다. 종이를 불태워 버리듯 그대로 바람에 흩날리는 행복을 보면서 그냥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게 나의 최선이고, 힘든 감각들과 감정들이 올 때조차 그들에게 나에게 와 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 한 마디 하는 것이 삶의 기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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