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이 많은 삶을 살면 깨닫는 게 많아진다.
항상 거리 위 방랑자처럼 살아와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안정적이게 살았는데,
사실 되돌아보면 지금껏 억압하고 잘 해야한다고 압박하고 어딜가든 일등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훌훌 내다버리고 자유인이 되었을 때가 거리위의 방랑자 시절이었는데 되돌아보면 그 때가 제일 힘들면서도,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으니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한 삶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무엇보다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두려울 것도 없었고 조건없는 행복과 자유를 누린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런 특혜를 누리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나서는 이제는 안정적이면서(동시에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이 생활이 좋기도 했다. 왜냐하면 많은 책임과 많은 자유가 동시에 있다는 게 조화롭게 느껴졌고, 전적으로 모든 것들이 나로인하여, 나에 의하여 컨트롤 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 의지함 없이 내가 했다는 힘에 대하여 만족해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부모님의 도움없이 스스로 했다는 것에 있어서 많이 용기와 멘탈 트레이닝 하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다른 무용수가 아파서 갑자기 공연 몇 시간 전에 무용수가 교체되었다.
그 과정에 있어서 많은 혼선와 실수와 이것저것 골치아픈 것들이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런 모든 계획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혼자 헛헛거리면서 당황해하는 것 같이 보여졌으나 속으로는 이상한 해방감(?) 을 느꼈던 것 같다. 아무런 규칙도 없고 해야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계획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 상황과 상태 자체가 사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어서 그냥 위선적인 나 자신을 내려놓기로 했다. 즉흥적인 다현이 혼낸 게 엊그제 같은데 제일 즉흥적인 인간이 되어서 공연 세시간 전에 다현이한테 연락해서 춤좀 춰달라는 나라는 인간이 병신같고 나쁜새끼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다현이는 고맙게도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춤을 춰 줬다.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냥 내 작업실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었다. 최근에 어깨충돌 증후군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는데, 어깨를 최대한 쓰면 안 되지만 그런 걸 다 무시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흐르는 물감따라, 바르는 손과 붓 따라서 그냥 은은하게 좋고 자유로웠다.
자유! 그건 내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을 믿어야 한다. 아무런 규칙도 없고 자유라는 이름 하에 규칙을 싫어한다는 믿음도 없고 구설수에 오를까봐 불안해하는 나 자신도 벗어야 하고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나 자신도 없애야 하고 멋있어지고 싶거나 잘나보이려는 나 자신도 없어야 한다. 그러면 그냥 제일 초라하고 병신같은 나 자신만 벌거벗겨진 채로 덩그라니 놓여있어서 그 보잘껏 없는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춤을 추건 그림을 그리건 어떤 예술적 행위를 하건 혹은 추한 행위를 하건 그냥 뛰어놀듯이 가장 러프한 형태로 행위를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렇게 하는 나의 모습, 혹은 타인의 모습 속에서 가장 깊은 자유와 진실성을 깨닫고, 그 가장 초라한 모습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진실된 자아를 발견한다.
최근들어 나답지 못했던 순간들을 다 허물 벗듯 벗겨졌던 위기의 순간들이 있는데,
다행이고 감사하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어도 그냥 관점으로 바라봐서 안 좋고 좋고의 이분법적인 생각이 아닌 그냥 객관적으로 관조해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한 것 같다.
관객으로 온 친구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서 소소한 사과의 말들을 전했는데 사실 즉흥인 줄도 몰랐다는 말에 참 감사하고 먼 걸음 해 주어서도 너무 감사하고
사실 가까운 사람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매번 했었지만 전시를 하면 그 사실을 더 깊게 깨닫는 것 같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개인전을 다시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