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친한 언니랑 만나서 이것저것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미국가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면서 울었는데 그날 언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인간의 유년기는 부모의 영향이 클 수도 있고 사회의 영향이 클 수도 있지만 결국에 그게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끼치는데, 난 솔직히 그 굴레에서 시지프스 신화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대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카르마라는 것의 해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과정은 가슴이 불타듯 아프다. 정말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구도 모를 감정이다.
딱 5년 전에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내가 가장 최악의 상태에 놓였을 때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상태를 느꼈다. 어찌어찌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행복했지만 본질적으로 가족이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엄청 크게 느껴서 난 그냥 고아같았다. 실은 거의 고아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감정을 제일 느끼기 싫어했던 것 같다. 다시는 없을 상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평범한 상황 속에서 엄마나 아빠가 평범하게 자식을 사랑한다는 상황의 아이를 보면서 솔직히 눈물나게 부러웠다. 난 언제나 혼자서 해냈고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지지를 받고 평범한 사랑을 받는다는 건 어느정도 내가 더 야망이 없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내가 더더욱 생각이 짧거나 혹은 단순한 인간이었더라면 많는 노력 없이 이러한 결핍을 활용하여 결국 목표달성의 연료로 쓰거나 성공의 연료로 썼을 것 같다. 결핍으로 인한 성공은 얼마 가지 않아 인간을 채울 수 없는 만족감의 피폐함으로 작용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나는 그 감정의 굴의 깊은 곳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나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내가 그 감정에 함몰당항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기꺼이 그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는데,
예전에 언니가 말한 것 처럼,
나 그냥 프랑스가서 진짜 혼자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거의 20년 넘게 비혼주의라는 신념이 변치 않았는데,
실은 환경이 어떻든 개인이 잘 하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서 어떠한 환경이든 크게 기대 안 하고 그곳에서도 당연히 고난이 있고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겠지만
결코 나는 다시 마주하고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도 어느정도 있지만,
내가 아무리 주의하고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바꾸려 해도 되지 않는 세상의 이치 속에서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힘을 다 빼가면서 애쓰면서 사회가 말하는 “안 되면 될때까지 존나 열심히 노력해라” 라는 줏같은 한국 마인드 말고 그냥 문 안 열리면 니네 꺼지고 내가 다른 곳 간다.
무슨일이 생기든 항상 고마워하려고 노력하는데 어제는 좀 도가 지나쳤다.
그래도 그냥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련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상황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
그게 내가 지닌 가장 고결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죽어버리는 것, 타인에 의해서 아닌, 그건 정신적 가치 중 가장 최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