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너는 은이 좋니 금이 좋니? 물었을 때 나는 당연히 은이 좋다고 했고 엄마는 넌 뭘 모른다면서 촌스럽다고 했다. 사실 나는 엄마의 이런 판단들이 웃기면서도 항상 한 귀로 흘리고 내가 하고싶고 하려고 하는 대로 살아왔다.
은색을 좋아하는 건, 은만의 꾸밈없는 은은한 아름다움과 세련됨에 있다. 굳이 적나라하게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 세련됨을 좋아하곤 했는데, 은에도 웜톤이 있고 쿨톤이 있지만 난 특히나 쿨한 은빛을 좋아하지만 웜한 은빛 또한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은색을 정말 많이 쓰는데 요즘에는
화이트에 가까운 은색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정말 투명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라서 보고 있거나 혹은 칠하고 있을 때에 황홀한 경험을 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과슈물감 대용량을 샀는데, 거기에 금빛이 있어서 나도모르게 사용해보았다. 사실 금빛은 너무 화려해서 그리 좋아하는 색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연한 분홍빛이랑 같이 쓰면 그 화려함이 수려함으로 변해서 은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 칠을 보다보면 어쩜 이리 예쁘게 빛이 날까? 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금빛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나도 스스로를 잊고 지내다가 그걸 사랑한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는 요즘인지 금빛을 정말 많이 쓴다.
사람의 형태는 무수하게 있는 것 같다.
무언가가 옳고 그르다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도 없고 본인의 모양을 확정지을 수도 있는데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고 틀어지는 이유 중 하나도 판단에서부터 비롯되는 이성적인 마음가짐이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나의 나약한 생각과 혹은 상대의 나약한 생각에서부터 비롯되는 판단은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조언이 될 수도 있는데,
누군가는 날더러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강조하면서 작업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그것에 대하여 할 이야기는 많지만 그건 정말로 내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말을 아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잦은 판단으로 인해서 작업이 잘 안 됐었다.
색에 대한 판단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 혹은 남에 대한 판단, 그런 것들은 어쩌면 정말 작은 우리 안에 세계를 가두어 두는 행위 같기도 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바라보기 이전에 그냥 확장된 마음을 지니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시 금빛을 사랑하게 된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