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변화하고 해가 바뀐다는 건 큰 의미가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그 사람의 깊은 면모까지 느끼려고 하는 어렸을 때부터 있어왔던 습관 때문에, 어느 누가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해도 그 사람의 그 표면적인 모습을 맹신하진 않는 편이다. 입체적인 사람의 모습 안에 변하지 않는 본질을 파악하고 그걸 느끼려고 하는 노력 아닌 노력이 나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소중하다.
그렇기에 난 참 감사하게도 예민한 영혼과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누군가의 슬픔과 누군가의 이야기와 누군가의 것들이 마치 나의 것이 되듯 느끼지만, 동시에 그걸 멀리서 객관화해서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라는 인간도 특별할 것 없이 극도로 감정적이지도 않고 극도로 이성적이지도 않은 그 중간 어느 단계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시켜서 아무 생각 없이 하거나 비판없이 하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스스로 느껴서” 하는 것이 마음 속에 크게 뿌리잡혀 있다보니, 그런 걸 잘 느끼는 사람의 공감대를 얻으면 한없이 기쁘다. 어찌보면 유니크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이단아같은 그런 특질들은 나를 깊게 아프게 했기도 하고, 또는 깊게 기쁘게 하기도 했고, 깊게 방황하게 만들기도 했고, 깊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후회없이 사랑했고 깊게 다른 사람에게 감사한다.
가장 길을 잃었다는 순간은 ‘내가 아닌 옷’을 입었다는 순간이었는데 그건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정말 내 옷이 아니었거나, 혹은 내 옷인데 스스로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거나.
모든 건 받아들이면 된다.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약한 게 아니다. 받아들이고 나서 부터 긍정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신년 계획을 하면서 나에겐 계획이 없구나 하며 답답해하다가 결코 그런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것들이 떠나갔기도 했고,
미련이 남았으면서 동시에 받아들여서 별 탈 없이 무사히 살고 있는데 내가 자만한 건지 거만한건지 욕심이 많아서 놓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비로소 놓아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 자체가 제일 풍성한 법이다.
아까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기 오빠가 인생 새옹지마니까 아픈 일 겪었으니 좋은 일 겪을 거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나도 모르는 내가 울었다.
두시간 가량 얘기하다가 입에 단내 나서 끊었는데 언제나 어떤 이벤트 있을 때 전화하는 성기오빠(고백 아니니 피하지마 시파 ㅋㅋㅋ)
오랜만에 문근오빠 생각 나서 갑자기 전화했는데 통화음 하나 걸리지도 않았는데도 받아버려서 좀 당황했지만 보고 싶고 생각 종종 한다니 치가 떨리듯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저 사람이 변함없다는 게 좋았다.
누군가가 곁에 있거나 혹은 마음속에 있다는 건 좋은 거 같다.
아무리 내가 작업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쳐도 결국에는 서로서로 존재하기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너무 화가나고 답답하고 상황을 못 받아들일 때가 무색하고 너무 미안하게도 삶은 나를 너무 깊게 사랑한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살았던 나날이 있었는데 그 때 마져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나 조차도 사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할 때가 많다.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나의 신념을 잊어버렸을 때가 어쩌면 제일 창피한 나날이었고,
그런 나날 또한 감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