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i Sep 01. 2024

<창무,움직임 자체의 움직임>

<중독-독안의 여자>, <몸으로 외치다!>, 

춤이란 건 무엇일까? 현대에 와서 춤은 다양한 미장셴의 공연으로, 즉, 다양한 오브제와 무대 장치들 혹은 여러 가지의 움직임 이외의 새로운 시도들로 많이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춤이란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은 몸, 움직임, 행동 등에 있는데, 부수적인 요소들을 빼 내고 보았을 때의 그 움직임의 리듬들과 선, 그리고 질감 등이 춤을 이루는 가장 기초일 것이다. 

   8월 31일,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세 개의 무용공연이 개최되었다. <중독-독안의 여자>, <몸으로 외치다!>, <ODEON>, 이 세 작품은 소재와 주제가 다 다르지만 공통된 분모는 바로 몸의 움직임, 즉 춤 자체에 집중하고 이외의 무대장치들은 미니멀하게 표현되었음에 있다. 

   먼저 <중독, 독안의 여자>는 김미란 댄스 시어터 ‘엇’의 작품으로, 그로테스크한 가면을 쓴 남자가 처음으로 나온다. 그 가면들은 360도 다 기괴한 얼굴로 뒤덮여 있는데, 무용수는 크고 유연한, 하지만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움직임을 표현하며 반복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서로 다른 얼굴 가면들을 관객에게 표현한다. 이 행위는 즉 여러 개의 자아에 대한 메타포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주인공인 독 안에 있는 여자를 조종하는 불특정 다수 혹은 대중의 시선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인물이다. 


   남자는 맺고 끊음이 명확한 기계적인 움직임과 동시에 유연한 움직임을 지녔는데, 베이직한 회색 원피스의 옷을 입고 가면을 굴려가다가 결국 그 가면을 허공의 줄에 매단다. 이 남자는 주인공 여자와 끊임없이 교감하며 마치 여자를 조종하는 뉘앙새를 풍긴다. 대중의 시선, 혹은 여자의 그림자, 혹은 끊을 수 없는 무언가 라는 표현으로 비유되어 움직임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여자의 주관은 스스로에게 집중된 게 아니라 남자의 시선과 행동에 달려있다. 즉 주체적인 삶이 아닌 수동적인 삶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연은 단순한 주제 속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과 움직임의 표현으로 실현되고 있는데, 밀도감 있는 춤의 표현과 더불어서 정확하고도 기괴스러운 연출과 음향을 통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또한 여자의 불안감과 불완전성을 돋보이기 위해서 한국 음악을 활용하여 불협화음, 즉 의도한 삑소리와 풍부한 음량의 경외 로운 음악적 특성을 사용하여 더욱더 불안한 감정을 고조시킨 작품이다. 이러한 내면적인 시선을 다양한 미장셴을 통하여 활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적인 ‘여백의 미’와 같이 절제된 연출과 명확한 표현방식을 통하여 작품 자체의 산만함을 없애고 깔끔하고 풍부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여자의 내면의 시선은 항상 외부, 즉 타인에 향해 있으며, 그 타인은 여성을 조종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한 가장 절정의 방식은 마지막 시퀀스에 있는데, 동그란 한국화의 장지와 같은 바닥의 오브제 위에 음악가는 독에 담긴 독극물과도 같은 수묵적인 요소를 뿌린다. 그 위에서 질퍽하게 움직임을 실현시키는 남자 무용수, 그리고 결국에 낚싯대에 잡혀버린 여자의 결말로 이 작품은 막을 내린다. 이에 대하여 안무가인 김미란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독 안의 여자, 독 밖의 여자, 편안하고 답답하다. 어저면 우리의 삶도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이 아닐까?”

   이것은 현대인의 풍족한 생활 이면에 감추어진 내면의 결핍에 대하여 더욱 고찰해보고 상기시킬 수 있는 여지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의 공연으로는 창무회의 <몸으로 외치다!>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공연 자체의 표현 방식은 바로 ‘몸’에 있으며, 소품 또한 흰 실 하나만 사용했을 정도로 굉장히 미니멀한 공연임을 알 수 있는데, 무용수들은 전부 다 흰 색 옷을 입고 끊임없이 달리고 달린다. 또한 각자 실 한 개를 들고선 움직이곤 하는데, 그 움직임 자체가 화음의 조화로운 방식이 아니라, 개개인이 지닌 즉흥성을 표현한 듯한 불협화음에 기반을 둔 것과도 같은 흐름을 띠는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내용 중, ‘관계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의 특징과 비유할 수 있다.      

“‘요동’이 아무것도 결코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특정한 순간에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미결정성은 하나의 양이 다른 양과 상호작용할 때는 해소된다. 상호작용 중에 전자는 어떤 한 지점에 구현 돼 나타난다.”     

   이 공연 속 무용수들은 어쩌면 무작위한 움직임과 실의 헤침과 엉킴을 통하여 각자의 관게성에 대하여 표현한 것 같지만 기이하게도 그 표현 자체가 서로의 화합을 이루는 것 같지 않고 분해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 자체는 춤 자체의 동적 표현의 해부와 분산됨에 대한 연구, 즉 실험 방식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형식’에 얽매이는 어떠한 움직임을 자유로 향하는 단계에 있는(마치 매너리즘처럼)작품처럼 해석할 수 있다. 즉, 일부러 기이한 행동을 하고, 낯선 방식으로 실험하고, 분산되고 해체하는, 뭉치고자 하다가 해부되는 움직임을 통하여 자유롭기 위한 과정을 실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는 EPHRAT ASHERIE DANCE의 <ODEON>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오데온은 서아프리카 리듬과 움직임의 뿌리를 탐색하면서 다양한 스타일들의 춤들을 경계 없이 전달하는 데 의의를 둔다.

   처음 이 작품은 박수로 시작하는데 마치 어린 시절 때 친구와 함께 놀았던 그 기억을 상기시키는 귀여운 움직임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박수, 표정, 역동적이면서도 작위적인 움직임 속에서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에서 벗어나 다양한 움직임적 요소에 대한 실험 방식을 시도하였으며, 조금 더 본능에 가깝고 자유롭고자 하는 키치한 움직임 또한 포착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둔탁하기도 하고 통통 튀기도 하는 몸과 움직임은, 무용수의 에너지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공연적 오브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미니멀리즘 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가 역동적이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장르의 움직임의 결합에 있다. 즉 뮤지컬과 같은 장치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마치 라라랜드의 미장셴을 가져온 시퀀스가 있기도 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무용 같은 춤의 요소, 연극적인 노골적 표현의 표정들, 그리고 맺고 끊음이 확실한 대사와도 같고 연기와도 같은 동적 표현들, 또한 박수로 리듬과 움직임을 표현함에 있어서 스텝업 같은 춤으로 표현된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는 시퀀스가 있기도 하며, 스트릿 댄스, 비보잉과 같은 요소가 결합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이에 ‘오데온의 무용수들은 브레이킹, 힙합, 하우스, 보그 등의 스타일을 구현하며 시간과 템포, 장르를 흐릿하게 만드는 기법’을 선택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러한 스타일의 구현을 통하여 관람객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현대무용적인 방식이 아닌, 마치 직접적으로 교감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을 얻기 때문에 서로 박수를 치고, 참여를 하며, 호응을 할 수 있는 더욱 확장되고 열린 대중적인 공연으로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경계를 따지지 않는 작품으로 실현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세 작품이었지만 공통적으로 오브제나 기타 장치들이 미니멀하게 구현이 되어있고 움직임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요소들을 통하여 관객은 조금 더 춤적인 생동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예술은 창조적인 새로움 또한 중요하지만 그 본질에 집중하는 것도 어쩌면 새로움 그 자체로 표현되는 행위일 수도 있다. 반복되는 것 같은 동일한 행동도 매 순간 다르며, 그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야 말로 바로 밀도감이자 완성도이기 때문이다.    이 세 작품들 또한 몸과 움직임이라는 춤의 본질적인 개념을 통하여 내면, 혹은 몸 자체나 관계에 대한 상호작용, 혹은 장르의 다양성과 경계 없음을 표현함으로 관람객에게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공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무에서 발견한 미술적 언어와 아름다움> - 박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