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자율신경계이다. 자율신경계의 주요한 기능이 우리 몸의 질서와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뇌가 균형을 유지하고 따라서 몸도 균형을 유지한다. 우리가 아무 몸도 아니고 아무 사람도 아니고 아무 사물도 아닌 존재로서 아무것, 아무 시간에도 있지 않고 오직 현재 순간에 오래 머물수록 우리 뇌는 더 일관적이고 더 통합적으로 작동한다. 바로 이 때 자율신경계가 전면에 나서서 몸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작업을 하다가 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나라는 인간은 어느정도 경솔한 편이기에 무엇이든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방면에 있어서 욕심이 가득한 편인데,
완전한 몰입의 순간 만큼은 아무것도 상관이 없고 아무 사람이 필요없는 그 상태의 지점이 된다.
그런 지점이 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독보적인 감각을 느끼는데, 그 에너지가 나를 관통하면서 그냥 그대로 현재 속에서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나 스스로의 무언가의 목표를 위함도 아닌, 맹목적으로 장님처럼 창조하고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는 행위는 항상 날 살아있게 했다. 무엇에 홀린 것 마냥 대학 시절 때에는 새벽부터 새벽까지 실컷 작업만 했는데,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고 열정적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사실 정작 본인인 나는 무엇이 열정적인 것인지도 무지했고 내가 왜 이걸 하는 지고 모르는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나는 스스로의 그런 순수성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고, 그런 한계없음을 자신에게 테스트 했을 때 제일 생생하게 살아있었던 것 같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정말 무수하다.
나는 전문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의견들과 동시에 자신에게만 물어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정신적인 것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그것이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직감적으로 본인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이다.
이전에 심리학 교수님께서 나의 옛 문제에 대하여 물어보자 나는 사실 그 문제에 대하여 너무 많이 되돌아 봤기에 더이상 되돌아 볼 필요가 없어서, 굳이요? 하며 말했는데 그분은 나에게 어떠한 증후군이라면서 병명을 이름표 붙였다.
학교 다닐 때 정신의학과 심리학, 철학 등을 전공생 만큼 미친듯이 공부해서 그런 병명이나 이론 등을 잘 아는 나에게 그런 이름표를 단 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폭력같이 느껴졌고, 나는 굳이 그 말에 신경쓰진 않았지만(여하튼 난 그게 아니니까) 무엇이든 어떠한 것이든 이름표를 달기 전에 그것이 진짜로 맞는지 비판적인 태도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건 맞다.
그걸 논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지만 인간의 감각과 직관력을 지켜내고 발굴해나가면서 풀어나갈 수도 있다. 그러한 독특한 감각들을 내면에서부터 나오는데, 가끔씩 이상한 방향의 삶의 형식이 나오면 찝찝한 기분이 들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혹은 악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앞에 나오면 가끔은 역겨운 감정까지 들기도 한다(이건 그 사람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그저 에너지일 뿐이라서 판단할 필요는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감각을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
무수한 갈림길 속에서 어떠한 지점이 정말로 나의 것이라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내가 애쓰지 않아도 그곳을 자연스럽게 걷고 있다.
그 길이 나에게 활력을 주는 길이라 하면 더욱 좋은 길일테고, 활력을 주지 않더라도 쉬운 길이라면 어쩌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길일 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양한 이해를 느끼고 깨달음을 느끼고 사랑을 느낀다. 간혹 슬픔도 느끼고 화도 느끼고 불안감도 느낀다.
모든 감정들은 소중하지만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 스쳐 지나간 길가에 감정들을 두고 걸으면 나의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벼워지고, 훗날 다시 그 길을 걸을 때가 오면 그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소중해하고 감사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을 따라서 걷는 길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보니 여러 차례, 여러 사람들이 그 길이 아니라면서 꾸짖기도 하고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그 속에서 흔들리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본인 스스로의 의지와 정신에 달려있다.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것 만큼 커다란 가능성이 없고,
그 미지의 것들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도 느끼지만 그 소굴을 지나치다 보면 그 길 역시도 나를 위한 사랑과 관심의 길이라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다.
스쳐 지나가면 그것은 나의 무수히 강한 근육이 되어 있고,
삶의 깊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감각이라는 많은 느낌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건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초월해서 존재하지만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끌어당기는 기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