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크의 별

by hari

알 수 없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이제 점진적으로 사라져가는 것들 조차 사랑한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안에는 텅 비었고 할아버지는 없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장례식장에도 안 계시지만 우리를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해둔, 엄청 따뜻하신 분이다.


그래서 난 슬프지 않았다. 감사했다.


만약에 루프 양자중력이 맞다면, 공간에서 존재하는 건 유한한 지점이고 자신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 물질은 굳이 양자역학이 어떠한 힘을 가할 필요 없이 스스로에 의하여 자신의 무게를 상쇄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이른다. 이러한 마지막 지점에서의 별의 상태를 가상으로 지정한 것이 ‘플랭크의 별’이다.


플랭크의 별, 마치 죽어있는 것 같지만 그 온전한 힘이 그 속에 마지막 찰나의 순간 담겨있어서 무언가 변화를 촉발하는 어떠한 작용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죽어있는 것 같지만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 같다고 해야할까.


만약에 태양이 연소를 멈춘 뒤 블랙홀을 만든다면 블랙홀의 지름 안에서 태양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이 가라앉으면서 결국 플랭크의 별이 된다. 그건 원자 크기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작다고 한다. 태양 물질 전체아 그 속에 응집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것들의 덧없음이 원자와 같은 측정하기도 힘든 크기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인가?


플랭크의 별은 안정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최대로 압축이 되면 튕겨져 올라서 다시 팽창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블랙홀을 폭발 상태에 이르게 한다.


플랭크의 별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의 특질과 변화 과정을 관찰해 보았을 때 많은 흥미를 느껴서 몇 가지 자료들을 찾아봤지만 그리 큰 정보는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내가 이것에 대하여 느낀 바로는,


많은 것들이 도약하기 바로 직전의 상태를 이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질적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는 세상이 변화해도 지겨울 만큼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


어떤 영화 감독은 이러한 신파가 싫어서 완전히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것들을 반전시키곤 했지만,

여하튼 독특할 정도로 세상의 진리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긍정성이 있으면 부정성이 있고, 또 다시 그것들이 무한 반복을 한다.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또 다시 커다란 대양 속에 그 진리를 버린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잊어버리지만, 다시 한 번 마음으로 깨닫게 되면 몰랐던 것 보다 더 신선한 충격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치 플랭크의 별의 상태가 된 것 마냥 세상의 끝에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상태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된다. 힘들다는 건 바로 그런 용어인 것 같다. 제 눈을 제가 가리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 실은 숲이라는 것은 좋고 나쁨이 같이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암흑 속에 갖혀 있는 상태를 이르러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눈가림을 없애버리고 순간을 바라보면서 그 순간에 살고 그 순간에 의하여 모든 흐름에 맡겨버리면 시야가 트인다.


그 순간 속에서 지정된 어떠한 물체와 사건,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떠밀려져 온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 유유상종과 같은 상황 속에서 비슷한 것들이 우리에게로 온다. 그렇기에 어떠한 진동수를 가지고 어떠한 에너지를 지니는 게 우리에게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노선의 상태, 플랭크의 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본다.


가장 죽어있는 것 같은 시점이 실은 가장 생생히 살아있는 시점이다.


그것은 많은 것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무언가에 의지하여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서 죽어가는 와중에도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 지점이 행복이 아닐지라도, 무언가의 흐름에 따라서 삶의 불확실성에 자신을 바친다. 그 대가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얻고, 그 이야기 속에서 힘듦을 느끼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살기를 갈망하게 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 격렬한 지나간 아픔들은 우리를 생생하게 살아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라지는 걸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죽어있는 것 같지만 실로 살아있기 위한 움직임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커다랗고 아름다운 숲이 되는 과정을, 삶이라는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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