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해요

by hari

우리 엄마는 오빠가 어렸을 때 학원을 억지로 보냈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착한 오빠가 양아치 친구를 사귀고 갑자기 불량 청소년이 되어버렸다(?)


뭔가 그렇게 된 이상 막내는 불량청소년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는지 나는 겉모습만 보았을 때에는 온실 속 화초같이 생겼는데, 사실 내다 버린 자식처럼 자랐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모든 선택권은 나 스스로에게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선택하는 것 부터 대학교 입시, 사회에 나와서도 돈 한푼 안 받고 모든 걸 알아서 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가 “너 알아서 해라. 너가 하고싶은 거 해. 너는 알아서 잘 하니까. 후회 하지 말고 책임 너가 져.”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간혹가다가 자유와 방탕함을 사람들이 혼동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 그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책임’ 이다. 책임이라는 건 개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의무이지만 사실 지키기 쉽지 않은 의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자유가 정말 버거운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유가 신기루 같아서 갈망하는 어느 지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저 둘 다 아니다. 분명 자유라는 건 개인이 지녀야 할 소양임에 분명하지만, 수동적인 삶보다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삶이 훨씬 더 행복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개인으로써 자유에 대하여 논하고자 하는 건 다음과 같다.


자유란 천국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니다. 자유를 얻음으로써 잃는 것도 정말 많다. 그만큼 감수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유를 얻을 가치가 있고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력과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내적 획득감에 있다.


누군가와 작업을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가르칠 의무다 있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너가 하고싶은 대로 해. 너가 좋아하는 대로 해. 너가 원하는 대로 해. 너가 알아서 해. 너 스스로 해. 너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 너 마음대로 해.” 대략 이런 말인데, 나는 나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는 걸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 자체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어느정도 내가 가이드라인을 잡아주거나 혹은 커리큘럼을 잡아줘야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혹은 일을 함에 있어서 이런 말을 할 때 최악의 평을 받기도 한다. 즉 나 스스로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시스템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자유라는 문을 닫아야 할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선택과 받아들임의 자유이기에 이제는 굳이 비판하는 마음 없이 받아들이고, 그런 감정 소모 없이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걸 목표로 두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돈을 주지도 않는데 가끔은 스스로 노동을 할 때가 있다. 더 쉬운 방식이 있는데 굳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질 때가 있다.

무언갈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나 그림 수업이 있을 때, 내가 그려주면 훨씬 더 빠르게 그릴 수 있는데 그런 걸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효율적이고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굳이 혼자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건 내적인 만족감과 뿌듯함, 기쁨에서 오는 것 같다. 그건 돈을 내면서까지 노동집약적인 무언가를 하고, 대신에 내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런 만족감을 산다. 정확히 말하면 주체적인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인 셈이다.


인간은 이렇든 본래 자율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그저 스스로의 목표 의식 없이 타인에 의하여 ‘잘 하고’ ‘제대로 하는 것’ 그런 건 오래가지 않고 무너져버린다. 내면이 말이다. 주체성 없는 모든 행위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 속에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밑 빠진 채로 미친듯이 물을 넣거나, 혹은 그 독을 지속적으로 수리해가며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가거나,


혹은 그 독을 깨버리거나.


자율적인 인간은 아마 마지막 행동을 택하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운 본인만의 독을 구매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 자신이 직접 그 독의 디자인을 고르고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


온실 속 화초는 편하고 관리하기 쉽지만


무성한 나무들 속 짐승같이 자란 식물들은 자기 자신의 자리를 알고 위치를 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한계없음을 깨닫고 어느 지점까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더 크게, 더 넓게 성장하기 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그릇대로 발전하고 성장한다. 즉 자연의 이치대로 본인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부여하고, 동시에 그 야생적인 분위기 속에서 야생적인 식물들과 자유롭게 어우러가며 자라고 성장한다. 누구도 그 성장을 재촉하지 않는다. 식물은 알아서 두면 지 알아서 자라기 때문이다. 자연은 원래 그런 것이다.


완벽하게 무질서해 보이지만, 모든 것들은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하게 본인의 자리에서 완벽한 질서로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자연이다.

가꾸어진 무엇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그런 것.


주체성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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