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한국사회를 잘 알면서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 나의 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 이외에는 거의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없어서
예전에 수능과 미술 입시를 볼 때에도 경쟁률을 아예 안 봤다. 그냥 나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내 사고범위 밖에 있었다.
나는 사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다고 느끼는 건 정말 자유롭게 컸고 독립적으로 컸다. 다들 각자 개인주의라서 내가 외국에 가든 어디 학교에 가든 어떤 성적을 받든 다들 신경쓰지도 않았고
나에게 무언가를 해야하고 이루어야 한다는 말 조차 아예 하지 않으셨다. 그냥 잘만 자라라. 이게 전부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정말 자유롭게 지낸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한국사회에서의 애로사항을 잘 모르면서 자란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예능 부분의 친구들이 대다수이고,
게다가 예고와 미대를 다니면서 그 안에 있는 우물 속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나는 어차피 다원예술을 할 것이기 때문에) 때문에 미술하는 친구는 거의 없고, 연기나 무용, 음악하는 친구가 대다수이다.
내 친구 중에 회사원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기 때문에 사실 그 세계에 대하여 잘 모르고 알고싶다는 생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나의 생활은 예체능, 예체능, 그게 전부였고,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하여 딱히 관심 없는 내 친구들이 편했다. 어쩌면 겉으로 보았을 때 나보다 이상한 친구들(ㅋㅋ)이 훨씬 많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친구들도 참 많았는데 그게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생겨먹은 게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냥 개인적이고 내가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자유롭고 그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게 내 활동이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의 자유와 함께 친구들이랑 서로서로 어울려 노는 걸 즐기기도 하고
함께 하는 창작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제일 행복했다. 그래서 그냥 우리가 느끼는 ‘물질적인 현실’ 세계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그걸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하는 지,
혹은 어떠한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았을 때 어떠한 측면이 좋았고 어떠한 측면이 아쉬웠는지에 대한 토론같은 걸 즐겨했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 같고 진짜 내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너무나 익숙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외국에서 거의 살다시피 계속 나가 있었다. 사실 한국에 있어도 되었을 때였는데 내가 계속해서 유럽에 가서 그곳에서 머물렀던 이유는 그냥 너무 편했다.
거기 사람들은 (다 그런 건 아니고 미화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비가 오다가 비를 맞고 싶어서 우산을 접고 그대로 뛰어다녀도 서로 깔깔거리면서 재미있게 쳐다보고,
미술관에서 작품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 하기도 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하기도 편하다.
전시를 했을 때에도 진짜 내 작품을 작품으로 봐 주시기도 했고,
그냥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허세없이 대했던 것 같다. 그냥 집에 있다가 심심하면 집 앞에 있는 문화센터로 놀러다니기도 했는데, 그 센터에서는 그냥 춤을 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러프하게 춤추고,
노래부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하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물론 거의 동물의 왕국같이 러프하고 너무 자유롭다 못해 난잡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있다가 갑자기 다른 친구 연인들끼리 성행위(??)를 바로 앞에서 해도 걍 신경도 안 쓰고 누드 비치도 아닌데 훌러덩 다 벗어버리는 경우를 봤을 때
너무 웃기기도 하고 정말 동물들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그런 것 마저 너무 자유로워서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너무 그립고 생각하면 너무 눈물나기도 한다.
그런 나인데, 사실 한국에 계속 있으면서 외국을 안 나간지도 꽤 되고, 이번년도에는 특히나 일반 직장인분들을 만날 기회가 너무 많았는데,
실은 그 속에서 나 스스로에게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답답한 말들을 많이 듣고 그것에 마치 세뇌되는 것 마냥 비교도 많이 하고 경쟁도 많이 겪었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상실감과 구토 유발(??) 적인 답답함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분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야생에서 자란 어떤 짐승(나)이 도시에 와서 공원에서 어떤 사람의 목줄에 잡혀서 끌려 다니는 경험을 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획일화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어색하고(왜냐하면 모두의 개인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개성을 지니고 있다.) 나의 많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부터 나오는 너무 과도한 관심이나 혹은 비교, 질투, 경쟁심, 그런 것들에 스스로가 몇 달 동안 진절머리 나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자리잡혀 있었는데,
실은 그런 것들에 대하여 스스로 보호하지 못했다거나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건 다 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더이상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시간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음 편하고 현자타임을 즐기면서 부처 버금가는 내려놓음으로 모든 것들을 비우고 도파민도 최대한 멀리 하고 많은 것들을 적게 취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 필요한 인연들만을 곁에 두고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요즘인데
갑자기 어제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서 최근의 그 상황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말을 듣자마자 나 자신이 다시 고장난 듯이 너무나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경험이 사실은 부정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나 자신의 방향을 다시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미술작가로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냥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열려져 있는 마음으로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인지와
환경의 중요도와
도파민에 의존한 생활에 대한 위험성,
그리고 진짜로 하고 싶고 사랑하는 일은 도파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과 내가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나라는 사람을 정의내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들에 대한 중요도와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굳이 예의없지만 않으면 타인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도 설명이 필요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들 조차 비워내고자 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미움 없이 감사하고, 누구의 탓하는 것 없이 나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그걸 알았으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다시 예술로 내 삶을 채워나가고 싶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 삶이 제일 편하고 안정감있고
그냥 그게 제일 좋다. 내가 요즘 제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