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에 따라 가는거야

by hari


유명한 일화 중 미켈란젤로는 바위 그 자체에서 피에타를 발견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행하거나, 타인이 한다고 해서 따라하거나,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걸 하지 않았다. 항상 어떠한 나만의 의지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살아왔는데, 그건 내 안의 어떠한 것을 믿고 그 말대로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일곱살 때,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던 게 생각이 난다. 그게 머리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어서,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깨달음과 함께 티비 프로그램 스펀지에 마음 속에서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건다고 제보를 보내야겠다는 순진한(ㅋㅋ) 생각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삶의 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그 결에 대하여 생각했다.

미술작가로 살아가면, 수많은 과제가 있다.

일단 보편적이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내가 세울 이상향이랑까? 표본이 그리 많지 않다. 또한 나의 경우에는 주변에 성공한 예술가분들이 많아서 그게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나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의문문을 지니고 나에게 찾아온다(내 지인들은 이제 나에게 궁금한 게 없는지 내가 어떤 요상한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데 말이다).


사실 내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사는 것이 그림의 삶이고, 이건 내가 선택한 문제라기 보다는 삶이 나에게 부여한 가치라고 항상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받아들인 것 뿐이라서 가장 나답게, 삶이 나에게 준 선물의 방식대로 사는 것 뿐이다.


그걸 지키고 계속 유지시키려면, 내면의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건 내가 제일 단순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문득 촉으로 오기도 하고, 이미지로 떠오르기도 하고, 가끔은 아주 아주 큰 목소리로 덜컥 찾아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겠는 요상한 지표가 나타나서 삶이 나에게 떡하니 보여주면, 나는 그대로 걸어간다.


문득 내가 너무 계획적으로 변하거나 논리적으로 변하게 되면, 삶은 나를 조롱하듯 그 계획들을 모조리 산산조각 내지만,

사실 나는 그것 또한 삶이 나에게 부여한 축복이라는 걸 아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으려 하곤 한다(그리고 가끔 계획이 와장창 무너지면 엄청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자유! 그건 내가 항상 바라보는 것이니.).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드는 건,

나는 내 메모장에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소리들을 날짜와 함께 적어두곤 하는데,

거의 99.9%는 그대로 되는 편이다. 대부분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고, 정말 장기적인 목표만이 그 상태 그대로 있는 편인데,

가끔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다가도 산산조각나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분명 그대로 됐는데, 정말로 스쳐지나가듯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게 맞는가? 하는 아주아주 사소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 그림을 그리며 그 깨달음 또한 느꼈다.


모든 건 내면에서 오지만 그것 또한 일시적이라는 것.

영원한 건 없다.


추상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어느 곳에 어느 물감을 칠하고 어떠한 질감으로 칠해야 할 지,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보인다.’


이미지화 되어서 보이는데, 그래서 나는 신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글을 쓸 때가 가장 쾌감이 크고,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낸다.


그 몰입도에 따라서 속도는 굉장히 빨라지는데,

마음의 소리 또한 내 몰입도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 뿐이다. 이리 갔다가, 저리갔다가 하는 것이다.

4월 20일의 메모에 담겨있는 다음과 같은 글 처럼 말이다.


“마음의 소리는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바뀌는 거야.”


그냥 나라는 사람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것 뿐이다.


그건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고 태어난 것이다.


모든 일은 그냥 그렇게 일어난다. 좋고 나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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