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춤&판 고무신 춤축제
나 이곳을 떠날 때,
이것이 나의 작별의 말이 되게 하소서.
내가 본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 타고르
죽음, 그 이름부터가 무거울 수 있는 이 개념을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을까? 법정스님의 말에 따르면 죽음이란 다음과 같다.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
변화, 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편 변화 속에서 자유를 얻는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있어서 한없이 작아지는가 하면, 자신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제 14회 춤&판 고무신 춤축제>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전통의 무용을 선보인 공연이었다. 그 중, 살풀이 춤에 관하여 감상할 수 있는데, 이 움직임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의 죽음에 대한 삶의 태도와 이미지, 그리고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살풀이춤이란, 나쁜 기운을 뜻하는 ‘살’이라는 개념을 풀고자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이라는 의미와 ‘흥’이라는 이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춤의 개념에 따라서 이 공연에서는 안덕기 <살풀이춤>, 임현선 <임현선 살풀이_진혼>을 통해서 살풀이 춤의 개념과 움직임, 그리고 미장셴과 삶에서 죽음에 관한 태도 등을 바라볼 수 있다.
우선 안덕기 <살풀이춤>을 통해서 움직임 자체의 맺고 끊음, 조용하고 진지함 속에서 전달되는 미세하고도 정확한 움직임 등의 ‘정중동’을 살펴볼 수 있다. 즉,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작은 진동들이 느껴지고, 그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꽉 차오르는 밀도감을 나타내며, 한 가지 움직임 속에서 여러 가지 움직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외부적인 요인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고요하고 중심 있게 다스릴 줄 아는 경지와 맞닿아 있다. 즉, 박자에 맞추어서 ‘탁’ 하는 리듬감과 더불어 섬세하지만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이중성, 그리고 예민하게 ‘툭’하고 들어오는 정확함 등을 그의 움직임 속에서 관찰할 수 있다. 공기에 있는 에너지들을 툭툭 쳐내듯 사뿐사뿐 걸어가며, 허공에 있는 에너지와 소통하는 듯한, 즉 영혼과 소통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몸의 힘 뿐 아니라 공기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그것의 저항감이나 혹은 흐름에 따라서 움직임을 지속시킨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을 지속시키다가 공연의 마지막으로 다다를수록 물결을 치며 손을 움직이면서 조금 더 경쾌한 움직임을 자아낸다. 이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죽음과 영혼과 소통하는 듯한 움직임에 비슷하며, ‘한’ 뿐 아니라 ‘흥’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살풀이 춤의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즉, 죽음이란 삶의 마지막으로 타인과 세상과 끊어진 무언가, 즉 부정적인 요소로 치닫는 게 아닌, 죽음이란 삶의 연장선으로, 즉 변화로써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흥이라는 소재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죽음에 대하여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의 말을 인용할 수 있다.
“만일 그대들이 참으로 죽음의 신비를 보고자 한다면 삶 전체를 향하여 그대들의 가슴을 활짝 열라. 강과 바다가 하나이듯이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삶을 알려면 죽음을 알아야 하고, 죽음을 알려면 ‘대사일번’, 즉 타인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죽음으로써(자신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음으로, 즉 죽음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지금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살고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이 공연에서는 임현선 <임현선 살풀이_진혼>을 통해서 살풀이춤에 대하여 바라볼 수 있다. 이 공연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하여 죽은 이의 한을 풀어주는 살풀이춤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공연에서는 영화적인 미장셴이 특히나 강했는데, 마치 흑백의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한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연출이었다. 흑백의 옷을 입고, 수려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 공연은 마치 조라이트 감독의 영화처럼 서정적이면서 빛, 즉 조명을 아름답게 사용한 듯한 긴장감과 섬세함을 표현한다. 조금 더 고요한 느낌 속에서 한과 슬픔을 담았으며, 진지하고 진중함을 표현하며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과정, 즉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표현하였다. 의식을 치루는 듯한 손의 움직임과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며 복잡한 심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일부로써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서, ‘감정’을 삶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이중적인 잣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보지 않고, 슬픔 또한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과정을 담은 공연이다. 단순하고 고요함, 그리고 흑백이라는 대조적인 미장셴을 통하여 죽은 영혼의 한을 해소시키는 듯한 성격이 강한 요소의 살풀이 공연이다.
죽음을 ‘죽음’이라는 언어로써, 혹은 그 개념으로 한정지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자들이 상상할 수도, 가볼 수도 없는 그 미지에 세계에 대하여 살풀이 춤은 우리의 정서와 다양한 감정을 담는다. 거기에서 비롯되는 미세하고도 강한 움직임을 통하여 죽음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며, 아주 고요한 움직임 속에서 가장 큰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타고르의 글을 인용하며 마친다.
나는 무수한 형상들의 바다 깊은 곳으로 뛰어듭니다. 형상 없는 완벽한 진주를 얻기 위해.
비바람에 지친 나의 이 배로는 더 이상 항구에서 항구로 항해하지 않겠습니다. 파도에 춤추며 즐거워하던 날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습니다.
이제 나는 기꺼이 죽음을 갈망합니다. 더 이상 죽음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
현이 울리지도 않는데 음악이 울려퍼지는 곳,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 음악당으로 내 생명의 현악기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이제 영원의 곡조에 맞춰 내 악기를 조율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흐느끼며 최후의 곡을 연주하고 나면, 내 침묵하는 악기를 침묵하는 이의 발아래 내려놓겠습니다.
- 기탄잘리, 100. 타고르
* 일부 사진 자료는 한국 춤협회에서 따 왔습니다.
제 14회, 춤&판 고무신 춤축제
2024.9.7.(토)
김남용 <조흥동류 한량무>
김지안 <시나위입춤 흥취>
안나경 <김백봉부채춤>
안덕기 <살풀이춤>
임현선 <임현선 살풀이_진혼>
채향순 <이매방류 승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