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다기 보다는 사라지면 어쩔까 불안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냥 있는 것들에 감사할 줄 알고 그것들을 활용하거나 소중히 할 수 있단 걸 알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부족하면 아껴서 쓰면 되고 그만큼 소중히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이 평생 옆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오늘 아빠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도, 아빠도 나한테 미안하다는 소리를 잘 안 한다.
나는 청개구리라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꽤 잘 하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있는 단점같은 게 보이면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생각하는 게 있다.
모든 상황적 핑계를 대는 건 미안하다고 말하고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핑계라는 건 우리가 지킬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상황 속 합리화를 대는 것이지만, 그건 그만큼 그 일에 있어서 책임감이 없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정말 책임감이 있고 사랑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한다. 나는 이제 그런 것들, 그런 사람들만 내 곁에 두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도 나의 자기사랑중 하나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행위이니까.
요즘엔 아빠가 만나자고 하면 안 만나고싶으면 안 만난다. 엄마가 만나자고 하면 언제나 안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거절하니 속이 후련하다. 나는 실은 많은 게 필요없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것들이 오면 무척이나 감사하고 소중히 대할 수 있다.
한동안 사랑받지 못할 것들에 대해서 두려워하기도 했다. 나 좋다는 남자들 줄을 섰는데(?) 그거 없어지면 허전하려나? 생각도 들었는데,
오늘도 길 가다가 어떤 외국인이 번호를 물어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 나에게 말 걸었던 사람이었다. 파리가 꼬인 거였다.
나는 파리 100마리는 필요 없다. 길 가다가 번호를 물어보거나 혹은 나의 외형, 젊음, 기타 등등의 어떠한 조건들만 보고 다가온 건 다 파리다. 그것에 기뻐하는 건 그냥 멍청한 거다.
나는 그냥 나에게서 사라질 수도 있을만한 기회들은 잡지 않을거다. 그건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 내 욕구, 내 욕심 채우느라 바빠서 진정으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이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냥 부족하더라도 완성됨을 더 사랑하고, 단점이 있고 바보같아도 진솔한 게 더 좋다. 완벽하게 아름답지 않고 결점이 있어도 그걸 귀엽게 보는 게 더 좋다. 많이 헝클어진 건 싫지만 적당히 인간미 있는 건 좋다.
오늘 하루종일 할 게 무척이나 많았는데 스케줄을 정리하다보니 나에게서 비워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프로젝트, 그림, 글, 일, 운동 등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난 오늘 그림을 그린 후 밖에 러닝하러 갈 거다.