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by hari

(노)현지가 불안하다고 연락이 왔을 때 이년 전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장현지랑 제일 친했다. 이른 아침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쓰러질 것 같은 고통에 그 아이 집에 가서 대뜸 벨을 누르고 그 아이 품에 안겼다. 괜찮아졌다.


최근에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분리시키고 싶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이전의 나를 버리고 싶어서였다. 갑자기 불안증이 오면 다시 이전의 나약함으로 돌아갈까 두려웠다. 나는 정신병자가 되기 싫었다.


그러다 이틀 전인가 하루종일 아팠다. 병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고 우울했다가 화가났다가 불안했다가 감정기복이 극단적이었다. 오랜만에 감정에 사로잡힌 것 같아서 싫었다.


요즘에는 옛날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간단하게 말하고 끝내는 편인데 새롭게 알게 된 아이와 술만 마시면 내 과거 이야기를 왜 그리 많이 하는 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괜찮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러는 건가?


감정이라는 건 항상 불변하고 항상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을 항상 곁에 두면 위험해진다. 자기 자신의 구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달콤하다가도 위험하다고 느껴진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을까 싶다가도 병적인 사랑도 사랑이라 믿고 싶다. 항상 누군가를 잡아두고 싶어했던 것들. 그들을 소유한다는 건 불가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약한 희망에 빠져있었던 나날들. 결핍을 섹스로 채우고 불안을 이기심으로 채우고 무기력을 행복으로 채우려 하고 아빠를 문근오빠로 채우고 엄마를 수많은 남자의 무리를 채우는 것들.


처절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삶의 선택은 내가 하는 거니까. 나는 그저 이대로가 좋다. 혼자만 있는 은둔보다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공간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그런 만남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흘려보내고 고의로 상처를 주고싶지는 않다. 사람은 사람인지라 서로를 악감정 없이 찌를 수도 있고 치유해줄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애틋함 없이도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안정적이어도 불안정할 수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결핍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게 삶이니까.


죽음이라는 것에 많이 두려움은 없은 것 같다.

그 전단계가 가장 두려운 것 같다. 나는 남겨진 가족이나 친구나 혹은 내가 쌓아놓은 것들에 대하여 미련은 없다. 하지만 죽기 직전에 좀 슬플 것 같은 감정이 지나칠 것 같기는 하다. 어디였는지, 언제였는 지 기억도 안 나지만 한 번 내가 죽어있었구나 싶었을 때가 있다. 눈을 떠보니 알았다. 나는 죽어있었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흑색의 공간 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정말 말 그대로 형용할 수 없는 무의 시공간을 체험했던 것 같다. 일어나보니 신기했다. 일어나보니 깨달았다. 죽어있었구나. 죽음이란 바로 이런거란 걸 그때 느꼈던 것 같다.


다행인 건 요즘 열심히 사는 것도 목표랄 것도 없는 인생 속에서 나는 나를 위해 사는 것 같다. 그냥 나의 작업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들. 그래서인지 몸이 많이 아프지 않다. 정신도 아니지만 피폐함과 맑음이 혼합되어 있다. 아마 계속 유지될 거라는 장담은 없지만 그래도 현재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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