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i May 09. 2024

해치워야 한다는 것.

나는 그래도 어떠한 부정성에 대해서 회피를 안 하고 잘 마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주본다는 건 허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떠한 문제적 상황이 찾아왔을 때 실은 남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혹은 삶의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하든간에 한 개인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상황에 대한 평가는 변할 수 있기에 삶의 모든 것에는 절대적인 게 없다 : 왜냐하면 나 또한 내가 겪었던 가장 최악의 상황 속에서,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큰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상상으로만 겪었던 그 두려운 상황을 실제적으로 목격하고 겪음에도 나는 단지 살아있었고, 내 안에 힘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 모든 부정성을 허용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해방감을 느꼈다.


상대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 나를 거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도 변치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게 좋다.


그것에 대해 생각할 것도 있을까?

사실 가볍게 넘기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들이 많지만 어쩌면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인해서 더욱 풍부해지는

삶의 것들이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것이라도 어떤 개인은 억압으로 느낄 수 있고, 어떤 삶의 부정적인 것이라도 한 개인은 그것을 해방으로 느낄 수 있다.


갈망이라는 건 지금 존재하지 않다고 여겨서 미래의 자신에게 거는 것이다.


풍요롭다는 것은 지금도 풍요롭고 나중에도 풍요롭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이든 미래든 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망의 늪은 달콤하다. 언제든 잡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것을 잡으려고 분투하지만, 막상 잡았다 하더라도 진정 본인의 것이 아니면 언제든 떨어져 나간다. 기본값이 ‘없음’이기 때문에 ‘희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없음도 허용해야한다. 그래야 진짜 있는 것들이 나오고, 언제든 진짜로 살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불확실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